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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11 19:50 수정 : 2019.08.11 22:30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연합뉴스

[한-일 경제전쟁 전문가 진단]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③ 한-일 갈등, 무엇을 해야 하나

통상 공격-대법 판결-과거 청산
얽혀있는 세 문제 별도의 처방 필요

일 통상공격 단호하게 맞서고
한국 대법 판결은 취지대로 집행
과거청산은 장기과제로 대처해야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연합뉴스

2018년 10월30일부터 선고된 한국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들에 대한 일본 아베 정부의 반발이 ‘통상 공격’으로 확산되면서 ‘일본은 과연 한국의 우방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는 심각한 국면이 전개되고 있다. 긴장도가 높아지는 가운데 전문가, 언론, 정치권은 숙성되지 못한 이런저런 처방을 매일같이 쏟아내고 있다.

세 개의 서로 다른 국면이 어지럽게 얽혀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통상공격, 대법원 판결 사건, 한일 과거청산 일반이 그것이다. 이들 서로 다른 국면에 대해서는 별개의 진단과 처방이 필요하다.

통상공격에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일본의 통상공격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다. 지난 7월1일 일본의 경제산업성이 1차 통상공격을 감행할 때 내세운 논리는 한일 간의 “신뢰관계가 현저하게 훼손되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한국 대법원 판결에 대한 반발을 의미한다는 것은 누구의 눈에도 분명하다. 그런데 정치·외교를 통상과 부당하게 결부시키는 것은 명백히 세계무역기구(WTO)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등 국제통상규범 위반이다.

그래서 외무대신이 나서서 양자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라고 우기며 이번에는 위 협정 제21조의 “안전보장을 위한 예외”를 내밀었다. 하지만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이번 통상공격은 그 예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으니 국제법 위반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 후 총리가 나서서 또다시 대법원 판결을 끄집어냈고, 총리의 발언을 관방장관이 “안보 우려” 운운하며 덮어 가렸다. ‘혼네’와 ‘다테마에’를 뒤섞어 한 입으로 두말하며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통상공격이 대법원 판결 때문이라면 국제법 위반이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근거가 없으니 국제법 위반이다. 따라서 일본은 즉각 국제법 위반 상태를 시정하는 조치를 취해야 하며, 그러지 않을 경우 한국은 국제재판이나 대항조치도 포함하여 강력한 대응을 강구해야 한다.

분명히 할 것은 통상공격과 과거청산은 그 성격, 관련 규범, 대응양식의 면에서 완전히 별개라는 점이다. ‘일본이 통상공격을 해서 큰일이니 대법원 판결에 대한 일본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무언가 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쏟아지고 있다. 논리 파탄일 뿐만 아니라 실리적이지도 못하다. 통상문제는 어디까지나 통상문제로서만 대응해야 한다.

대법원 판결 사건은 판결 집행으로 해결해야 한다.

대법원 판결은 일차적으로는 한국인 개인과 일본 기업이라는 사적 주체들 사이의 개별 분쟁에 대한 판단이다. 따라서 패소한 일본 기업이 대법원 판결에 따라 배상을 하면 일단락된다.

일본 기업들은 한국 최대의 로펌을 동원해 10년이 훨씬 넘게 법정에서 열심히 다투었다. 2012년의 파기환송 판결을 뒤집으려고 공작을 했다는 혐의조차 있다. 그런데도 정작 판결이 선고되자 못 따르겠다고 한다. 그들의 상대는 고령의 ‘강제동원’ 피해자들이다. 판결이 선고되었을 때 그들은 대부분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일본 기업들의 판결 거부는 대한민국의 사법권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고령의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저버린 것으로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현 상황에 대한 해법으로 국내에서 2+2, 2+1, 1+1, 1+1/α 등 온갖 ‘해법’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그 모두는 한국 정부와 한국 기업이 나서라는 것이라는 점에서 대법원 판결을 거스르는 잘못된 처방이다. 대법원 판결의 결론은 ‘강제동원 문제는 1965년 청구권협정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강제동원 문제에 관한 한 한국 정부는 책임이 없고, 무상 3억달러로부터 지원을 받은 한국 기업들도 책임이 없다는 의미이다.

서로 다른 것을 어설프게 뒤섞어서는 안 된다. ‘위로금’ 10억엔을 받는 대신 반인도적 범죄행위의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에 동의해준 2015년 일본군 ‘위안부’ 합의의 잘못을 또다시 반복해서는 안 된다.

대법원 판결 사건의 현 상태는 확정판결이 났는데도 채무자가 채무 이행을 못하겠다고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강제집행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대한민국의 사법절차인 강제집행에 대해 일본 정부는 물론이고 한국 정부도 관여할 수 없다. 게다가 아베 정부는 이미 일본 기업들에 배상하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혐의, 다시 말해 대한민국의 주권을 침해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형편이다.

‘강제동원, 청구권협정 대상 아니다’
대법이 판결 통해 결론 냈는데
정부·기업 나서라는건 잘못된 해법
서로 다른 것을 뒤섞어선 안돼

문제의 핵심은 ‘식민지 지배 책임’
정부가 미해결 과제 풀어나가야

11일 오후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 '태국기 바람개비 작은 동산'이 설치 전시되고 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사무실 한 관계자는 예년에 비해서 최근 입장객이 늘었다고 말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한일 과거청산은 장기과제로서 대처해야 한다.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은 대법원 판결의 취지에 따라 일본 정부에 불법적인 식민지지배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다.

대법원 판결은 “청구권협정은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 관계를 정치적 합의에 의하여 해결하기 위한 것”이므로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인 강제동원은 청구권협정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것은 조약 해석에 관한 국제법의 원칙에 따른 타당한 판단이다.

그런데도 아베 정부는 ‘국제법 위반’, ‘청구권협정 위반’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면서도 근거는 일절 제시하지 않는다. 한국 정부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고 거듭 으르댄다. 그러면서도 ‘적절한 조치’가 무엇인지는 일절 이야기하지 않는다. ‘내가 국제법 위반이라고 하면 국제법 위반이다, 내 마음에 드는 조치를 취하라’는 이야기다. 참으로 무례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한국 정부는 아베 정부가 구체적인 이야기를 할 때까지는 애당초 대응을 할 필요가 없다. 대신 스스로 “존중한다”고 선언한 대법원 판결의 취지를 묵묵히 관철해나가야 한다.

긴 호흡으로 ‘식민지지배 책임’을 물어야 한다.

대법원 판결은 한일 간에 ‘식민지지배 책임’ 문제가 미해결인 상태로 남아 있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것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그 문제는 1965년에 한일 양국 정부가 해결하지 않은 채 봉인했던 것이다. 1990년대 초부터 한국인 피해자들이 일본에서, 미국에서, 한국에서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소송을 통해 다투면서 그것을 끄집어냈다. 그들 곁에는 헌신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한국과 일본 그리고 전세계의 시민들이 있었다.

소송이 거듭되면서 ‘식민지지배 책임’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사실이 점점 더 선명해졌다. 관련 국제인권법도 현저하게 발전했다. 그런 가운데 권위주의 시대의 국가폭력에 대한 국내의 과거청산 소송 과정에서 개인의 권리와 국가의 책임에 대한 감수성을 키운 한국의 법원이 ‘식민지지배 책임’을 미해결 과제로 확인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다.

‘식민지지배 책임.’ 커다란 과제이다.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다. 차근차근 챙기면서 나아가야 한다. 자료를 더 많이 쌓고, 법리를 더 꼼꼼하게 다듬고, 과제를 찬찬히 풀어나가는 외교 역량을 펼쳐야 한다. 이것이 대법원 판결이 가리키는 방향이다.

때마침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대법원 판결의 가장 밑바닥에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명기된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이 자리잡고 있다. 대법원 판결이 올해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왜 기념해야 하는지 함께 되새길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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