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생각] 홍순철의 이래서 베스트셀러
이영훈·김낙년·김용삼·주익종·정안기·이우연 지음/미래사(2019) 우리 사회는 지금 다매체시대가 만들어낸 일종의 ‘아노미’(anomie)를 경험하고 있다. 동영상 공유사이트와 소셜미디어에는 선동적이고 자극적인 소식과 여과되지 않은 정보가 넘쳐난다. 상식과 비상식, 이성과 비이성, 진짜와 가짜, 진실과 거짓이 마구 뒤섞여 있고, ‘무엇이 바람직한 삶인가’에 대한 기준이 모호해지면서 사회공동체를 지탱하는 제도와 규범이 흔들리고 있다. 이념과 세대 모두 극단적으로 분열되어 서로를 향한 혐오와 분노를 쏟아 내고 있고, 균형을 잡기 힘들어진 개인들은 방향감각을 상실한 채 성난 파도에 휩쓸려 이리저리 표류하고 있다. 불안, 분노, 절망, 무기력, 공허함 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고, 이러한 감정들은 마치 바이러스처럼 무서운 속도로 전염되고 있다. 일본과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우리 안의 혼란도 가중되고 있다. 지난 7월 초 일본의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 규제 결정이 내려지던 시기와 맞물려 서점가에는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이 등장했다. 대한민국 위기의 근원이 ‘반일 종족주의’라고 비판하는 이 책은 대한민국이 ‘친일은 악이고 반일은 선이며, 일본만 악의 종적으로 감각하는 샤머니즘적 세계관’에 갇혀 헤매고 있으며, 그로 인해 지금의 위기가 촉발되었다고 해석한다. 제대로 된 근대화를 경험하지 못해 발생한 천박한 ‘육체적 물질주의’와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고 적대 감정을 자극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샤머니즘적 종족주의’가 서로 결합해 우리 스스로 수많은 거짓말을 만들어냈으며, 그것을 역사라는 이름으로 가르쳐왔다고 주장한다.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지식인’이라 자칭하는 분들이 쓴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대한민국 국민임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대한민국 국민의 입에서 “아베 수상님,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주옥순 엄마부대 대표)라는 얼토당토않은 말이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 그 이유를 짐작케 한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100주년, 게다가 일제강점에서 벗어난 것을 기념하는 광복절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사실은 우리 안의 갈등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아무리 그래도 일본 식민지배에 대한 일반인들의 상식이 잘못되었으며, 강제징용을 두고 “식민지배 기간에 많은 젊은이들이 돈을 좇아 조선보다 앞선 일본에 대한 ‘로망’을 자발적으로 실행했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책을 만나게 될 줄이야! 일제 식민통치가 한국의 경제 정치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줄이야! 저자들은 열심히 전국을 돌며 위험한 주장을 거침없이 전달하고 있고, 주요 정치권 인사들이 책에 대한 갑론을박 논쟁을 벌이면서 판매는 더욱 급증하고 있다. 누구나 자기 사상과 생각을 책으로 출판할 수 있으며, 출판의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다. 하지만 다매체시대에 표현의 자유는 위기를 맞이했으며, 또 다른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자유는 곧 책임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유를 두려워한다”(Liberty means responsibility. That is why most men dread it). 불현듯 영국 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말이 떠오른다. BC에이전시 대표,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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