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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09 04:59 수정 : 2019.08.09 16:57

박상준 일본 와세다대 교수가 지난 7일 서울 남대문 대한상의에서 <한겨레>와 만나 한일 경제전쟁과 관련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한일경제 전문가’ 일본 와세다대 박 교수 인터뷰
“‘일 관료들 한국 벼른다’ 소문 이미 무성했다”
대지진 뒤 쌓여온 ‘반한 감정’ 깔려있다는 분석
한국내 정부 비판 목소리, ‘일본의 역이용’ 주장
“힘없이 물러나선 안 돼…최소한 5대5로 비겨야”

박상준 일본 와세다대 교수가 지난 7일 서울 남대문 대한상의에서 <한겨레>와 만나 한일 경제전쟁과 관련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당장은 한국이 불리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유리할 것이다. 하지만 두나라가 경제협력 관계를 복원하는 게 서로에게 유리하다.”

한일경제 전문가인 박상준 와세다대 교수는 지난 7일 서울 남대문 대한상의에서 <한겨레>와 만나 일본 수출규제로 촉발된 한일 경제전쟁에 대한 생각을 털어놨다. 박 교수는 “사태가 여기까지 오게 된 과정에 관해서는 한국 정부에도 할 말이 있지만, 지금은 일본을 이기는데 무조건 힘을 모아야 한다”면서 “2011년 일본이 중국의 희토류 수출규제에서 승리한 비결은 정권교체와 상관없는 일관된 정책 추진”이라고 강조했다. 또 “‘노재팬’이 아닌 ‘노아베’에 초점을 맞추자는 의견에 적극 찬성한다”면서 “한국 정치권의 도쿄 올림픽 보이콧 주장은 국제사회에서 역풍을 맞을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한일 두나라 모두 서로에 대해 잘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 것 같다”고 사태가 진정된 뒤 성찰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박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1999년부터 일본 대학에서 교편생활을 하고 있는데, 현재 와세다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방학을 맞아 고국을 찾았는데, 금융연구원에서 일본경제 현황을 주제로 발표한데 이어 12일 대통령 직속 소득주도성장특위에서 강연이 예정되어 있다. 2016년 한국이 일본식 장기불황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 <불황터널>을 출간한데 이어, 8월 중 일본이 어떻게 불황에서 벗어났는지를 담은 <불황탈출>을 펴낼 예정이다.

-일본은 수출규제가 수출관리제도의 적절한 운용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한국은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에 불만을 품은 무역보복이자 자유무역질서 부정행위라고 비난한다

=한국만이 아니다. 전 세계, 심지어 일본 국민도 ‘보복’으로 생각한다. 아베 총리를 싫어하는 일본인 교수들은 “WTO 위배”라고 대놓고 말한다. 일본 정부도 속으로는 (배상 판결 때문에) 자신들이 화가 났다는 것을 한국이 알기를 바란다. 무역보복은 일본 정부의 명백한 잘못이다.

-사전에 예상했나?

=올해 상반기 내내 소문이 무성했다. 일본 정부와 일을 하는 동료 교수들로부터 “관료들이 한국을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벼른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일본 주재 한국 기자들이 어떤 품목으로 보복할 것 같냐고 물어오기도 했다. 일본 국민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배상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과거 일본 방송을 보면 출연자 10명 중 3명 정도는 일본 정부의 성찰을 촉구했는데, 요즘에는 1명 정도에 그치거나 아예 안보인다. 길게 보면 아베의 보복 배경에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지속적으로 악화된 일본 내 반한 감정이 깔려 있다.

한국 금융시장 공격 가능성은 ‘희박

일 희토류 분쟁 성공사례 주목해야

일 국민도 ‘아베의 보복’으로 생각

도쿄 올림픽 보이콧 주장 ‘역풍’ 위험

‘노재팬’ 이해하지만 혐오는 옳지 않아

한일 모두 서로 모르고, 알려하지 않아

-대지진 당시 한국 정부가 구조대를 보내고, 국민도 성금을 모으는 등 적극 지원했는데

=지진 당시에는 그랬지만, 독도 갈등이 불거진 뒤 “일본을 도와줄 필요가 없었다” “고소하다”는 얘기가 일본으로 전해졌다. 일본 우익이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대지진으로 일본 내 위기감이 높아지며 국수주의 경향이 강해진 상황에서, 한국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심화됐다,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일왕 사과 요구 보도로 여론이 더욱 악화됐다. 2016년 이후 박근혜 탄핵, 조현아 땅콩회항 사태가 벌어졌을 때 일본 연예인들은 방송에서 하루가 멀다고 한국을 비웃었다. 박근혜 정부와 일본 간의 위안부 합의가 무효화되자 일본 안에서는 “터무니없다”는 반응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그 이전부터 일본의 과거 식민지 지배와 위안부 관련 사과에 대한 한국의 대응에 아쉬움을 느낀다.

-1995년 무라야마 담화와 1993년 고노담화를 말하는가?

=자민당 출신의 고노는 모르겠지만 사회당 출신의 무라야마 총리는 진심으로 사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가 언급되지 않았다며) 미흡하다고 비판하면서, 사과의 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아베 총리는 2015년 ‘전후 70년 담화’에서 과거 침략과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과했다. 아베는 진심으로 사과할 마음이 없었지만, 국제적 여론과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굴복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이 “알맹이가 없다”고 차버리면서, 오히려 아베를 살려주는 꼴이 됐다. 일본 우익들은 “한국에는 아무리 사과해도 소용없다”고 선전했다.

-일본 정부가 7월4일 반도체 핵심소재 3종에 대한 수출규제를 전격 발표한 뒤 문재인 대통령은 “좌시하지 않겠다”며 강경대응 의지를 분명히 했다.

=한국 정부로서는 다른 선택이 어려웠을 것이다. 현 상황에서는 강경대응 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정부 비판 등 다른 얘기가 나오면 일본이 역이용할 뿐이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 힘없이 물러나는 것은 안된다. 최소한 5대5로 비겨야 한다.

-한국 정부는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를 포함한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일본이 2010년 9월 중국의 희토류 수출규제에서 어떻게 승리했는지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단기적으로 희토류 확보에 최대한 노력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종합대책을 발표했고, 소지쓰상사는 일본 정부기구와 공동으로 호주 희토류 생산업체에 2억5천만달러를 출자했다. 2012년에는 히타치가 희토류를 사용하지 않는 산업용 모터를 개발했다. 이와 함께 일본은 2012년 3월 미국, 유럽연합과 함께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해, 2014년 8월 협정 위반이라는 판결을 얻어냈다. 결국 희토류 분쟁은 일본의 승리로 끝났다. 중국에 대한 희토류 의존도가 2009년 86%에서 2015년 55%로 낮아졌다. 중국은 2015년 1월 수출규제를 철회했다. 일본 기업은 지금도 기술개발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는 정권에 상관없이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한다. 한국은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주요 정부 정책이 원점에서 새로 출발한다. 지금은 소재·부품산업 육성을 강조하지만, 2022년 새 대통령이 취임한 뒤에도 ‘2019년 사태’를 기억할지 궁금하다.

-한국이 소재·부품·장비의 일본 의존에서 벗어나려면 대기업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많다

=한국은 대기업이 성장해도, 중소기업은 성장하지 못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공급사슬에 있는 중소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일본 대기업은 중소기업과 같이 가야한다는 생각이 강하고, 중소기업 지원에 신경을 많이 쓴다. 그래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격차도 한국처럼 심하지 않다.

-일본이 한국경제를 공격하고 미래성장에 타격을 가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주장이 있다.

=생각해 볼 수 있지만, 단정하기는 어렵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 규제 때도 일본에서 ‘중국 음모론’이 제기됐다. 마침 2010년은 중국의 명목 GDP가 처음으로 일본을 추월하며 자신감을 갖던 시점이었다. 지금은 일본이 자국 경제에 강한 자신감을 갖고 있어 유사성이 있다. 일본은 지난해 완전고용을 달성했다. 상당수 기업의 영업이익이 2017~2018년 2년 연속 사상 최고기록을 세웠다. 일본은 한국에 반도체·휴대폰·전자·조선 등을 빼앗겼지만 대신 로봇·인공지능·자율주행·센서 등 미래성장산업에서 주도권을 쥐었다. 향후 10년 동안은 한국의 추격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다.

-한국의 피해가 클 것이라는 우려와, 일본의 피해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시각이 엇갈린다.

=서로 피해를 볼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한국이 불리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유리할 것이다. 내가 한국인이라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웃음) 일본으로서는 한국이 미국·유럽에 이어 세 번째로 무역흑자가 큰 나라여서, 포기하기 힘들다. 또 일본의 피해는 주로 중소·중견기업이 받는다. 반면 한국은 삼성·에스케이 같은 대기업이다. 대기업은 어떻게 하든 대처할 것이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대상국) 배제로 수출 심사가 까다로워질 수 있지만, 수출 자체가 중단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명백한 WTO 위반이다. 미국·유럽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한국은 소재·부품의 수입선 다변화와 국산화가 관건인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해결해 나갈 것이다. 한국이 다른 곳과 거래하면, 일본과 다시 거래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한국으로서는 과도한 일본 의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계기다.

-일본이 한국의 금융시장을 공격할 가능성도 제기되는데.

=낮다고 본다. 일본 자금이 한국에 들어온 것은 돈을 벌기 위해서다. 일본이 자금을 회수하면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일본 자금이 빠져나간 것을 한국에 대한 공격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다. 베트남, 타이 등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에서도 빠져나갔다. 당시 일본은 은행들이 도산위기에 봉착해 자금이 필요했다. 또 한국도 외환위기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당시에는 만기 1년 이하 단기채권 비중이 50%를 넘었다. 하지만 지금은 30% 전후로 안정적이다.

-이번 사태의 장기화 가능성은?

=두가지 요인이 영향을 줄 수 있다. 첫번째는 국제사회의 움직임이다. 한국이 WTO에서 일본 규제의 부당성을 주장했지만 아직 호응은 크지 않다. 일본에서는 “아무도 한국편을 안 들었다”고 대서특필했다. 두번째는 오는 10월 소비세를 8%에서 10%로 올리는 것이다. 과거 일본은 소비세를 올릴 때마다 경기후퇴를 경험했다. 더욱이 미중 분쟁이 심화되고 있어 일본 정부의 부담이 더 클 수 있다. 일본경제가 지난 수년간 호조를 보였지만 최근 투자 위축 등 일부 지표가 나빠지고 있다. 아베로서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사태가 장기화돼 양국의 피해가 커지면 결국 타협할 것이다. 한국 정부도 조기 수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강제징용 배상에 일본기업이 참여하되 부담을 최소화하는 대신 한국기업이 더 부담하고, 한국정부도 지원하는 형태로 절충안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바람직한 경제 관계는?

=협력관계를 복원해야 한다. 한국이 소재·부품·장비에서 일본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완전한 ‘탈일본’은 가능하지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한 국가가 소재·부품부터 완제품까지 모든 것을 완결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생각할 수는 있지만 경제적으로도 비효율적이다. 두나라는 그동안 국제분업체계에서 서로 이익을 얻었다.

-한국 내 반일 감정이 높다. 하지만 최근 ‘노재팬’이 아니라 ‘노아베’에 초점을 맞추자는 성숙한 목소리가 나온다.

=옳은 방향이다. 언론과 인터뷰한다고 하니까, 부모님이 “요즘 말 잘못하면 큰일 난다”고 걱정하셨다. ‘노재팬’이 이해는 가지만,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일본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부추기는 것은 옳지 않다. 과거 박정희 정권 때 반공교육을 강화하자 김수환 추기경이 어린이들에게 증오심을 심어주는 것은 안된다고 반대했다고 한다. 무조건적인 ‘노아베’도 위험하다, 아베가 위안부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부정하고 식민 지배를 미화하는 것은 비판해야 한다. 하지만 아베가 2006년 방한 때 국립 현충원을 방문한 것에는 박수를 보내야 한다. 고이즈미, 하시모토 전 총리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사과편지를 보낸 것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한국에서 2020년 도쿄 올림픽 보이콧 주장이 나온다. 시민단체가 그런 주장을 할 수는 있지만, 정치인이 하는 것은 위험하다. 오히려 국제적으로 스포츠를 정치에 이용한다고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일본 우익이 더 강하게 반발하는 등 악순환도 깊어진다. 이번 사태가 끝나면 객관적인 평가와 성찰이 필요하다.

-일본에서 20년간 생활한 지식인으로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

=한국과 일본은 가장 가까이 있지만 서로 잘 모르는 것 같다. 평소 인터넷을 보면 같은 주제를 다뤄도 내용이 전혀 달라 서로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50%를 넘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실업률이 높아 20대 젊은층의 지지율이 낮다며, “한국인들이 대통령에 등을 돌렸다”고 보도한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같다. 한국에서는 일본의 국가부채비율이 GDP 대비 230%로 높다며 마치 일본경제가 곧 붕괴될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일본 가계의 순저축율은 GDP 대비 270%에 달한다. 일본 가계가 여윳돈을 일본은행에 맡기면, 은행이 일본 정부가 발행한 채권을 사는 구조다. 단순히 국가부채비율이 높다고 일본경제가 무너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다. 한국은 일본을 제대로 알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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