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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08 18:22 수정 : 2019.08.08 22:33

안재승
논설위원

“반도체 공장 이달 말 멈출 수도 있다” 지난 7월6일 <한국경제>의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이 신문은 반도체업계 최고경영자(CEO)들이 정부 고위관계자들을 만나 “에칭가스 등 일부 소재의 재고가 2~4주 분량에 불과해 이르면 이달 말 공장이 설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고 전했다.

최고경영자들이 실제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반도체 공장은 멈추지 않았다. 최고경영자들은 지금의 위기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만들자며 임직원들을 독려하고 있다.

아베 정부의 경제보복에 이어 미-중 무역분쟁까지 격화되면서 한국 경제가 큰 도전에 직면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외환위기 같은 미증유의 사태가 곧 닥칠 것이라는 일부의 주장은 나가도 너무 나갔다. 대한민국 경제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래픽 / 김지야
‘카더라 통신’ 말고 팩트를 가지고 얘기해 보자. 우리나라는 2017년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1734달러(한국은행 2019년 6월 기준연도 개편 통계)로 3만달러를 넘어섰다. 세계에서 7번째로 ‘30-50 클럽’(인구 5천만명 이상, 1인당 국민총소득 3만달러 이상)에 들어갔다. 외환보유액은 지난 7월 말 기준 4031억달러로 세계 9위다. 외환위기 때인 1997년 204억달러보다 20배나 많다. 단기외채 비율은 3월 말 기준 31.6%로 외환위기 때의 286%와 견줘 현저히 낮다. 국가 부도 위험 가능성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도 최근 며칠 오르긴 했지만 7일 34bp로 매우 안정적인 수준이다. 순대외금융자산은 지난 3월 말 기준 4362억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무디스와 스탠더드앤푸어스(S&P)가 매긴 국가신용등급은 전체 구간에서 3번째로 높다. 중국과 일본보다 2단계 위다. 국제신용평가회사들은 한국의 경제적·재정적 강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일본과 일대일로 비교해 보자. 한국의 2018년 국내총생산(GDP)은 1조7209억달러, 일본(세계은행 통계)은 4조9709억달러다. 일본이 우리의 2.9배다. 인구가 2.4배 많은 게 결정적인 요인이지만 격차가 큰 건 사실이다. 다만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 우리는 1990년 이후 6.2배 증가한 반면 일본은 1.6배 늘어나는 데 그쳤다. 1인당 국민총소득의 변화는 더 빠르다. 한국은 2018년 3만3434달러로 4만1340달러인 일본의 81%까지 쫓아갔다. 1990년엔 25%(한국 6505달러, 일본 2만5539달러)에 불과했다. 한·일 모두 핵심 산업인 전자산업은 지난해 역전됐다. 한국의 2018년 전자산업 생산액이 1711억달러로 일본(1194억달러)을 제치고 중국과 미국에 이어 세계 3위에 올랐다. 한국은 생산액이 5년 동안 54% 증가한 반면 일본은 11% 감소하는 ‘역성장’을 했다.

아베 정부의 도발 배경에는 한국의 추격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는 분석이 많다. 한국 경제의 핵심인 반도체에 타격을 가해 성장 동력을 꺼뜨리겠다는 의도라는 것이다. 판단 착오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양국이 정면충돌하면 일본도 치명상을 피하지 못한다. 그만큼 한국 경제가 일본을 따라잡아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마당에 일부에서 현실성 낮은 일본의 ‘금융 보복설’까지 퍼뜨린다. 더 큰 피해를 입기 전에 아베 정부에 수그리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수익 극대화를 좇는 금융회사가 아베 총리가 지시한다고 고객들로부터 대출을 회수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된다고 보는가? 그런 금융회사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불신의 낙인’이 찍혀 더는 발을 붙이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자금 유출설’을 퍼 날라 불안을 부추긴다. 아베 정부가 바라는 일이다. 자해 행위다.

물론 한국 경제는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다. 당장 일본의 경제보복을 통해 소재·부품산업의 취약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또 경제 전체에서 반도체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데다 자동차·조선·철강 등 주력 제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신성장 산업은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수출과 내수의 불균형도 심각하다. 고령화·저출산에 따른 인구 구조 변화는 갈수록 우리 경제에 큰 짐이 될 것이다. 이처럼 구조적 난제들이 쌓여 있는 상황에서 최근 경기 하강 속도마저 빨라져 걱정이다.

하지만 경제에 문제가 없는 나라는 없다. 종합적인 대책을 치밀하게 세워 체계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우리 경제를 근거 없이 비하하거나 공포감을 조장하는 것은 백해무익할 뿐이다. 그건 일본의 극우 정치인과 언론이 하는 짓이다. 스스로 존중하지 않으면 누구도 존중해주지 않는다.

js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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