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정한론 주창자들의 직속 후예가 아베와 아소
경제보복은 일본 국민 근본 이익 해치는 자해적 행동
‘아베의 퇴행’에 맞서 싸운다는 자부심과 믿음 가져야
이번 싸움 통해 일본 반성 끌어낸다면 세계사적 의미
한·일 지도자·국민 모두 자아집착 떨쳐내는 지혜 필요
남북, 하나로 힘 모을수록 일본에 대한 대처도 쉬워져
도올 김용옥 전 고려대 철학과 교수를 만나 격랑에 휩싸인 한-일 관계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도올은 특유의 거시적이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아베 정부가 도발한 경제전쟁의 이유를 진단하고 우리 국민이 일본 상품 불매운동을 포함한 주체적·집합적 대응을 강력히 펼쳐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아베의 경제전쟁은 아베 개인과 아베 정권을 위한 것일 뿐이며 일본의 역사를 후퇴시키고 일본 국민의 근본 이익을 해치는 자해적 행동이라고 단언했다. 우리 국민이 견고하고 지속적으로 아베 정부의 경제도발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는 것이 일본의 시민사회와 양심세력의 각성을 돕는 길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인터뷰는 아베 내각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우대국)에서 배제하기로 결정한 지난 2일 도올의 집필실이 있는 서울 종로구 동숭동 통나무출판사에서 했다.
―아베 신조 일본 정부가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규제 발표에 이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빼는 두번째 도발을 감행했습니다. 도대체 왜 아베 총리는 무모한 경제도발을 강행한 걸까요.
“트럼프가 중국을 압박하는 것은 이해할 만한 구석이 있죠. 워낙 무역적자가 심한 상황에서 미국으로서는 출혈을 감수하면서 중국을 키워주는 입장이기 때문에 중국을 통제하려고 하는 것이죠. 그런데 아베의 경제보복은 전혀 달라요. 일본은 한국에 대해 수십년 동안 무역흑자를 보았고, 그런 구조가 안착돼 있어요. 더구나 한-일이 무역에서 지금까지 나름대로 ‘윈윈 관계’를 유지해왔는데 갑자기 물건을 팔던 사람이 ‘안 팔겠다’ 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예요. 일본 경제가 (미국처럼) 세계를 지배하는 수준도 아니고 내적으로 외적으로 모순이 많은 상태에서 그런 무모한 행동을 하는 건 아베 정부가 가미카제 특공대와 같은 정신상태라는 걸 보여줍니다.”
―자해적 공격이죠.
“역사를 잠깐 보면, 19세기 메이지유신 전에 일본은 막부 체제였어요. 이 막부 체제가 어떤 의미에선 지방분권 체제예요. 정교하게 권력균형을 이루고 있었죠. 이걸 바꿔서 천황 중심의 중앙집권적인 통일국가로 만든 것이 메이지유신이거든요. 이 메이지 체제를 만들면서 일본은 막부 체제가 가지고 있던 건강성을 완전히 상실해 갑니다. 그런데 외면적으로는 메이지 체제가 정치·경제·군사적으로 일본이 강대해지는 데 굉장히 효율적인 체제였기 때문에 역사학자들이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해왔어요. 그러나 인류사적으로 보면 메이지유신은 오히려 과거로 퇴보하는 퇴행 현상입니다.”
―메이지 체제가 형식적 근대화 속에서 내용적 후퇴였다는 것이죠?
“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가장 필수적인 요소가 빠졌습니다. 보편주의 사고가 근대화의 핵심인데, 일본은 이 보편주의를 상실하는 방향으로만 근대화를 진행시킵니다. 국수주의적 편견이 강화된 거죠. 그런데 이 메이지유신의 산물 가운데 하나가 정한론입니다. 메이지유신으로 갈 곳을 잃은 사무라이들을 모아 한국(조선)을 정벌하고 거기에 새로운 번(막부시대 다이묘가 지배하던 지방 영지)을 만들자는 것이 정한론입니다. 이 정한론을 주창한 사람들이 메이지유신의 주역인 사쓰마번과 조슈번 무사들이에요. 이번에 경제전쟁을 일으킨 아베 신조가 조슈 사람이고 그 내각 부총리인 아소 다로가 사쓰마 사람이에요. 과거 정한론을 만든 핵심 세력이 다시 등장한 거란 말이죠. 이 사람들이 ‘지금 이 나라는 비정상 국가다, 미국이 (전후에) 통치하면서 만든 헌법을 갈아치우자, 우리 마음대로 전쟁할 수 있어야 정상국가 아니냐’ 이런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죠.”
도올 김용옥 전 고려대 철학과 교수가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통나무출판사에 있는 집필실에서 일본의 경제도발로 격랑에 휩싸인 한-일 관계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도올은 아베 총리의 경제전쟁은 일본 국민의 근본 이익을 해치는 가미카제 특공대 같은 행위라고 비판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 대목에서 일본 평화헌법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요.
“사실 그 평화헌법이라는 것 덕분에 일본이 그래도 국제사회에서 대접을 받아왔습니다. 전후에 맥아더가 수하의 휘트니라는 장군을 시켜서 완전히 새로운 헌법을 만들었는데, 그 평화헌법이 어떤 면에선 미국 헌법보다 더 좋은 민주주의 헌법이란 말이에요. 전쟁 금지 규정뿐만 아니라 노동 같은 분야에도 아주 진보적인 조항들이 있어요. 일본이 거기에 준해서 오늘날까지 살아왔기 때문에 그나마 이만큼 된 거죠. 그런데 그걸 없애고 메이지유신 시대의 제국의 영광을 되찾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거죠.”
―그렇게 메이지시대로 돌아가는 건 일본이 더 후퇴하는 길이고 도덕적으로 더 왜소해지는 길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일본 언론이나 지식인들이 대거 일어나서 그런 군국주의적인 퇴행 현상에 대해 ‘안 된다’고 해야죠. 우리는 전두환 독재에 항거해 6월항쟁을 벌였잖아요. 우리 국민은 지금 누가 집권을 하더라도 그런 정의롭지 못한 가치관을 씌우려고 하면 바로 저항합니다. 그런데 일본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게 오랜 기간 천황제에 종교적으로 세뇌된 탓이에요.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지 않은 거죠. 공명당도 그렇고 어떤 면에서는 자민당도 천황을 모신 종교적 정당이거든요.”
고명섭 논설위원의 직격인터뷰.
―아베의 경제전쟁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우리나라를 뺐으니 경제적 타격이 올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지금은 그걸 우리 국민이 기꺼이 감내하는 수밖에 없어요. 이 상황에서 우리 국민이 사명감을 가져야 합니다. 일본이 근원적으로 퇴행 현상을 보이고 있는데 이건 세계사적 차원에서도 불행입니다. 우리가 세계의 보편적 질서를 지키기 위해 아베의 퇴행에 맞서 싸운다는 자부심과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결국엔 우리가 승리하게 돼 있습니다. 반도체 소재라든가 이런 것은 우리가 만들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단지 국제적 분업 구조 속에서 손을 안 댄 것뿐이에요. 노력하면 몇년 안에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다만 당분간은 충격이 있을 텐데, 그걸 아베가 노리고 있거든요. 우리가 주권의식을 가진 시민으로서 정의롭게 나서서 일본을 응징하고 국난을 극복해야 합니다.”
―일본 상품 불매운동을 더 적극적으로 해 나가자는 것이죠?
“그렇죠.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지금 일본이 보이는 제국주의적 행태에 이렇게 국민이 평화롭고 합리적으로 대응한 예가 세계 역사에서 많지 않다는 겁니다. 이건 전쟁이라고 해도 멋있는 전쟁이고 의미있는 전쟁이고 21세기의 새로운 양상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제가 단재 신채호 선생이 쓴 선언문을 가져왔어요. ‘조선혁명선언’(1923년)인데요. ‘강도 일본이 우리 국토를 없이하며 우리 정권을 빼앗으며 우리의 생존적 필요조건을 다 박탈하였다.’ 그러면서 ‘강도 일본을 살벌함이 우리의 정당한 수단임을 선언하노라’ 이렇게 씁니다. 일본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강도 짓을 해왔어요. 일제 침략이라고 하는 강도 짓을 당한 게 36년이라고 하지만 그 전후로 하면 근대 1세기 전체가 일본에 유린당한 역사예요. 그런데 그 유린 속에서도 우리는 민주의식을 키워왔어요. 나는 아베의 경제도발로 새로운 촛불혁명이 시작되고 있다고 봅니다.”
―일본의 경제도발이 계속되면서 지소미아(GSOMIA),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파기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저는 군사전문가가 아니어서 거기에 코멘트를 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모든 옵션을 올려놓고 정부가 지혜를 짜서 자유롭게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우리 국민이 해야 할 일이라는 점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시기에 우리 국민이 해야 할 일은 ‘이 사태는 반드시 승리로 끝난다’는 믿음을 갖는 겁니다. 이런 위기상황일수록 뭉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도 저도 아닌 정책 결정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적당히 타협하고 조금이라도 굴욕적인 외교를 한다면, 이 후유증은 우리가 감내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집니다. 지금은 우리가 일본에 요구할 것을 요구하고 인내할 것을 인내해 가면서 전세계 사람들에게 보편주의적 의식을 가지고 호소해야 합니다. 아베의 이번 결정은 일본 국민과 국가를 위해서 한 것이 아니에요. 아베가 자기 개인을 위해서, 정권의 야욕을 위해서 이 사태를 활용하는 것뿐이에요. 일본 국민에게 득 될 것이 없어요.”
―이번 참의원 선거 투표율이 48%로 역대 두번째로 낮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일본 사회 전반적으로 침체돼 있으면서 우익들만 기세를 올리고 있는 상황인데요. 이런 침체상태를 털어버리지 않으면 아베의 독주를 막을 방법을 찾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 국민이 일본 관광에 뿌리는 돈이 적은 돈이 아니고 일본의 지방경제에는 상당히 타격이 커요. 우리가 일본 여행 가지 않고 일본 상품 불매운동을 철저히 벌여야 해요. 그래야 비로소 일본인들도 자각할 수 있습니다. 그게 일본의 양심세력들이 힘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주는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지속적인 불매운동과 정부의 단호한 대응으로 일본 사회에 변화가 올 수 있다면, 나치 독일 이후 독일 지성계의 변화와 같은 변화를 일본에 가져올 수 있다면 세계를 위해서 굉장히 좋은 일이 되는 것이죠.”
―이번에 펴내신 책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에서 반야의 지혜를 강조하는데, 지금처럼 외교적으로 경제적으로 복잡하고도 어려운 때 그런 반야의 지혜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필요하죠. 반야라는 것은 지혜고, 지혜라고 하는 것은 궁극에 있어서는 ‘자기부정’입니다. 오늘 변하는 정세에서 나의 ‘아상’에 매몰되지 말고, 우리 아버지가 친일파였든 뭐였든 아상에 집착하지 말고 우리 사회가 오늘날 요구하는 지혜가 무엇이냐 이걸 찾아 나가자는 것이죠.”
―흔히 소아니 대아니 이런 말들을 합니다. 아상에 집착하면 소아고 그 아상을 부정하고 넘어서면 대아로 갈 수 있는 것인데, 한국이나 일본이나 정치지도자·국민들 모두 대아의 관점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일제 36년의 비극은 너무도 억울하고 처참한 일이었고, 이 죄악은 어떤 방식으로든 청산돼야 합니다. 그걸 허심탄회하게 인정하고 거기에 대해서 합의를 해야죠. 그리고 우리가 나아갈 미래에 대해서도 합의를 해야죠. 남북의 문제도 그렇습니다. 남북이 하나로 합쳐지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일본에 대한 대처도 얼마나 쉬워지겠습니까. 아베 정권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남북이 자꾸만 가까워지는 거예요. 그걸 되돌려 남북을 대립·분열시켜야 일본의 미래가 있다고 보는 거죠. 우리는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데 반해서 일본은 가능성이 줄어들고 있거든요. 이 기회를 그야말로 새로운 가능성으로 전환시키는 것, 이게 바로 반야입니다. 이런 반야의 지혜를 가지고 세계사적인 전환을 이루어내자는 거죠. 일부 보수세력은 일본 문제에 감정적으로 대처해선 안 된다고 하는데, 이런 말에 속아 넘어가면 안 됩니다. 아베의 도발에 정의로운 감정을 가지고 대처할수록 우리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인간이 되는 겁니다. 다시는 과거의 잘못된 유산을 우리 후손에게 남겨주지 않겠다고 하는 그런 결의를 보여줘야 합니다.”
michael@hani.co.kr
도올 김용옥 전 고려대 철학과 교수(오른쪽)가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통나무출판사에 있는 집필실에서 고명섭 <한겨레> 논설위원과 인터뷰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이승만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명예훼손이라니” 이승만 양자의 고소에 대한 도올의 항변
도올 김용옥 전 고려대 철학과 교수는 사상사와 정신사의 맥을 짚는 저작을 쉬지 않고 써온 철학자이자 한국 근현대사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쓴 전방위 학자다. 1974~77년 도쿄대 중국철학과 석사과정을 이수한 일본 유학파이기도 하다. 방송을 통한 철학·역사 강의도 활발히 하는 도올은 올해 초 <한국방송>(KBS) 프로그램 ‘도올 아인 오방간다’에서 한국 근현대사를 토크쇼 형식으로 강의하기도 했다.
이 방송 중에 ‘이승만은 미국의 괴뢰’라는 주장을 했다는 이유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인 이인수씨가 이승만학당 대표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를 대리인으로 세워 도올을 ‘사자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도올은 “학자로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해석을 한 것인데, 고소로 대응한 데 대해 슬픔과 모멸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도올은 “이승만에 대한 평가는 학자적 양심에 따라 사실에 근거해 내린 것이기 때문에 법정이 아닌 학술회의장에서 자유로운 토론으로 풀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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