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6일 오전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열린 원폭 희생자 위령식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베 일본 총리 주장 팩트체크
일본, 65년 협정때 준 5억달러로 ‘문제 해결’ 멋대로 해석
식민지배 불법성 미합의…대법은 ‘협정밖 문제’ 제기한 것
“국제법은 국가간 협상으로 개인청구권 소멸 인정 안해”
‘현금화 차단’ 집착은 북한 등에도 배상하지 않으려는 의도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6일 오전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열린 원폭 희생자 위령식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6일 “한국이 한-일 청구권협정을 위반하는 행위를 일방적으로 하면서 국제조약을 깨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베 총리는 히로시마 원폭 투하 74주년을 맞아 이날 열린 희생자 위령식에 참석한 뒤 기자회견에서 “(한국 정부는) (청구권) 협정을 먼저 제대로 지키면 좋겠다” “한국 측에 적절한 대응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말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지난 2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빼는 각의 결정 이후 아베 총리가 공개석상에서 한-일 관계를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 판결은 국제법 위반인가?
아베 총리를 비롯한 일본 당국자들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이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협정 위반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식민지배의 불법성’에 대해 일본과 다른 해석에 근거해 배상 판결을 내린 대법원 판결을 국제법 위반이라고 비난하는 일본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 판결의 핵심은 ‘일본의 식민지배가 불법’이었다는 명확한 해석이다. 1965년 청구권협정 체결 당시 한국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주장했지만, 일본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일본은 청구권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고, 당시 일본이 한국에 준 5억달러는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이 아닌 독립 축하금과 경제협력 등의 명목이었다. 한국은 이 돈을 받고 이후 청구권을 주장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 일본의 주장이다.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 문제는 양국 간에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봉인’된 것이다.
하지만 한국 대법원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명확히 지적하고 이에 따라 1910~1945년 일제에 의해 불법적으로 이뤄진 강제동원은 배상되어야 한다고 판결하면서, 청구권협정에 대한 한·일 해석의 불일치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남기정 서울대 교수는 “대법원 판결은 식민지배 배상이라는, 청구권협정의 밖에 있는 새로운 문제를 제기했는데, 일본은 청구권협정으로 모두 해결됐다는 기존 틀 안으로 다시 끌어들이려 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남 교수는 “일본 정부가 한국의 삼권분립을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것은 내정간섭이며, 배상 청구를 받은 일본 기업을 상대로 설명회를 열어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배상하지 못하게 하는 행위야말로 부정한 외교보호권을 행사하는 국제법 위반으로 볼 수 있다”고 짚었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1999년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일본 정부에 강제노동 피해자들에게 보상하고 피해자 구제에 노력하라는 공문을 보낸 적이 있고, 국가 간 협상으로 개인 청구권이 소멸될 수 없다는 게 2000년대 이후 국제법의 흐름”이라며 일본 주장의 허점을 지적했다.
일본은 왜 ‘현금화 차단’에 집착하는가?
현재 일본 정부는 한국과의 모든 외교 협의를 거부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압류한 일본 기업 자산의 매각 등 ‘현금화’를 막는 조치를 취하고, 한국이 알아서 강제동원 피해 배상 문제를 해결한다는 조치를 가져오지 않으면 대화에 나서지 않겠다는 태도다. 청와대는 지난달 두차례 일본으로 특사를 보냈으나 일본이 대화를 거부했고, 미국의 중재안도 일본이 거부했다고 밝힌 바 있다.
아베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쪽의 배상을 이토록 강하게 거부하는 것은 “이것이 한-일 청구권협정의 틀을 허무는 것인 동시에 여기서 물러설 경우 북한이나 동남아시아 나라 등과의 식민지배 청산 문제에서도 일본이 크게 밀리게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양기호 교수는 해석한다.
특히 북한과의 수교 문제가 핵심으로 꼽힌다. 장기 집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업적을 이루지 못한 아베 총리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두번의 방북을 통해서도 이루지 못한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를 통해, 일본 근대가 남긴 역사 문제의 최종적 해결이라는 유산을 남기고 싶어 한다. 이를 위해 아베 총리는 최근 북한에 조건 없는 대화를 제안한 상태다.
아베 총리는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와 화이트리스트 제외 등을 통해 한국을 압박함으로써 일본에 유리하게 체결된 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의 내용이 한-일 관계에서도 변함없이 유효하다는 것을 확실히 하고, 이 틀을 북-일 국교 정상화에서도 모델로 이용하려 한다고 전문가들은 해석한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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