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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호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이 7월24일(현지시각)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일반이사회에 참석해 일본의 수출규제를 비판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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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선 다변화’ 해제 이후 20년, 새 국면 놓인 한-일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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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호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이 7월24일(현지시각)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일반이사회에 참석해 일본의 수출규제를 비판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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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선 다변화(지나친 대일본 적자를 줄이기 위해 품목 단위로 일본 수입을 제한하는 조처) 해제 직후, 해당 품목의 대일 수입이 다소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제품의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대세계 무역 흑자가 대일 무역 적자보다 오히려 크게 증가하면서 이를 상쇄했다.”(2007년 8월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마침내 정부는 일본 경제 의존을 극복하는 법을 깨달은 듯 보였다. 세계화였다. 1977년부터 1999년 7월까지 20년 넘게 이어온 수입선(수입처) 다변화 정책을 폐기한 지 8년 만에 정부가 내놓은 평가에는 자신감이 묻어난다. 대일본 적자의 절대 규모가 커지는 흐름은 물론, 한동안 이어졌다. 다만 수출이 더 빨리 늘었다. 전체 교역에서 대일본 적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가파르게 줄었다. 2011년부터는 적자 규모 자체도 줄어들기 시작한다. 세계를 상대하는 한국에 일본 경제는 점점 중요성을 잃어갔다. ‘일본 적자에 신경 쓰기보다 글로벌 생산 체계에 더 깊숙이 들어가 수출을 더 많이 늘리고, 세계와 경쟁해 생산성을 끌어올리면 된다.’ 합리적인 전략으로 여겨졌다. 그때는 그랬다.
수입처 다변화 정책이 폐기된 지 꼭 20년이 지났다. 세계화로 ‘극일’했다고 믿어온 그 시간을 지나 지금 우리 경제는 어떤 자리,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가? 전문가들이 짚는 대목은 크게 두 가지다. 변화하는 자리에 따라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고, 무너뜨리고, 다시 정해온 일본과 또다시 전혀 다른 새로운 경제 관계를 고민해야 할 국면에 ‘불현듯’ 놓였다. 규모는 예전 같지 않다. 달라진 두 나라의 자리는 이제 양국 관계를 넘어 세계 생산 체계에 맞닿아 있다. 어쩌면 본격적인 “금수 조처도 아닌”(이하라 준이치 일본 주제네바 대표부 대사) 우대조항을 폐지한 수준의 ‘저강도 위협’ 정도를 생각하고 수출규제를 꺼내든 일본에도 당혹스러운 상황일 수 있다.
전적 의존→우려→세계화 통한 우회
한-일 경제 관계는, 우리 입장에서 크게 보면 전적인 의존(1960~70년대), 의존에 대한 우려와 고민(1980~90년대), 세계화 전략을 통한 우회(2000년대 이후) 순서로 변화해왔다.
전적으로 의존했다. 내수에 집중하는 수입 대체 산업화를 폐기하고, 대신 수출을 경제전략의 최우선 과제로 삼기 시작한 직후(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1967~71년)부터 일본에서 자본재 수입, 직접투자, 기술협력, 일본 상사를 통한 수출이 한국의 세계 교역을 규정해왔다. 한국의 값싼 노동력, 일본의 중급 기술력, 미국의 첨단기술과 소비시장이 수직적으로 맞물리는 한·미·일 분업 구조로 한국은 국제 교역에 첫발을 뗐다. 수출이 느는 만큼 대일 적자 규모가 커지는 구조도 이때 자리잡았다. 이미 1970년대 초반부터 언론은 탄식한다. “일본의 공해수출기지나 노동력 이용을 위한 하청 기지적 관계 흐름이 계속된다면… 그것이 강요할지도 모르는 예속관계를 운명론으로 핑계 댈지도 모른다.”(<동아일보> 1970년 12월19일치)
의존할수록 우려와 고민이 깊어갔다.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일본의 엔고와 한국의 3저 호황이 교차했다. 그래도 대일 무역 적자는 여전했다. 이듬해 전체 무역수지가 역사상 최초로 마침내 흑자(31억달러) 전환했지만 같은 해 일본과 교역에서는 51억달러 적자를 냈다. ‘한국의 대일 무역 불균형’은 한-일 협의의 첫자리를 차지하는 중요한 주제가 됐다. 다만 고환율·고임금으로 믿음직한 해외 생산 국가가 필요했던 일본과 기술이전이나 생산성 향상이 절실했던 한국 모두 멀리 내다보는 목표는 비슷했다. ‘단기적으로 적자를 감수하더라도 일본의 직접투자와 기술이전을 통한 산업 경쟁력 향상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우리 정부에도 번졌다. 1977년부터 이어온 수입처 다변화 정책 대상 품목을 서서히 줄여가기로 했다. 요컨대, 이때까지 시장 개방과 자유로운 무역, 이를 통한 경쟁력 확보를 설득한 쪽은 일본이었다. 이를 막아내며 머뭇거렸던 쪽이 우리였다. 막대한 흑자국(일본)과 적자국(한국) 자리에서 마땅히 할 만한 주장이었다.
그리고 2000년대, 자리가 뒤바뀌기 시작한다. 생산 절차를 세밀하게 쪼개고, 각 부분을 가장 최적화한 지역에서 맡도록 흩뿌리는 ‘세계적 생산 분업’(세계 가치 사슬)이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시점이다. 생산에 필요한 부품과 소재가 수차례 국경을 넘다보니, 전체 경제성장보다 교역이 더 빨리 늘었다. 2000년대 세계경제는 연평균 4.3% 성장했지만, 세계 교역량은 6.9%씩 늘었다. 통계가 있는 미국·중국·일본·한국 등 주요 41개국의 세계 가치 사슬 참여도(전체 수출에서 해외 부가가치가 차지하는 비중(후방 참여)과 외국 수출품에 쓰일 중간재 수출 비중(전방 참여)을 합한 것)는 1995년 평균 42.1%에서 2011년 53.6%로 10%포인트 넘게 늘어난다.(한국은행, ‘글로벌 가치 사슬이 생산성 향상에 미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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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플라자 합의(왼쪽)와 2011년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국장급 협의(오른쪽) 모습. 한겨레 자료 ,한겨레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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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세계화 골몰, 일본은 제조업 부진
한국은 이 흐름에 한층 더 열을 올렸다. 1995년 41.7% 정도였던 세계 가치 사슬 참여도를 2011년에는 59.6%까지 불린다. 세계 최대 공장이 된 중국을 지척에 두고 있었다.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은 지지부진했지만, 대신 세계 각 나라와 자유무역협정(FTA)을 공격적으로 맺었다. 부품을 조립해 최종재를 만들어내는 비교적 부가가치가 낮은 영역은 중국과 동남아시아로 미루고, 대신 반도체·석유화학·철강 같은 중간 재료를 가공해 공급하는 역할을 주로 맡았다. “G20 국가 가운데 가장 글로벌 가치 사슬 참여도가 높은 국가”(2015년 OECD 한국 보고서)로 평가됐다. 관건은 주로 ‘어떻게 하면 생산 분업 내에서 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까?’로 모였다. 경쟁력 있는 산업은 세계 수요에 맞춰 과다하게 투자하고, 그렇지 못한 산업은 규모를 줄인 뒤 수입에 의존해버리는 ‘통상국 한국’의 모습은 한층 견고해졌다. 세계 교역을 바라보는 넓이가 변하자 일본발 무역 적자도 부차적 문제로 여겨졌다.
같은 시기, 일본의 모습은 혼란스럽다. 1980년대 일본에서 처음 탄생한 단어인 ‘제조업 공동화’는 1990년대 중반 이후 현실이 됐다. 일본 국내 제조업체 수는 1996년 37만 개에서 2013년 20만 개로 줄었다. 품목별로 해당 국가 상품의 비교우위를 나타내는 무역특화지수(전체 무역액 대비 무역수지)는 1992년에서 2014년 사이 전자기기(0.682→0.046), 전자부품(0.628→0.125)같이 일본이 자신해온 제조업 분야 전반에서 크게 낮아졌다. ‘메이드 인 재팬’이 자국 시장에서는 인정받지만 세계 시장에서는 힘을 잃어버리는 ‘갈라파고스화 현상’이 진행되고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2000년까지만 해도 규모 면에서 세계 가치 사슬의 중심 국가로 규정됐던 세 곳(미국·독일·일본) 가운데 한 곳이던 일본은 아시아 교역의 중심 자리를 2000년대 중반 중국에 내어준다.(세계은행, ‘세계 가치 사슬 개발 보고서 2019’)
다만 이 시기 일본 모습을 일방적인 몰락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특정한 표준이 있는 부품을 어느 곳에서나 만들고 조립하면 되는 ‘모듈형 생산’이 컴퓨터(PC)와 스마트폰 바람을 타고 세계 분업 체계를 확산하는 주요 요인이 됐지만, 일본은 이와 상반된 ‘통합형 생산’을 중심으로 제조업을 발달시켜온 오랜 역사를 지켰다. 소재에서 부품으로 부품에서 완성품까지 유기적인 결합을 중시하는 생산방식인데, 덕분에 일본 국내에서 뿌리 산업이 발달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반도체를 비롯한 몇몇 부품과 전자기기의 주도권을 한국에 빼앗겼지만, 소재·부품을 중심으로 세계 가치 사슬에서 나름의 입지를 다져갔다.(김규판, ‘일본 제조업 경쟁력-갈라파고스화 어떻게 볼 것인가?’) 본격적이지는 않지만 최근 들어 다시 엔저, 개발도상국들의 인건비 상승, 국내 숙련노동자의 필요성을 등에 업고 제조업 회귀 현상도 나타난다. 그렇게 한국과 일본은 2019년 7월을 맞았다.
일본이 쥔 ‘0.5%’에 무력했던 한국
2019년 일본의 수출규제는 “도무지 경제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조처”(정성훈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라는 평가가 자연스럽다. ‘무역 흑자국의 수출규제’라는 이상한 조합이다. 굳이 경제적 이유를 찾으려 한다면 아시아 경제의 주도권을 상실해온 지난 30년에 대한 불안 해소, 지지부진한 아베노믹스의 타개책, 공동화된 제조업을 다시 일구기에 앞서 한국 미래산업(시스템 반도체, 전기자동차 등)에 가한 견제 정도를 떠올릴 수 있다. 다만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로 이런 목적을 이룰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본심이 어떠했든 경제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자국 취약 산업과 일자리 보호’라는 오랜 반세계화 주장의 주요 근거들을 앞세운 미국 도널드 트럼프식 보호 무역주의와도 사뭇 다른 결이다.
그러나 적은 출혈로 큰 공포를 자극했다는 점에서는 효율적이다. 수출규제의 시작점인 반도체 소재 3개(포토레지스트,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품목의 지난해 한국 수입액은 3억9천만달러(약 4600억원) 정도다. 지난해 대일 수입액(546억달러)의 0.7%, 한국 반도체(메모리) 수출(830억5천만달러)에 견주면 0.5% 수준이다. 이홍배 동의대 교수(무역유통학부)는 “한국의 대일 부품 소재 적자는 2010년 242억달러에서 2017년 160억달러까지 줄어왔다. 이렇게만 보면 일본 의존을 상당 부분 벗어났다고 할 수 있지만, ‘0.5%짜리’로 상징되는 최첨단 소재에 대해서는 여전히 무력했고 이들 소재를 단기간 대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문제를 간단하지 않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일본과 대화로 풀 완충지대 없어
의존과 탈피를 이어온 일본과의 관계는 이로써 새로운 숙제를 떠안게 됐다. 그동안 전체 규모 면에서 일본 의존을 측정하고 대응했다면, 이제는 좀더 세밀한 소재·부품 단위에서 ‘대체 가능성’을 기준으로 일본과 불균형한 관계를 측정하고 조정해야 한다. 소재부터 최종 생산물까지 잇는 산업 체계를 터 닦기 전, 단시간에 수출 규모를 키울 수 있는 세계 가치 사슬에 깊숙이 속하는 길을 택해온 한국 경제가 언젠가 직면할 수밖에 없었던 고민이다.
더 본질적인 우려는 경제적 목적을 찾아보기 어려운 비합리적인 조처 자체에서 나온다. “일본의 행동은 심지어 자유무역을 강조해온 국가에서마저 경제적 실리를 넘어선 정치적 목적의 수출규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렇게 세계 가치 사슬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강태수 대외경제연구원 선임 연구위원)는 한숨이 터진다. 세계 가치 사슬 참여도는 2012년을 정점으로 조금씩 줄고 있다. 구조적 이유(개발도상국 인건비 상승, 선진국 숙련노동 필요성 등)도 제기되지만 세계화의 중심 국가였던 미국과 중국 두 나라가 갈등하며 움츠린 영향이 크다. 국외로 나간 생산을 국내로 끌어모으는 리쇼어링이나 자국 산업 경쟁력 확보를 최우선으로 삼는 자국화가 다시 대세로 떠오른다.
이런 분위기 속에 일본의 수출규제는 세분되고 길어진 글로벌 가치 사슬이, 그만큼 예측할 수 없는 위험성을 곳곳에 품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4억달러도 되지 않는 소재 3개가 반도체 생산을 막고, 반도체를 바탕으로 한 PC와 스마트폰 생산, 미국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의 서비스 제공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두려움이다. 두려움만으로 자유무역은 멈칫할 수 있다. 자유무역이 기대어온 것이 실은 ‘상대도 세계경제 속에서 합리적으로 실속을 챙기려 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 정도였던 탓이다. 지금 한국과 일본에는 이런 믿음을 지킬 수단마저 마땅치 않다. 어느 정도 자유무역 가치를 규율해온 세계무역기구(WTO)는 ‘개도국 지위’ 문제를 들고나온 미국 견제로 무력화할 위기에 처했다. 2000년대 초반 추진했던 한-일 FTA 협상은 완전히 중단됐고, 일본이 주도하는 지역 단위 다자무역 기구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서 한국은 빠져 있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서로에게 자유무역 원칙을 어느 정도 강제하거나 대화로 풀 만한 완충지대가 거의 없는 상태”(김영근 고려대 글로벌 일본연구원 교수)다. “당장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이번 사태로 일본 소재는 너무 큰 리스크가 되어버렸다”(한 반도체 업체 관계자)는 반응은, 그래서 당연하다. 세계 가치 사슬 한 부분에 대한 미세한 공격이 예측 불가능한 리스크로 인식되고, 모든 국가가 함께 움츠러드는 상황으로 몰려가는 셈이다.
소재 하나에 흔들리는 자유무역
그리하여 지금, 한국 경제 그리고 일본 경제는 어디에 있는가? 의존관계는 복잡해졌다. 세계화를 믿고 특화해온 산업은 작은 소재 하나하나에 흔들린다. 자유무역의 가치는 빛바래고 있다. 의존하고, 추격하고, 경계하고, 벗어났다 믿어버리며 54년을 이어온 한-일 경제가 다시 무엇도 장담할 수 없는 새로운 자리 찾기에 나섰다. 그사이 한-일 경제는 더는 두 나라만의 문제일 수 없는 수준으로 세계경제와 얽혀버렸다. 2019년 여름, 한국과 일본 경제의 새판짜기는 경제적 실리와 국가주의, 세계화의 이점과 위험이 복잡하게 얽힌 세계경제의 방향을 가르는 중요한 국면으로 기억될지도 모를 일이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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