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 둘째)와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오른쪽 둘째)이 2일 전략물자 수출 간소화 대상인 백색국가 명단(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하기 위한 각의(한국의 국무회의)에 참석해 있다. 도쿄/EPA 연합뉴스
남기정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부교수
바야흐로 ‘1965년 체제’ 종식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일본이 당긴 무역전쟁의 방아쇠는 그 신호탄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 기원은 지난해 시작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다. 신한반도체제 구축의 새로운 국면이 시작된 것이다. 신한반도체제란 한반도가 전쟁과 대립의 무대에서 평화와 협력의 무대로 변화하여 만들어내는 새로운 질서다. 이를 위해 동북아에 전쟁의 논리를 강요하는 두 개의 전후를 극복해야 한다. 냉전이라는 이름으로 지속되는 제2차 세계대전 전후와 정전이라는 이름으로 지속되는 한국전쟁 전후가 한반도에서 중첩되어 전쟁의 위기를 고조시켰던 것. 그것이 2017년 위기의 본질이다.
2018년은 ‘두 개의 전후’ 체제가 해체되기 시작한 해이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진행되는 가운데 냉전 체제 위에 성립한 한일 1965년 체제 해체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2018년 4월의 판문점회담과 10월의 대법원 판결은 불가분의 하나이다. 신한반도체제에 조응하는 한일관계 구축이 과제로 부상했다. 동북아 냉전과 한반도 정전을 보증하는 한미일 3각 안보협력의 하위동맹으로 존재하던 한일관계는 신한반도체제에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다.
한국은 전쟁의 위기를 고조시켜 온 한반도 정전협정체제를 종식시키려 했다. 일본은 한반도 정전협정체제를 전제로 성립한 동북아시아의 전략적 균형을 유지하려 했다. 이것이 한일 사이에 지정학의 전선을 형성했고, 정전과 냉전을 해석하는 역사적 층위가 어긋나면서 상호불신을 증폭시켰다. 이것이 이번 무역전쟁의 배경이다.
남북 대화로 촉발된 ‘신한반도체제’ 정전협정체제 끝내려는 한국, 협정 전제 전략적 균형 강조한 일본 갈등과 불신이 무역전쟁 배경으로
‘1965년 체제’ 한·일 해석 큰 간극 관계 악화 때마다 봉합으로 넘겨 이제 근본적 원인치료 할 때 됐다
한반도 비핵화 국면 일본 역할 견인 식민지 불법성 문서화 등 공유 북·일 국교 정상화 등 지렛대로 남북일 새로운 미래 구축 나서야
한국의 외교 노력과 미국의 중재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국을 수출절차 우대국 명단에서 제외한 일본이다. 군사력을 동원하지 않았을 뿐, 일방주의 외교의 전형이다. 주장하는 외교에서 행동하는 외교로 나선 것이다. 일본도 ‘전후’에 결별을 선택했다. 이러한 일본을 어떻게 봐야할 것인가? 2017년 9월 나온 일본의 전략보고서 <미일동맹을 재구축한다>가 힌트를 제공하고 있다. 그 보고서가 한국과 관련해서 내린 결론은 충격적이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이행을 지속적으로 요구할 것이며, 그 때문에 한일관계가 냉각되더라도 상관없다는 것이 하나요, 문재인 정부가 지나치게 대북 화해에 나설 경우 미국과 함께 일본이 견제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 또 하나의 결론이다. 이번 수출규제 무역전쟁 도발에는 아베 총리와 그 주변 인물들이 공유하는 이러한 대한국 인식이 거칠게 반영되어 있다.
이쯤되면 아베가 추구하는 역사수정주의가 지정학과 만나 바야흐로 정책으로 추진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베 총리와 그 주변이 구상하는 일본의 재기는 메이지유신의 일본이나 대동아공영권의 지도국 일본의 부활은 아니다. 그들이 그 정도로 몽상가는 아니다. 정치적 현실주의자로서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1920년대 일본의 외교를 모델로 한 것이다. 제국주의 열강의 협조에 불과했던 ‘국제협조주의’의 기치 하에 국제연맹을 이끌었던 당시의 일본 외교가 그 모델이다. 100년 만에 다시 일본이 자유주의 국제질서 수호의 기수로 나서겠다는 것이다.
일본의 이번 도발이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에 나온 것은 일본이 바라보는 1919년이 우리의 그것과 다르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내 보여 주었다. 우리가 윌슨의 민족자결에서 기회를 본 반면 일본은 안정적인 조선 지배에 대한 자신감을 얻고 있었다. 파리 강화회담에 대한 정반대의 인식이 2019년에 재현된 것이다.
일본이 먼저 주장하고 미국이 받아들인 모양새로 전개되는 인도태평양전략도 재기하는 일본 구상의 일환이다. 트럼프의 미국을 상대로, 한편으로는 미일동맹에 미국을 묶어 놓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미국이 일본을 버릴 때를 대비한 이중의 포석이 인도태평양 전략이다. 일본은 인도태평양에 관심을 갖는 미국과 전략적 이익을 선점하여 공유하는 한편,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빠져 나갔을 때를 대비하여 이 지역에 돌아오고 있는 영국 프랑스 등과의 관계를 정력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과거 이 지역, 즉 아프리카 동부에서 인도를 거쳐 인도차이나에 이르는 이 지역이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였다는 점을, 그리고 1920년대 영광의 일본 외교가 이들과의 협조외교였다는 점을 상기해 보기 바란다. 일본이 이 지역에서 규칙에 기반한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옹호하겠다고 나서는 모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남기정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부교수.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이런 일본을 상대로 신한반도체제를 어떻게 구상하고 실천할 것인가? 신한반도체제 하에서 남북일 평화삼각형의 밑변으로서 한일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가? 큰 전략과 궁극의 목표 설정 없이 한일관계는 관리되지도 않을뿐더러 새로운 한일관계로의 재구축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다시 큰 전략과 궁극의 목표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세 가지 목표와 전략을 구상해 볼 수 있다. 현재의 당면 과제, 과거사 문제 풀이, 그리고 미래 구축을 위한 한일협력이다. 현재의 당면 과제를 풀고 동아시아의 새로운 미래 구축을 위한 한일협력은 한반도 비핵화에서 일본의 역할을 견인해 내는 것을 첫 번째 과제로 설정해 볼 수 있다. 북한에게 핵과 미사일은 한소 한중 국교정상화로 만들어진 불리한 국제환경을 시정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북한의 핵 포기를 유도하려면 북미간 협상의 진전과 동시에 북일 국교정상화가 관건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을 건너뛰려는 일본을 상대로 해서 북일 사이에 자리를 잡고 북일 국교정상화를 동북아 평화체제의 공공재로 삼는 노력이 전개되어야 한다. 이는 동북아 비핵무기지대조약의 창출이라는 동아시아의 미래 구축을 위한 과제로 이어지는 고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동북아에는 비핵무기지대 조약을 만들기 위한 기초가 의외로 마련되어 있다. 지난해 남북은 판문점선언을 통해 한반도 비핵지대화에 대한 인식을 공유했다. 1998년 한일공동선언에서는 한국이 일본의 비핵3원칙을 평가함으로써 한일 양국은 비핵평화의 가치를 공유했다. 2002년의 북일공동선언에서는 북한 핵문제를 국제법에 따라 해결한다는 원칙을 공유함으로써 북일 양자 사이에서도 비핵평화의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세 변의 양자 사이에서 확인된 비핵 평화주의를 남북일 공동의 인식으로 엮어내는 것으로 동북아시아에 비핵무기지대를 창출해 낼 수 있다. 비핵평화는 아베 조차도 쉽게 부인하지 못화는 일본의 국시이며, 일본의 시민사회가 가장 중시하는 가치이다. 개헌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한 일본에서 반전 비핵평화의 가치를 중심으로 시민사회가 재조직되는 조짐이 보인다. 이들과의 협력을 어떻게 이끌어낼지 고민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이 과거사 청산의 한일협력이다. 신한반도체제에 어울리는 과거사 청산을 어떻게 할 것인가? 1876년 강화도조약 이래 진행되어 온 비정상적 한반도-일본 관계를 어떻게 총괄하여 극복할 것인가? 무역전쟁 도발이라는 사태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반전시키는 노력이 여기에서 경주되어야 한다.
현재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이래 최악의 한일관계에 빠진 원인은 다름 아닌 1965년 체제 그 자체이다. 1965년 체제란 그 해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 협정을 체결하여 국교를 정상화했음에도, 이들 조약과 협정에 대한 해석의 불일치 때문에 그 기초가 늘 흔들려 왔던 것을 표현하는 용어다. 그 중에서도 핵심적인 것은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 문제이다.
한일기본조약의 해석과 관련하여 우리 정부는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을 전제로 하고 있는 데 반해 일본은 식민지 지배가 합법이었다는 해석에 입각해 있다. 그 간극을 좁히지 못한 채, 오랜 교섭 끝에 한국과 일본은 ‘합의할 수 없음에 합의’하는 형태로 이 문제를 접었던 것이다. 이후 양국은 역사문제를 둘러싸고 한일관계의 기초가 흔들릴 때마다 이를 관리하는 것으로 문제를 봉합해 왔다. 그러나 지난 해 대법원 판결이 나온 이상 이제 더 이상 한일관계가 봉합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이제는 봉합이 아니라 근본적인 원인치료를 할 때가 된 것이다.
이제 1965년 조약과 협정에 대한 양국의 해석을 일치시키는 일에 나서야 한다. 이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있을 수 있다. 아베의 일본을 상대로 그것이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1965년 체제의 한계에 주목하면 비관적일 수 있다. 그러나 1965년 체제의 한계를 극복해 온 역사에 주목하면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 희망의 물꼬를 튼 것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조직된 우리 시민사회였다. 민주화를 이룬 영역에서 조직화한 시민사회가 우리 정부를 움직여 일본에 문제제기를 하면서, 일본의 역사인식이 조금씩 진보했다.
일본 정부는 1993년 고노담화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군의 관여를 인정했고, 1995년 무라야마담화에서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와 반성을 표명했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에서는 한국 국민을 구체적으로 지칭해서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와 반성을 표명했고, 2010년 간 나오토 담화에 이르러서는 식민지 지배가 한국 국민의 의사에 반한 것이었음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역사수정주의자 아베도 이들 담화와 선언을 부정하거나 부인할 수 없었다.이는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을 확인할 논거가 될 만한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을 문서화하여 한국과 일본이 공유하는 일이다.
나아가 이를 징검다리 삼아 북한과 일본이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을 기본 인식으로 공유한다면, 2002년 북일공동선언에서 일본이 약속한 경제협력은 배상의 명목으로 전환되어 북일국교정상화의 기초를 이룰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한일과 북일 양자 사이에 공유된 인식을 남북일 공동선언으로 엮어 낸다면 한반도-일본의 과거사를 총괄해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무역전쟁 도발은 ‘1965년 체제’ 종식의 새로운 역사가 개시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 일본의 이번 도발은 1876년 강화도조약을 체결한 이래, 한일 불평등조약 체제가 아직도 진행중이라는 사실을 깨우쳐주었다. 우리는 강화도조약이라는 불평등조약을 개정해볼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고, 그로부터 해방되어 1965년 국교를 정상화하는 과정에서도 이를 확실히 불식하지 못했다. 이제야 말로 이를 시정하는 외교 대장정에 나서야 할 때다. 한일 1965년 체제 극복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함께 신한반도체제구축의 필수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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