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8.02 20:14
수정 : 2019.08.02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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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을 마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일 오후(현지시간) 방콕 센타라 그랜드호텔 미디어센터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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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 관련 회의장서 강경화-고노 ‘설전’
싱가포르·중국도 가세해 공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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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을 마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일 오후(현지시간) 방콕 센타라 그랜드호텔 미디어센터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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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화이트 국가’(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결정을 내린 2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을 다자회의, 한·미·일 회담 등에서 모두 4차례 만나 “강한 유감”을 표하고 결정의 “즉각 철회”를 촉구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도 현재 상황에 대해 “많은 우려”를 표하고 “미국이 할 역할을 다 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아세안 관련 회의 참석차 타이 방콕을 방문 중인 강 장관은 이날 오후 4시30분께(현지시각) 센타라 그랜드호텔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을 만나 30분 동안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을 했다. 강 장관은 회담이 끝난 뒤 기자들을 만나 “이번 일측의 화이트리스트 결정에 대해 강한 유감 표명을 전달했다”며 “즉각 철회, 그리고 협의를 통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 대화에 나와라 이런 얘기를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이 회담에는 김정한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 가나스기 겐지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이 배석했다.
강 장관은 그동안 한-미가 일본의 결정을 막기 위해 노력한 사실도 설명했다. 그는 “오늘 이 사태가 있기 전까지 ‘우리가 끝까지 대화를 통해서 문제를 풀자’하는 얘기를 전했고 미국도 같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 대해서 굉장히 정말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도 이 상황에 대해서 많은 우려를 갖고 있고 또 앞으로 어렵지만, 어떤 노력을 이룩할 수 있는지, 할 역할을 다 하겠다라는 얘기가 있었다”고 했다. 앞서 미국은 일본 정부의 각의 결정을 막기 위해 한-일에 ‘분쟁 중지 협정’(standstill agreement)을 제안했지만 일본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강경화 장관은 이날 오후 늦게 기자단에 브리핑을 하면서도 “오늘 오후 한·미·일 외교장관 회의에서 일본이 우리를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각의 결정을 강행한 데 대해 부당성을 지적하고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며 “미국도 다양한 도전에 직면한 가운데 자국의 주요 동맹국인 한일간의 갈등이 계속되는 상황에 우려 표명하고, 사태 해결을 위한 양국의 대화를 강조하는 한편, 미국도 역할을 해나가겠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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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일 오후(현지시간) 방콕 센타라 그랜드호텔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과 외교장관 회담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했다. 폼페이오 장관이 기념촬영 후 강 장관과 고노 외무상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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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한-일 외교장관은 일본이 이날 오전 화이트 국가(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결정을 내린 지 1시간여 만에 ‘아세안+3(한·중·일)’ 외교장관 회의에서 만나 설전을 펼쳤다. 싱가포르, 중국 등의 외교장관은 한국 쪽 입장에 힘을 보태는 듯한 발언을 했다. 아세안 관련 회의에서 외교장관들이 일본의 이번 결정을 두고 직접 공방을 벌이는 이례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날 회의 시작 직후 “이것(일본의 결정)은 매우 일방적이고 자의적인 방식으로 이뤄진 결정이었다”며 “우리는 이러한 결정에 심대한 우려를 하고 있다는 말로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강 장관의 발언이 끝난 직후 고노 외무상은 “나는 강 장관이 하는 불만의 근원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맞받아치며 “한국은 그동안 특혜적인 지위를 누려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되거나 아니면 우리 아세안 친구들과 함께 동등한 지위를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에 올라 있지 않은 아세안 국가와 동등한 대우를 받게 되는 것일 뿐인데 뭐가 문제냐는 취지다.
그런데 고노 외무상이 발언이 끝난 뒤 싱가포르 외교장관이 ‘깜짝 발언’을 해 눈길을 모았다. 비비언 발라크리슈난 장관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뺄 것이 아니라 아세안 국가를 화이트 국가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취지로 고노 외무상의 발언을 직접적으로 꼬집는 발언을 했다고 전해졌다. 동아시아 지역 경제 통합을 위해서 상호 의존을 높여가는 것이 공동 번영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는 취지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도 싱가포르 외교장관의 말에 공감하는 발언을 이어가며 은근히 한국 정부에 힘을 보탰다. 왕이 부장은 발라크리슈난 장관의 말에 공감을 표하며 ‘아세안 국가와 한·중·일 3국은 한 가족인데, 이런 문제들이 생겨 유감스럽다. 이런 문제는 상대에 대한 신뢰와 선의로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강 장관은 이날 오후 결과 브리핑에서 “일본의 보복 조치가 자국이 개최한 G20 정상회의에서도 역설한 바 있는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환경 구축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회의 결과문서에도 이런 입장에 대한 공감이 반영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태국 정부도 동아시아정상회의(EAS) 결과 브리핑에서 “우리는 미-중이든 한-일이든 역내 무역 보복에 관한 최근의 조치에 유감을 표명한다”며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및 각의 결정을 사실상 ‘무역 보복’으로 인정하는 듯한 입장을 취했다.
방콕/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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