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1일 오전(현지시간) 태국 방콕 센타라 그랜드호텔에서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과 양자회담을 하기에 앞서 악수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방콕/연합뉴스
한-일 외교장관 55분간 회담
강경화 “‘화이트리스트 한국 배제 중단 요청’
강행 땐 지소미아 파기 뜻 전달
고노, 안보 목적 정당 조처 주장
징용배상 대응책 또다시 요구
2일 오후 한미일 회담 열리지만
오전엔 일 각의 결정 가능성 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1일 오전(현지시간) 태국 방콕 센타라 그랜드호텔에서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과 양자회담을 하기에 앞서 악수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방콕/연합뉴스
일본의 한국에 대한 보복성 무역규제 조치 이후 처음으로 한·일 외교장관이 만났지만 ‘화이트리스트 파국’을 막을 접점을 찾지 못했다. 2일 오전엔 일본이 각의(국무회의)를 열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안보상 수출심사 우대 국가)에서 제외하는 개정안을 통과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2일 오후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이 열릴 예정이지만, 미국의 ‘개입’이 위기의 현실을 바꾸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 회의 등에 참석하기 위해 타이(태국)를 방문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1일 방콕에서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을 만나 55분간 회담한 뒤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하는 조치를 멈추라는) 요청은 분명히 했다”며 “(배제 조치가 강행될 경우) 양국 관계에 올 엄중한 파장에 대해서도 분명히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양쪽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린 것으로 보인다. 회담을 마친 강 장관은 “그(우리 쪽 요구)에 대해서는 (일본의) 확답이 없었다”고 말했다. 회담 진행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외교부 당국자는 “양측 간 간극이 아직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고노 외무상은 일본의 대한 수출규제 강화가 안보를 목적으로 한 정당한 조치라고 주장했다고 <교도통신>이 전했다.
고노 외무상은 강 장관에게 한국 대법원으로부터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받은 일본 기업이 실제 피해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대응책을 또다시 요구했다고 <교도통신>은 보도했다. 한국 정부가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 압류자산을 ‘현금화’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요구다.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은 완전히 끝났다고 주장하면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배상을 거부하는 일본 기업들의 자산을 매각해 현금화할 경우 더 큰 보복조치 등을 하겠다고 위협한다. 고노 외무상은 한국 정부가 제안한 한·일 기업의 출연금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하자는 ‘1+1 안’에 대해서도 거부 입장을 반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은 이제 ‘화이트리스트 제외’라는 파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한국 제외 조처는 2일 오전 강행될 가능성이 높다. 조세영 외교부 제1차관은 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해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뺄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현재로서는 그렇게 보는 게 맞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 각의 결정은 몇시로 예상되느냐’는 질문에는 “오전 10시로 추측한다”고 답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최측근인 아마리 아키라 자민당 선거대책위원장은 지난 31일 밤 방송에 출연해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할 방침에 대해 “100% (한국 제외로) 향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에 대항해 한국 정부는 이달 말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까지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경화 장관은 이날 회담 뒤 “내일(2일) 각의 결정으로 (화이트리스트 한국 배제) 결정이 나온다면 우리로서도 필요한 조치, 대응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며 “일본은 수출 규제 조치 이유로 안보상의 이유를 들고 있는데, 한-일 안보의 틀에서 여러가지 요인들을 우리도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라고 말했다.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빼는 결정을 강행하면, 지소미아 파기로 나아갈 수 있다는 뜻을 일본 쪽에 전달했다는 뜻이다. 강 장관은 이날 회담에서 고노 외무상에게 “한-일 안보 협력의 틀에 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설명했다.
2일 오전 일본 정부의 각의 결정이 강행될 경우 이후 2일 오후에 열리는 한미·미일·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미국의 ‘중재’가 얼마나 역할을 할지는 미지수다. 강 장관은 미국이 한·일이 상황 악화를 중단하고 협상에 나서도록 ‘분쟁 중지 협정’(standstill agreement)에 합의할 것을 촉구했다는 외신 보도와 관련해 기자들에게 “(미국의) 중재 이전에 우리 쪽에서 이 수출 규제 문제, 또 한-일 간의 강제징용 판결 문제에 대해서 협의를 하고 만들어낼 수 있는 그런 시간적인 여유가 필요하다, 통상적으로 문제가 있는 국가 간에는 협의를 통해서 해결을 찾아야 하는데 그런 노력을 할 수 있는 시간과 여지가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추가 조치를 멈추고 대화를 통해 협의를 이어가자는 취지의 미국 쪽 제안에 일본도 호응하라는 취지로 읽히는 대목이다.
미국 정부는 일본에는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결정을 하지 말 것을, 한국에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압류한 한국 내 일본 기업 자산을 (매각 등으로) 현금화하는 것을 멈출 것을 요청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가 나온 바 있다. 다만 실제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미국의 ‘중재안’이 구체적으로 거론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세영 차관은 이날 국회에서 “미국의 (중재) 노력에도 일본이 좀처럼 자기 입장을 굽히지 않는 것으로 파악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결정으로 위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린 뒤 실제 발효까지 3주, 한국 수출 승인 허가 시한 90일 등의 기한 동안 한국의 대응과 국제 여론의 동향 등을 보며 한국을 압박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남기정 서울대 교수는 “일본이 올해 말까지는 한국을 압박하는 정책을 계속하겠다는 계산을 가지고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일본 기업 자산 현금화를 중단시키겠다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며 “미국도 한-일 간의 상황을 신중하게 고려해 나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방콕/노지원 기자, 박민희 기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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