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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상 산업연구원장이 23일 서울 중구 언론회관에서 안재승 <한겨레> 논설위원과 인터뷰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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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승 논설위원 직격 인터뷰 l 장지상 산업연구원장
일본 아베 정부의 수출 규제에 대한 비판이 국제사회로 확산되고 있다. 세계 유력 언론들이 한국을 상대로 한 ‘어리석은 무역전쟁’을 중단하라고 아베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수출 규제가 명백한 경제 보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베 정부의 수출 규제는 우리 경제의 일본 의존도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뼈아픈 대목이다. 우리나라는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50년이 넘도록 일본을 상대로 한번도 무역흑자를 낸 적이 없다. 지난해까지 대일 무역적자 누적액이 700조원을 넘는다. 지난해에도 241억달러(약 28조원) 적자를 냈는데, 소재·부품 적자 비중이 3분의 2에 이른다. 아베 정부가 우리의 약한 고리를 노린 것이다.
장지상 산업연구원장을 만나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들었다. 장 원장은 “전국민적으로 소재·부품·장비산업의 중요성을 알게 됐고 대기업들도 위기를 맞아 국내 중소기업을 키우는 게 득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라며 이번 사태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원장은 “과거처럼 사태가 진정되면 사람들 뇌리에서 사라지고 대책도 흐지부지되는 일이 없도록 이번만은 꾸준하고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23일 서울 중구 한국언론회관에서 했다.
사태 진정돼도 흐지부지되지 않도록 일관된 추진을
―일본 참의원 선거 결과가 아베 정부의 추가 경제 보복 움직임에 어떻게 작용할 것으로 예상하나?
“아베 정부가 뭐 때문에 그러는지 밝히지를 않아 예측하기가 어렵다. 무슨 이유에서 수출 규제를 했는지 이유를 정확히 알아야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 판단할 수 있는데, ‘신뢰 문제’라고 했다가 ‘안보 문제’라고 했다가 자꾸 딴소리를 하고 있다. 당분간 불확실성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수출 많이 해도 일본이 실익 챙기는 ‘가마우지 구조’
―일본의 수출 규제로 일본 기술에 의존하는 우리 산업 구조의 취약점이 드러났다. 이번 사태가 진정되더라도 한-일 관계가 다시 악화되면 똑같은 상황이 재연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산업화 과정에서 우리 경제는 기술 축적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중간재보다는 최종 완제품·조립산업을 중심으로 고속 성장을 했다. 초기부터 일본과 분업구조가 형성됐고 갈수록 의존관계가 고착되면서 이른바 ‘가마우지 구조’가 형성됐다. 우리가 수출을 많이 해도 소재·부품산업의 대일 의존 때문에 실익은 일본이 챙기는 구조다. 일본은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품질, 우리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물류상 이점, 독일 등 서구 선진국 대비 가격 경쟁력 등으로 한-일 기업 간 거래에서 확고한 신뢰를 확보했다. 그런데 이번 사태로 양국 간 분업에 대한 신뢰관계가 중대하게 훼손됐고, 우리 정부와 기업은 공급처 다변화와 밸류체인(가치사슬)에서 안보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됐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만은 소재·부품·장비 국산화와 조달 다변화 정책을 내실 있게 추진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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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상 산업연구원장이 23일 서울 중구 언론회관에서 안재승 <한겨레> 논설위원과 인터뷰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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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에 대한 단기 대응책의 하나로 대체 수입선 확보가 제시된다. 구체적으로 러시아와 중국 등이 거론되는데.
“단기적으로, 4~6개월 이내에는 대체가 쉽지 않다. 소재를 바꾸려면 품질 테스트, 수율 관리, 안정적 공급선 확보 등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다만, 중장기적으로는 우리 산업의 발전 단계나 소재·부품산업 수준을 고려할 때 유인 구조를 적절히 갖출 경우 대체 공급선을 충분히 확보하고 생산 체계를 운영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정부가 이달 말 중장기 대책으로 ‘핵심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소재·부품·장비 국산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추진해온 주요 과제인데 지금 현실을 보면 구호에 그쳤던 게 아닌가 생각된다.
“정부가 2001년 ‘소재부품특별법’을 제정한 이후 지난 19년간 4차례의 기본계획을 수립하며 정책적 지원을 했다. 그 결과 생산액이 2001년 230조원에서 2018년 746조원으로 3배 이상, 수출액은 620억달러에서 3162억달러로 5배 이상 증가했다. 일정 부분 성과가 있었다. 다만 전자 부품과 자동차 부품 등 부품산업은 양적·질적 성장을 했으나 소재 분야는 그렇지 못했다. 소재는 원천기술에 기반한 산업이어서 투자 회수 기간이 길고 리스크가 커 중소기업이 감당하기 힘든 분야다. 또 기획 단계부터 수요처인 대기업과 긴밀한 연계가 필요하다. 그러나 수요 기업과의 연계가 선언적 수준에 그치면서 연구·개발(R&D)의 사업화 성과가 미미했다. 또 중소기업의 부족한 혁신 역량을 보완해줄 수 있는 대학과 출연연구소 등 공공부문의 연구 수요와 산업체의 실제 수요 사이에 간극이 큰 것도 원인이다.”
정부·기업 협력해 ‘부품·소재산업 생태계’ 만들어야
―지난 18일 대한상의의 ‘제주 포럼’에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국내 중소기업도 불화수소 생산이 가능한데 대기업이 사주지 않는다”고 지적했고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은 “물론 만들 수 있겠지만, 품질의 문제”라고 반박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둘 다 맞다. 중소기업이 개발을 해도 대기업이 사주지 않으면 팔 수 없다. 또 중소기업이 기술적으로 생산이 가능하다고 해서 무조건 팔 수 있는 게 아니다. 중소기업 입장에선 국내에서도 생산할 수 있는데 대기업이 협조를 안 해준다고 불만을 얘기할 수 있다. 그러나 거꾸로 대기업은 일본에서 괜찮은 제품을 계속 수입해서 사용할 수 있는데 새 제품을 쓰기 위해 공장을 멈추고 테스트를 할 이유가 없었다. 대기업 입장에선 굳이 위험 부담을 안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풀어야 하나?
“소재·부품·장비는 무엇보다 제대로 돌아가는지 실증(테스트)을 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중소기업은 여력이 없고 대기업은 기존에 사용하는 제품이 있는데 테스트를 하려고 자기 돈을 들일 이유는 없다. 대기업이니까 부담하라고 할 수는 없다. 정부가 예산으로 실증 인프라를 만들어줘야 한다. 또 소재·부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과 사용하는 대기업이 처음부터 끝까지 협업을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은 연구·개발 능력이 떨어진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이나 대학이 산학연 협력을 통해 중소기업의 연구·개발을 지원해줘야 한다. 다시 말하면 정부가 실증 인프라를 만들어주고 수요처인 대기업이 처음부터 참여하게 하고 산학연 협력을 통해 중소기업의 연구·개발을 지원해주는 ‘소재·부품·장비산업 생태계’를 만들어야 국산화에 성공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소재·부품·장비 국산화는 공정경제이고 혁신성장이다. 단발적인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생태계 구축이 필요하다. 정부가 곧 발표하는 대책에 꼭 들어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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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상 산업연구원장이 23일 서울 중구 언론회관에서 안재승 <한겨레> 논설위원과 인터뷰하고 있다.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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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폐쇄적 수직계열화 체계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력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나라는 ‘다수’의 중소기업들이 ‘소수’의 수출 대기업에 값싸고 품질 좋은 부품·소재를 적기에 납품하는 분업구조를 기반으로 수출 대기업이 경쟁력을 확보해 단기간에 고속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이런 수요 독점적 시장구조는 재벌 대기업의 소유·지배구조와 결합하면서 소수 대기업이 국내 시장에서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게 만들었다. 현재와 같은 수직적 분업구조에선 중소기업이 거래 중단이나 물량 감소 등을 걱정해 대기업의 불합리한 요구를 수용하면서 납품 경쟁을 하게 된다. 이런 구조에서 벗어나려는 중소기업들은 국내 대기업과 경쟁하거나, 해외 시장에서 불확실한 매출 증대를 위해 막대한 투자·광고비를 감내해야 한다. 대기업은 수직적 분업구조를 바꿔야 할 유인이 크지 않고, 중소기업은 바꾸고 싶어도 마땅한 해법을 못 찾고 있다.”
아베 정부 수출 규제는 분업구조 깨는 우둔한 짓
―한국과 일본은 오랜 기간 동북아 분업구조 속에서 서로 윈윈을 해왔다. 일본의 경제 보복을 계기로 분업구조의 틀이 깨지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우리가 일본에서 수입하는 제품 가운데는 일본만 생산을 해서 할 수 없이 의존하는 것도 있지만, 우리도 생산할 수 있으나 시장 규모가 작아 수입하는 것도 많다. 경제원론 책에도 나오지만 자유무역은 각국이 분업을 통해 비교우위가 있는 부문을 특화하고 서로 교환해서 모두 잘되는 것이다. 수출 규제는 자국에서 모든 것을 생산하자는 것으로 폐쇄무역으로 가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일방이 신뢰를 깨면 공급 사슬 전반이 붕괴될 수밖에 없다. 일본도 자국에서 생산하지 않는 상품은 외국에서 사와야 하는데 어떻게 하려고 그러지는 모르겠다. 아베 정부가 우둔한 짓을 하고 있다.”
―이번에 일본처럼 불분명한 ‘안보 문제’ 등을 내걸고 무역을 무기화하는 나라가 늘어나면 국제 무역질서가 붕괴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보호무역주의 영향으로 세계 교역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 2000∼2005년 세계 수출이 연평균 10.2% 증가했는데 2015~2018년엔 5.9% 증가로 뚝 떨어졌다. 주로 산업정책이나 수입 규제를 통해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의 수출 규제는 다른 보호무역주의와 달리 공급을 규제해 상대 국가에 타격을 주려 한다. 글로벌 공급 사슬의 단절을 가져오는 짓이다.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조치와 비슷하지만, 특정 기업이 아니라 산업 전반에 대한 규제라는 점에서 보다 포괄적이다. 정치·외교·군사 등에서 발생한 문제를 무역과 연계시키면 세계 무역질서의 불안정성이 높아지게 된다.”
주력 제조업, 중국과 선진국 사이의 샌드위치 신세
―일본의 경제 보복과 별개로 자동차·조선·철강 등 우리 주력 산업의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중국의 추격 때문이다. 중국 제품이 우리 제품보다 품질은 떨어지지만 값이 싸서 가성비가 높다. 현대자동차가 사드 때문에 힘들었다고 하는데, 그 요인도 있지만 중국 기업들의 추격을 따돌리지 못한 측면이 크다. 삼성 갤럭시도 마찬가지다. 절대적인 기준에서 보면 현대자동차나 갤럭시의 품질이 우수하지만, 중국 제품이 값이 싸니까 중국인들이 그 정도면 사겠다고 해서 우리 제품이 밀리는 것이다. 중국에 추격당하고 브랜드에선 미국, 독일, 일본을 못 따라가는 ‘샌드위치 신세’가 우리 주력 산업의 현주소다.”
연구·개발 집중 통한 ‘고급화 전략’으로 승부 걸어야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가전이나 철강처럼 중국이 기술적으로 거의 다 따라온 분야는 고급화를 하는 차별화 전략으로 가야 한다. 반도체, 차세대 디스플레이, 2차 전지 등 아직까지 우리가 기술 우위에 있는 분야는 격차를 더 벌리는 ‘초격차 전략’이 필요하다. 신산업은 국내에 부가가치를 많이 남기는 소재·부품·장비 분야로 가야 한다. 생산성은 투입 대비 산출이다. 비싸게 만들어도 값을 더 비싸게 받으면 생산성이 높은 거다. 원가를 절감하고 표준적인 제품을 만들어서는 이제 안 된다. 다른 나라 기업들이 만들지 못하는 제품을 생산해 비싸게 팔아야 한다. 핵심은 연구·개발이다. 신기술을 개발하고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연구·개발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안재승 논설위원
js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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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상 산업연구원장이 23일 서울 중구 언론회관에서 안재승 <한겨레> 논설위원과 인터뷰하고 있다.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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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상 원장 “내가 학현학파?…한국엔 학파 없어요”
장지상 원장은 누구
산업연구원은 국내외 산업과 무역통상 분야를 연계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국내 유일의 국책연구기관이다.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인 장지상 원장은 지난해 4월 임기 3년의 원장에 취임했다.
장 원장은 경제학자로서 초창기 시절에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기업 지배구조 문제 연구에 천착했다고 한다. 장 원장이 1991년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최정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과 함께 펴낸 <재벌>은 한국 재벌의 실상과 폐해를 본격적으로 다룬 첫번째 책이다. 장 원장의 요즘 학문적 관심은 한국의 산업 생태계와 지역 혁신 문제로 옮겨 갔다고 한다.
장 원장은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의 제자로 언론 등에서 ‘학현학파’로 분류한다. 학현은 변 교수의 아호다. 하지만 장 원장은 “학현학파라는 것은 없다”며 손을 내저었다. 학파라면 공유하는 이론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에는 학현학파뿐 아니라 그런 학파가 없다는 얘기다. 장 원장은 “변형윤 선생님 제자들이 연구실에 모여 같이 공부도 하고 논문도 썼는데 나중에 연구소가 만들어지고 세미나도 하니까 언론에서 흥미 삼아 붙인 이름 같다”고 말했다.
장 원장은 다만 변형윤 교수 제자들이 공통점은 있다고 했다. 단순히 양적 성장 못지않게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 해결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중에는 복지 문제에 관심 있는 학자도 있고, 분배 문제에 관심 있는 학자도 있고, 노동 문제에 관심 있는 학자도 있고 다양하다고 한다. 장 원장은 “우리가 구조적 문제를 좀더 집중적으로 보니까 성장보다는 분배를 중시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학파로까지 부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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