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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등에 불’ 삼성·SK 물량 쓸어담아도 ‘대안’ 한계 |
일본 수출규제가 보름째 접어든 가운데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가 ‘컨틴전시(비상시국) 플랜’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삼성그룹 계열사 전체의 소재 수급 현황을 점검하겠다고 밝혔고 에스케이하이닉스는 실무진 전원을 투입해 반도체 소재를 수소문하고 있다.
15일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삼성전자는 기존 중국 공장을 통해 받던 일본 기업 납품 물량을 최대한 늘리고 국내 기업들의 샘플도 테스트용으로 받아보기로 했다. 이번 수출규제에서 벗어나 있는, 일본 업체의 한국 공장으로부터 물량을 받는 방안도 강구하고 있다. 에스케이하이닉스도 러시아산 소재 샘플을 보내주면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일본이 까다롭게 적용하기 시작한 심사 기간 동안만이라도 재고 소진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이삭 줍기’ 수준이어서 지속 가능하지 않은데다 아직까지 심사를 통과한 대체 물량도 없는 상황이다.
반도체 소재 공급처의 다변화·국산화 필요성이 10년 전부터 제기돼왔음에도 두 기업은 위기에 몰려서야 뒤늦게 대안 찾기에 나섰다. 업계는 메모리 반도체의 오랜 영광으로 관성이 생겨 공급처 다변화가 기업 우선순위에서 계속 밀렸다고 본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궤도에 오른 2005년부터 소재 공급 다변화·국산화 논의는 수면 위로 올랐지만 장기 과제로만 여겨져왔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기업도 위기가 있어야 체질을 바꾸는데 메모리 반도체가 워낙 잘나가다 보니 외부 충격이 거의 없었다”며 “호황과 불황이 예측 가능한데다 사실상 세계 시장을 독점하고 있어서 위기에 미리 대비한다는 의식이 없었다”고 했다.
반도체 업계는 공급처 다변화가 애초에 불가능한 측면이 많았다고 항변한다. 일본 업체 제품이 독보적으로 품질이 좋아 다른 업체를 찾을 이유가 없었다는 주장이다. 국내 업체들도 3대 품목을 다루고는 있지만 순도가 ‘파이브나인’(99.999%) 수준이 안 돼 일본 스텔라와 모리타 제품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업계에선 설명했다. 반도체 소재 특성상 보관 기간이 짧은 것도 한계다. 고순도 불화수소 등 3대 품목 모두 저온 보관 기준으로 명목상 유통기한은 12개월이지만 실질 유통기한은 6개월 이내다. 미세공정에 사용할 땐 2개월 이내 새 제품만 쓰는 곳들도 많다.
반도체 학계는 이제라도 국산화에 나서야 한다고 보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글로벌 공급 체인을 유지하되 꼭 필요한 소재에 한해서는 국내 기업을 포함한 공급처 다변화를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이제까지는 다변화를 한다 해도 업체별로 나눴지 국가별로 나누지는 않았다”며 “이제라도 정부와 업계가 손잡고 국내 강소 기업들을 협력기업 수준으로 키워내야 할 때”라고 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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