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10일 우리 곁을 떠났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이자 여성 운동가, 민주화 운동가, 평화의 전도사로서 보낸 97년의 고단했지만 빛나는 삶을 마감한 것이다. 10년 전 먼저 곁을 떠난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부디 영면하시길 마음속 깊이 기원한다.
이희호 이사장은 김 전 대통령의 부인이기에 앞서 스스로 빛을 발한 한국 현대사의 ‘큰 별’이었다. ‘대한민국 1세대 여성 운동가’로서 대한여자청년단, 여성문제연구원 등을 창설했고, 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YWCA)연합회 총무로서 여성운동의 선봉에 섰다. 평생 여성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가족법 개정, 여성부 창설, 가정폭력방지법 제정 등에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동교동 자택 문패에 부부 이름을 같이 쓸 정도로 생활 속에서 남녀평등을 실천했다.
이 이사장은 김 전 대통령과 손잡고 민주주의의 새벽을 열기 위해 온몸으로 싸운 민주화 투사였다. 1971년 김 전 대통령의 첫 대선 도전 때 찬조 연사로 나서 “남편이 대통령이 돼 독재하면 내가 앞장서서 타도하겠다”고 말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 이사장은 김 전 대통령이 군부독재의 탄압으로 인고의 세월을 보낼 때 함께 아파하고 때론 독려하며 ‘행동하는 양심’의 길을 함께 걸었다. 김 전 대통령이 말년에 일기에서 “아내가 없었으면 지금의 내가 있기 어려웠다”고 썼듯, 고인은 김 전 대통령과 혼연일체의 삶을 산 민주화의 동지이자 버팀목이었다.
이 이사장은 세계 평화와 남북의 화해·협력을 위해 헌신한 평화의 전도사였다. 2002년 유엔아동특별총회에 여성으로선 처음으로 임시 의장을 맡아 기조연설을 했다. 2009년 8월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을 맡아 노구를 이끌고 북녘을 오가며 남북 화해의 길을 닦았다. 2011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때 방북해 조문했고, 2015년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초청으로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생전의 따뜻하고 올곧은 고인의 자태는 민주 진영엔 ‘큰 기둥’과도 같았다. 모든 이들을 품어안고 스스로 모범을 보여 귀감이 되는, 우리 시대의 몇 안 되는 큰 어른이었다. 고인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유지’를 통해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고 사랑과 화합을 당부했다. 갈수록 혼탁하고 어지러워지는 세상에서 그의 빈자리가 더욱 커 보인다. 이희호 여사의 서거를 다시 한번 애도하며 고인의 명복을 두 손 모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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