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5월23일 열린 첫 재판에 출석했다. 사진공동취재단.
|
[16가지 혐의 MB 5일 1심 선고]
김백준·이병모 등 등 돌린 최측근의 진술
“다스 소유자처럼 행동, 다들 그렇게 이해”
압수수색 과정에서 발견된 각종 문건들도
‘이학수 자수서’ 삼성 뇌물 혐의 뒷받침
‘이팔성 비망록’ 공직 대가 뇌물 혐의
|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5월23일 열린 첫 재판에 출석했다. 사진공동취재단.
|
‘이명박 피고인.’
5월3일부터 9월6일, 재판이 열리는 150여일 동안 이명박 전 대통령은 ‘피고인’으로 불렸다. 4개월 동안 이명박 피고인의 재판은 일주일에 1~3차례 숨 가쁘게 진행됐다. 공판준비기일을 포함해 모두 29차례 재판이 열렸다. 적용된 혐의만 16가지. 검찰과 변호인은 방대하고 복잡한 혐의를 차례로 짚으며 치열한 법정공방을 펼쳤다. ‘다스는 누구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재판은 삼성 재벌가와의 이건희 사면 거래, 공직 임명을 대가로 한 금품 수수, 국정원 특활비 등 뇌물 혐의를 거쳐 대통령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까지 뻗어나갔다. 검찰은 징역 20년과 벌금 150억원, 추징금 111억여원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5일 1심 선고를 앞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리 의혹을 증명하기 위해 제시된 주요 증거와 쟁점을 4가지 키워드로 톺아봤다.
■ 등돌린 최측근 이 전 대통령을 둘러싼 혐의 16가지 중 7가지는 자동차 부품 업체 다스(DAS)와 연관돼 있다. 비자금 339억원을 빼돌리는 등 다스에서 총 349억원을 횡령했다는 혐의는 다스의 실제 주인이 이 전 대통령이어야 성립이 가능하다. 총 111억원의 뇌물 가운데 절반 이상(67억여원)을 차지하는 삼성의 다스 소송비용 대납도 마찬가지다. 31억원의 다스 법인세 포탈 혐의도 있다.
“다스의 주요 간부가 임명될 때 대통령의 의사가 반영됐다. 대통령은 단 한 번도 다스가 자기 소유가 아니라고 말한 적 없다. 소유자처럼 행동했고 다른 사람도 그렇게 이해했다. 나도 그랬다.” (이병모 청계재단 사무국장·6월20일 7회공판)
“2011년 2월 김경준씨로부터 다스 계좌에 140억원이 입금돼 보고했다. 그러자 이 전 대통령이 매우 기분 좋아하면서 ‘잘 되었네, 수고 많았다’고 답했다.”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7월5일 10회공판)
‘다스는 누구 것인가.’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던 이들은 모두 이명박 전 대통령이라고 입을 모았다. ‘MB 집사’·‘MB 금고지기’라고 불리던 이들이다. 이 전 대통령이 검찰이 제시한 증거에 동의하면서 검찰 조사에 기록된 이들의 진술은 검찰 입을 통해 법정에서 낭독됐다. 김성우 전 다스 사장, 권승호 전 전무 등 다스 직원은 물론, 친인척인 이동형 다스 부사장(이 전 대통령의 형 이상은씨 아들) 또한 다스 실소유주로 이 전 대통령을 지목했다. 가장 가까이에서 이 전 대통령을 수행하던 이들이 등을 돌렸고 그 진술은 이 전 대통령이 다스 실소유주 의혹을 뒷받침하는 주요 증거가 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다스가 자신의 것이 아니고선 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제승완 전 청와대 민정1비서관실 선임행정관·6월20일 7회공판).” 측근들이 진술한 ‘실소유주가 아니고선 할 수 없는 행적’은 열거하기에 벅찰 정도로 많다. 다스 설립 자금을 대고, 직원 인사에 영향을 미쳤으며 주기적으로 경영 상황을 보고받았다. 다스 직원은 과거 서울시장 선거캠프 등에 파견됐으며 청와대 직원들은 다스 소송에 관여하게 했다. 김윤옥 여사는 10여년 간 회사 법인카드를 사용했다. 측근들의 진술은 재판 과정 내내 이 전 대통령을 겨눈 가장 날카로운 칼이었다.
|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이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으로부터 불법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지난 1월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
■ PPP·포스트 프레지던트 플랜 ‘PPP(Post President Plan·포스트 프레지던트 플랜)’은 이 전 대통령의 퇴임 뒤 활동 계획과 그에 따른 재원 마련을 담은 일종의 계획서다. 제승완 당시 선임행정관은 ‘퇴임 후 사회 활동을 체계적으로 준비하지 않으면 집권 3~4년차 때 힘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해 작성해 이 전 대통령에 문건을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그 명칭도 본인이 직접 지었다고 한다. 검찰은 지난 1월 서울 영포빌딩을 압수수색하면서 ‘PPP 기획안’ 문건 등을 확보했고 이를 재판에 증거로 제시했다.
PPP 기획안 문건은 이 전 대통령이 다스의 실소유주임을 전제로 작성됐다는 게 검찰 설명이다. 문건에는 ‘이상은 회장이 보유한 다스의 지분 중 5%를 이시형(이명박 전 대통령 아들)에게 상속 또는 증여함으로써 이시형의 독립생계가 가능하도록 유도한다’, ‘이상은 회장의 지분 5%를 이명박 전 대통령 재단에 출연한다’는 등의 방안이 담겼다.
이 전 대통령이 다스의 실소유주라는 정황은 각종 문건으로도 뒷받침됐다. 검찰이 영포빌딩, 권영미(고 김재정 다스 사장의 부인)씨 자택 등에서 찾아낸 문건들로, ‘고 김재정 회장 상속세 관련’, ‘물납+다스 주식 소각’, ‘상속 재산 List 요약’, ‘상속세 추정액 비교’ 등이다. 문건을 살펴보면 김재정 다스 회장 명의의 차명 재산을 소유한 이 전 대통령이 상속세를 납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자금 유출을 최소화하고 김재정 명의의 다스 지분을 이시형쪽으로 회수해오기 위해 연구한 흔적이 드러난다고 검찰은 주장했다. 상속세 대부분을 다스 주식으로 물납하는 방안을 검토했는데 이는 이 전 대통령에 유리한 방법이지, 법정상속인인 권영미씨에게는 불리하다는 게 검찰 설명이다. 김재정 다스 회장의 법정상속인 권영미씨는 상속재산의 규모조차 알지 못했지만 이병모 청계재단 사무국장이 상속재산을 파악하는 등 실무를 전담했다고도 검찰은 주장했다.
|
이학수 전 삼성그룹 전략기획실장(부회장). 한겨레 자료사진
|
■ 이학수 자수서 7월10일 11회 공판에서 공개된 이학수 전 삼성전자 부회장의 ‘자수서’가 공개됐다. 다스의 미국 소송을 대리하던 아킨 검프 소속 김석한 변호사의 제안으로 다스 관련 법률 비용 67억여원을 대신 납부했다는 내용이다.
“이건희 회장에 보고했다. ‘소송 비용을 삼성이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이 회장은 ‘청와대가 하라면 해야지 않나, 지원하라’고 했다. 당시 대통령을 지원하는 게 회사에 여러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 회장이 사면받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당시에는 회사와 회장님을 위해 하는 거라 믿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잘못이라 판단해 후회 막급하다.”
자수서에 따르면, 2008년 김석한 변호사가 당시 삼성전자 고문으로 일하고 있던 이학수 전 부회장을 찾아와 이렇게 제안했다. ‘대통령 관련 미국 소송 등 법률 조력업무를 아킨 검프에서 대리하게됐다.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이 돈을 청와대에서 마련할 수 없고 정부가 지급하면 미국에서 불법으로 비춰질 수 있다. 삼성이 도와주면 국가에도 도움이 되고 청와대도 고마워 할 것이다.’ 이 전 부회장은 이 회장의 재가를 받아 소송 비용을 대납했다.
‘이학수 자수서’는 삼성으로부터의 뇌물 수수 혐의를 뒷받침하는 핵심 증거다. 검찰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사면하는 대가로 삼성이 이 전 대통령의 다스 관련 소송비를 대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2008년 ‘삼성 비자금 특검’으로 기소돼 2009년 8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징역 3년·집행유예 5년, 벌급 1100억원을 선고받았지만 불과 4개월 뒤 단독으로 특별 사면됐다. 이 전 대통령은 5월23일 첫 번째 재판에서 “사면을 대가로 삼성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공소사실은 충격이고 모욕”이라며 강하게 반박했다.
|
이명박 전 대통령. 한겨레 자료사진
|
■ 이팔성 비망록 “MB와 인연을 끊고 다시 세상살이를 시작해야 되는지 여러가지로 괴롭다. 나는 그에게 약 30억원을 지원했다. 옷값만 얼마냐. 고맙다는 인사라도 해야되는 것 아니냐. (3월28일)”
8월7일 17회 공판에서는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비망록이 공개됐다. 이 전 대통령 취임 즈음, 이 전 회장이 2008년 1월부터 5월까지 적어둔 41장의 메모다. 비망록에는 이 전 회장이 5월29일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선임될 때까지 이 전 대통령에 로비를 지속하면서도 원하던 자리를 얻지 못하고 거듭 좌절하던 기록이 적나라하게 담겼다.
“왜 이렇게 배신감을 느낄까. 이상주(이 전 대통령 사위) 정말 어처구니 없는 친구다. 나중에 한 번 따져봐야겠다. 소송을 해서라도. 내가 준 8억원 청구 소송할 것임. (3월3일)”
“KRX는 탈락했다. 엠비가 원망스럽다. 사람을 어떻게 이렇게 취급하는지. 이상주 변호사 젊은 친구라 그렇게 처신하는지. (3월15일)”
“다시 MB에 대한 증오감이 솟아나는 것은 왜일까. (3월23일)”
‘이팔성 비망록’은 이 전 대통령의 또 다른 혐의를 뒷받침하는 주요 증거로 제시됐다.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이사 이팔성을 우리금융지주 회장 자리에 앉히고 22억6230만원의 현금과 금품을 건네받은 혐의다. 이 전 회장은 현금은 물론 옷까지 이 전 대통령에 건넸는데 사위인 이상주 변호사, ‘SD’(이 전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등이 매개 역할을 했다는 게 검찰 설명이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이 이팔성 전 회장, 김소남 전 의원 등 모두 5명에게 공직임명을 대가로 37억원에 가까운 돈을 받았다고 본다.
이 전 대통령쪽은 비망록의 조작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 전 대통령쪽의 의혹 제기에 검찰은 8월14일 19회 공판에 이팔성 비망록 원본을 직접 들고왔고 이 전 대통령쪽 변호인 두 명과 검사 두 명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비망록을 살펴보는 풍경이 연출됐다. 변호인은 ‘같은 필기구로, 같은색 잉크로 연속해서 쓰인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고 검찰은 ‘눈으로 봐도 날짜별로 글씨 굵기나 필압이 다르다는 게 확인된다’며 반박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