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이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으로부터 불법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지난 1월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저서 ‘대통령의 시간’
책 제목처럼 대통령과 함께 해왔던 ‘김백준의 42년’
BBK·내곡동 사저·해외자원개발·국정원 특활비까지…
김백준이 관여하지 않은 ‘시간’은 없었다
|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이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으로부터 불법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지난 1월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
“나 김백준이라고 합니다. 대단하신 분이 한 번 만나자고 하시는데 어떻습니까?”
비비케이(BBK) 주가 조작으로 징역 8년을 살았던 김경준은 지난해 엘에이(LA)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1999년 초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과의 인연을 이렇게 기억했다. 한창 투자의 귀재로 유명세를 타던 그에게 김 전 기획관이 먼저 연락을 해와 서초동 영포빌딩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만나게 해줬다는 말이었다. 이 전 대통령을 김경준에게 소개했다는 김백준은 이후 김경준과 이 전 대통령 사이가 벌어진 뒤에는 소송의 전면에 나서 김경준을 방어하는 한편, 이 전 대통령을 수호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 전 대통령이 정치적 위기에 빠질 때마다 마지막 보루로 나섰던 ‘영원한 집사’ 김백준. 그러나 그는 현재 ‘수인번호 716번’ 이명박 전 대통령의 16가지 혐의를 입증하는 핵심 진술을 쏟아내는 저격수가 되어 있다. 16가지 혐의는 다스 비자금 조성, 삼성 뇌물 수수, 국정원 자금 상납 등이다.
김백준의 삶은 이명박의 정치 여정을 그대로 따라간다. 고려대 선배인 그는 외환은행 근무 시절이던 1976년 현대종합금융으로 스카우트되면서 당시 현대건설 사장인 이명박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1992년 이명박이 국회의원이 될 때부터 그를 도운 김백준은, 이명박이 설립한 동아시아연구재단의 원장을 맡기도 했다. 이명박이 서울시장이던 시절에는 서울메트로 감사를 지냈고, 청와대에 입성하기 전에는 비비케이 사건 등을 온 몸으로 막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청와대 입성 후에는 총무기획관을 지냈다.
검찰이 2월5일 구속 기소한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의 공소장은 이 전 대통령의 공소장으로 봐도 무방할 수준이었다. 에이포(A4) 다섯 장 분량의 김 전 기획관 공소장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 이름이 13번 등장한다. 이 전 대통령이 최고 통치권자 지위를 이용해 사용처를 증빙하지 않아도 되는 국가정보원의 특수활동비를 제 돈처럼 요구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영원한 집사에서 이명박의 저격수가 된 그는 한 나라의 대통령과 함께 어떤 시간을 겪은 것일까.
|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과 이명박 전 대통령
|
■ 비비케이 김경준의 송환을 연기한 김백준
대선 전부터 이 전 대통령의 발목을 붙잡았던 비비케이 사건을 누구나 알지만, 김백준의 이름이 그때부터 등장했음을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다. 이 전 대통령의 미국 소송 대리인이 김백준이었던 것. 비비케이 주가 조작 핵심 인물 김경준의 한국 송환을 최대한 막아낸 인물도 김백준이었다. 한국 정부의 범죄인 인도 요청에 따라 김경준은 미국에서 체포됐으나 인신보호 청원을 제출하고 송환을 거부해왔다. 그러나 대선을 앞둔 2007년 10월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해 정국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점쳐졌다. 김백준은 미국 법원에 ‘항소 각하신청서’에 대한 판결을 유예해 달라는 요청서를 접수시키며 김경준의 귀국을 늦추기 위해 나섰다. 그리고 검찰은 17대 대선을 2주일 앞둔 2007년 12월5일, 이 후보의 비비케이 주가조작 연루 의혹과 다스 차명소유 의혹 등을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이제껏 비비케이 사건에 대해 입을 굳게 다물었던 김백준의 자필 진술서는 지난달 5일 이 전 대통령 재판에서 공개됐다.
“2011년 김경준씨가 다스 계좌에 140억원을 입금했다는 보고를 듣고 이 전 대통령이 잘 됐다고 좋아했다 .”
그의 진술은 다스의 실소유주가 이명박 대통령이라는 취지였다. 이 전 대통령이 실소유주로 의심되는 다스는, 실제 이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09년 비비케이에 투자했던 140억원을 돌려받기 위해 김경준 전 비비케이 대표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해 승소한 바 있다.
김백준은 이명박 대선 후보의 네거티브 대응팀에서도 일하며 각종 의혹을 막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3일 이 전 대통령의 9차 공판에서 김백준과 함께 일했던 청와대 총무비서관실 행정관 박 아무개씨의 진술은 다음과 같다.
“(청와대 총무비서관실 행정관) 박아무개는 이명박 대선 캠프의 네커티브 대응팀에서 일했다. 비비케이, 다스, 병역 문제 등 후보자 의혹에 대응 논리 개발을 맡았다. 김백준은 캠프에서 공식 직책은 회계 책임이지만 비비케이와 다스의 미국 소송을 제일 많이 아는 사람이라 네거티브 대응팀에서 함께 일했다고 진술했다. 다스 관계자나 변호사 등과 연락을 취하면서 비비케이 소송 관련 자료를 전달하고 김백준에게 보고하는 역할을 했다. 박 아무개는 사실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당황스러웠고 고심했다. 대선 때 네거티브 대응팀에 있으면서 다스는 이명박 것이라는 의혹에 대응 논리를 개발했는데…”
|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은 2012년 11월3일 내곡동 특검에 소환되면서도 한껏 여유있는 모습을 보여 이목을 끌었다. 한국방송 화면 갈무리.
|
■ 내곡동 사저 의혹…불기소로 끝나다
한동안 드러나지 않던 그의 이름이 다시 언론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시점은 2012년 내곡동 사저 의혹 때였다.
그는 내곡동 사저 및 경호동 부지 매입 과정에서 이 대통령의 아들 시형씨의 매입금 부담을 줄여주고 청와대 경호처의 땅값을 높게 책정해 국가에 6억~8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그는 시형씨의 부동산 중개수수료를 대신 치를 것을 경호처에 지시했는지 등을 놓고 수사를 받았다.
당시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갈 때도 수십여명의 취재진들을 향해 “뭘 이렇게 수고들 해. 허허”라고 말을 건넸고, 질문이 끝난 뒤에는 한 기자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 취재진을 당혹케 했다. 내곡동 사저 의혹은 결국 유야무야로 끝이 났다.
2012년 11월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 사건은 특검팀이 대통령의 아들 시형씨에 대한 부동산실명제법 위반 부분을 무혐의 불기소 처분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이에 앞서 김백준을 비롯, 관련자 7명을 전원 불기소 처분했다.
■ 김백준 아들이 속한 메릴린치, 국외 자원개발 사업 자문
이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 벌인 사업 가운데 가장 논란이 많았던 사업, 즉 국외 자원개발 사업에도 김백준의 이름, 더 정확하게는 그의 아들 이름이 다시 한 번 오른다. 2008년 3월 지식경제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안에 석유 공사를 다섯 배로 키우라고 지시한다. 무모한 국외 자원개발 사업의 시작었다.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은 2009년 캐나다 석유개발 회사인 ‘하베스트’를 인수하면서 하베스트의 자회사인 정유회사 ‘날’을 시세보다 높은 가격으로 사들여 석유공사에 손실을 보게 한 혐의(배임)로 2015년 7월 구속 기소됐다. 석유공사는 당시 주식 거래 계약을 통해 하베스트 지분을 시장 가격보다 47% 많이 쳐주고 매입했다. 캐나다 유전개발업체 하베스트의 자회사 ‘날’을 한국석유공사가 투자금액 2조원의 1%인 200억원에 매각했다고 2014년 11월 새정치민주연합이 밝히기도 했다.
이때 김백준의 아들 형찬씨도 참여연대 등으로부터 고발됐으나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형찬씨가 일하는 메릴린치는 이 말도 안 되는 인수 합병에 대해 자문해 준 성공 대가로, 석유공사로부터 768만 달러(약 84억원)를 받았다. 국외 자원개발 사업으로 투자자문사에 큰 시장이 열린 것이다. 에너지 공기업은 투자 결정 전 투자자문사의 자문을 받는데, 조 단위 사업이다 보니 석유공사는 2008~2010년 신규 투자한 18조원의 자원개발 사업 가운데 4조원에 이르는 4건에 대한 자문을 메릴린치에 의뢰했다. 총 자문료는 248억원이었다.
검찰은 피고인 주장을 주로 받아들이면서 부실수사 의혹을 받았다. 당시 김백준 아들이 하베스트 인수 팀원으로 이름을 올린 것은 인정되지만 후보 인력에 불과하고, 하베스트 인수 건은 메릴린치 서울지점이 아닌 휴스턴팀(본사)에서 전담했다는 게 피고인들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에 앞서 국회 해외자원개발 국정조사특별위원회(국조특위) 소속 야당 위원들이 2015년 3월 공개한 메릴린치의 한국석유공사 자문제안서(2009년 2월27일)를 보면, 김 전 비서관의 아들인 메릴린치 서울지점 상무 형찬씨가 기업인수합병 전문가로 소개돼 있다. 또 메릴린치가 하베스트 인수 뒤 석유공사에 보낸 성공보수 청구서를 보면, 미국 메릴린치 본사가 아닌 서울 지점에서 성공보수를 청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형찬씨는 이후 메릴린치 서울지점장을 지냈다.
국외 자원외교는 수사 7개월 만에 초라하게 끝이 났다. 당시 검찰은 김신종 전 한국광물자원공사 사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기소하는 걸로 사건을 매듭지었다. 김 사장은 지난해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 받았다. 그러나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5월 이명박 정권 당시 벌인 자원개발 사업 중 하베스트 유전 등 3건에 대해 추가 의혹을 발견했다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 심복에서 저격수로 김백준이 돌아선 이유
대통령의 시간을 관통하는 김백준의 구속 여부는 이 전 대통령에게 위기 그 자체였다.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등에 대해 검찰 압수수색이 이뤄지자 삼성동 사무실에서 이 전 대통령은 측근들과 회의를 연다. 김백준 구속 직후인 지난 1월17일 이 전 대통령은 경직된 얼굴로 자신에 대한 수사가 정치 공작이라는 취지의 성명을 발표했다. 김백준 구속을 기점으로 이명박에 대한 수사는 급진전했고, 그 직후 10일 만에 이명박은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되었다.
구속된 김백준은 지난 2월3일 조사에서 브이아이피 보고사항이라는 문서에 대해 “모른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안다”고 말을 바꾸었다. 침묵을 지켜온 이명박의 집사, 김백준이 입을 열기 시작한 시점은 이병모 청계재단 국장의 진술이었다. 검찰이 “이병모가 이명박 심복 중에 본인을 아는 사람은 김백준밖에 없다고 하던데”라고 이야기를 꺼내자 “그 말이 사실인가요?”라고 되물었던 것. 김백준은 변호사와 따로 20분 정도 상의를 하더니 진술을 시작한다. 이병모만 자백을 하고 자신은 자백을 하지 않을 경우, 본인의 형이 커질 것을 우려한 것이다.
김백준은 자신의 재판이 처음 열린 3월14일, 이렇게 밝히며 고개를 숙인다. 이 전 대통령이 오전 9시가 넘어 집에서 나와 검찰청에 출두한 날이기도 했다.
“제 잘못으로 물의를 빚고 이렇게 구속돼 법정에 서게 돼 참으로 송구스럽다 . 저는 제 죄에 대해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을 것이고 여생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반성하며 살겠다 . 평생을 바르게 사려고 최선을 다해 왔는데 전후 사정이 어찌 됐든 우를 범해 국민 여러분께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 . 지금 이 시간에 전직 대통령이 소환돼 조사를 받고 있다. 철저한 수사를 통해 모든 진실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이명박 전 대통령의 범죄를 온 몸으로 막아내면서 각종 혜택을 받으며 살아온 김백준은 조사 과정에서 핵심 진술을 쏟아내며 무죄로 풀려난다. 지난달 26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그가 쏟아낸 진술이 자신에 대한 감형 요소가 되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의 범죄 입증에는 상당한 역할을 했다. 이명박은 그의 보좌를 받으며 살았고, 그의 끝 또한 김백준의 진술로 저물어 가고 있다.
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