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2.24 10:00
수정 : 2017.02.25 10:37
김정남 얼굴·눈 시료 분석보고서 공개
VX, 국제사회 금지한 대량살상용 물질
눈·피부 등에 극소량으로도 생명 위협
일본 옴진리교 신자들이 살인할 때 사용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46) 피살 사건을 수사중인 말레이시아 경찰은 24일 김정남의 시신에서 신경계 작용 독성 물질인 VX(브이엑스)가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독성 물질이 발견됨에 따라 김정남이 독살됐을 가능성은 더 커졌고, ‘심장쇼크에 의해 숨졌다’는 북한 주장은 설득력이 낮아지게 됐다.
|
* 표를 누르면 확대됩니다.
|
할릿 아부 바카르 말레이시아 경찰청장은 이날 성명을 내, 과학기술혁신부 화학국 화학무기센터로부터 김정남의 얼굴과 눈 점막에서 채취한 시료를 분석한 결과, VX 신경물질로 불리는 ‘에틸 S-2-디이소프로필라미노에틸 메틸포스포노티올레이트’를 검출했다는 잠정 분석보고서를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바카르 청장은 VX가 화학무기금지협약(CWC)에 따라 화학무기로 분류된 물질이라고 설명했다.
VX는 ‘독성물질 엑스’(Venomous agent X)의 줄임말로, 대량살상용 화학무기에 사용된다. VX는 액체와 기체 상태로 존재하며 주로 중추신경계에 손상을 입힌다. 호박 색깔로 점성이 강하고 기화성이 작으며 액체 상태로 뿌려질 수 있으며, 눈과 호흡기, 피부 등을 통해 인체에 흡수된다. 일정시간 안에 실험대상 절반이 사망하는 ‘반수 치사량’이 피부흡수시 10㎎, 흡입시 30~50㎎(min/㎥)이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김정남에게 VX를 사용했다면 눈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후지 티브이> 등이 공개한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제2청사 폐회로텔레비전(CCTV)에는 공격을 받은 김정남이 공항 안내데스크에서 눈을 비비는 듯한 시늉을 하며 무언가를 설명하는 장면이 담겨있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출신 여성 용의자 2명이 지난 13일 공항에서 맨손에 독성물질을 묻히고 김정남한테 다가가 그의 얼굴을 손으로 문지른 뒤 재빨리 화장실로 가서 손을 씻었다고 밝힌 바 있다.
경찰은 두 여성 용의자 가운데 한명이 VX 사용에 따른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지 매체인 <더 스타>는 바카르 경찰청장이 “한 여성이 몇차례 구토를 했었다”고 말했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VX가 특정인을 살해하는 데 쓰인 것은 1994년 12월 일본 옴진리교 신자들이 오사카 거리에서 자신들의 조직에 침투한 것으로 의심한 28살 청년의 목에 VX를 뿌린 사건이 처음이자,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청년은 범인들을 90m쯤 쫓아가다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10일 뒤 숨졌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원자력허가위원회에 쿠알라룸푸르 공항에 VX의 흔적이 남아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수색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현지매체들은 전했다. 경찰은 VX가 어떻게 말레이시아로 들어왔는지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경찰은 22일 밤 쿠알라룸푸르의 한 아파트에서 30대 말레이시아인 남성을 체포하고, 부근의 다른 아파트에서 화학물질과 다수의 장갑, 신발 등을 압수했다. 경찰은 이미 체포된 용의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남성의 신원을 파악했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