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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2.23 21:34 수정 : 2017.02.23 22:19

북, 김정남 피살 열흘만에 첫 공식 반응
조선법률가위원회 담화 보도
김정남 이름 대신 “공호하국 공민 쇼크사”
말레이 부검엔 “자주권 침해” 비난
수사 공정성, 객관성에 흠집 내기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피살 사건에 침묵을 지켜온 평양의 북한 당국이 23일 첫 공식 반응을 내놨다. 사건 발생 열흘 만이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 규명 과정에서 ‘진흙탕 싸움’도 불사하는 여론전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신호로 풀이된다.

북쪽은 사건에 짙게 드리워진 혐의엔 모르쇠로 일관하며, ‘남조선(남한)이 짠 음모 책동’에 말레이시아 당국이 동조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아울러 국제법을 내세워 말레이시아 당국의 수사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며, 수사 내용의 신뢰도에 흠집을 내려는 주장으로 일관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오전 ‘조선법률가위원회 대변인 담화’와 이를 해설한 기사를 잇따라 내놨다. 그간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사관 강철 대사의 두차례(17·20일) 기자회견과 보도자료(22일)를 통해 주장한 내용의 총정리판으로 보인다. 전면에 나선 조선법률가위원회는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 딸린 비상설 조직으로 2002년 10월 설립됐으며, 북한 당국 주장의 법적 논리를 뒷받침해 온 단체다.

이 단체 대변인은 담화에서 “2월13일 말레이시아에서 외교여권 소지자인 우리 공화국 공민이 비행기 탑승을 앞두고 갑자기 쇼크 상태에 빠져, 병원으로 이송되던 도중 사망한 것은 뜻밖의 불상사”라고 사건의 성격을 규정했다. 사망자가 ‘김정남’이란 점과 독살 의혹을 외면한 채, 사건을 ‘공화국 공민의 쇼크사’고 규정한 게다. 담화는 이어 “우리 대사관에서는 심장쇼크에 의한 사망으로 결론된 것만큼 부검을 할 필요가 없으며, 사망자가 외교여권 소지자로서 치외법권 대상이므로 절대로 부검할 수 없다는 것을 명백히 밝혔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말레이시아 당국의 부검 실시를 “자주권에 대한 노골적인 침해이고 인권에 대한 난폭한 유린”이라고 맹비난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 당국은 자국 영토 안에서 “외국인이 의문에 휩싸인 채 숨졌으므로 사인을 밝힐 책무가 있다”는 태도를 거듭 강조해왔다. 부검 결과 발표 때도 “심장마비는 없었다”며 자연사가 아님을 강조했다. 북쪽의 주장과 관련해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을 보면, 특권·면제를 받을 권리를 가진 공관원 등에 대해선 주재국의 외교부 등에 통보를 하게 돼 있다.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정부에 등록된 외교관이 아닌 이상 ‘치외법권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북쪽은 말레이시아 당국이 자기네와 협의·입회 없이 부검을 했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관련 업무에 밝은 한국 외교부 관계자는 “부검은 수사의 영역인데, 수사는 주재국 당국의 주권 사항”이라며 “주재국에 수사 참여 등을 요청할 수 있지만 결정권은 주재국 정부에 있다”고 설명했다.

또 북쪽은 “남조선 보수언론이 ‘독살’을 주장하기 바쁘게, 말레이시아 비밀경찰이 개입해 주검 부검 문제를 제기했다”며 “남조선 당국이 이번 사건을 이미 전부터 예견하고 있었으며, 그 대본까지 짜놓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현지 경찰의 수사를 통해 ‘북한 배후설’이 짙어지자, 확실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체 ‘남한 배후설’로 맞불을 놓으려 한 것이다.

법률가위원회 대변인은 이어 △사인을 심장쇼크에서 독살로 바꾼 점 △피해자가 독살됐는데 범인은 멀쩡한 점 △사건 현장에 있다 출국한 북한인을 뚜렷한 증거도 없이 용의자로 지목한 점 등이 “법률적 견지에서 허점과 모순 투성이”라고 주장했다. 앞으로 수사를 통해 밝혀내야 할 사안임에도, 미리 ‘모순점’이라 주장해 현지 수사당국의 ‘객관성’과 ‘공정성’에 흠집을 내려한 것이다.

이는 말레이시아 정부가 이미 거부한 ‘공동 수사’의 필요성을 거듭 제기한 것과 연결된 주장으로 풀이된다. 실제 북쪽은 담화에서 “법률가 대표단을 직접 현지에 보내여 살인 용의자들을 만나 그들의 진술도 들어보고, 그들이 누구의 지시를 받았는지 확인하며, 체포된 우리 공민도 만나보고, 사건 현장과 동영상 자료 등을 구체적으로 조사해 사건 수사를 공정하게 결속하자는 것”이라고 제안했다. 한국 정부 당국자는 “북쪽이 국제적 논란을 키우려고 ‘법률가 대표단’의 말레이시아 입국을 추진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내다봤다.

정인환 김지은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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