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본부 간부 31명, 사내 게시판에 입장 밝혀
“이정현 전화는 의견요청…뉴스 반영 안된 게 본질”
언론노조 활동에 외려 “압력·개입” 주장
정연욱 기자 제주 발령엔 “당당히 뒷감당하라”
‘이정현-김시곤 녹취록’에 대해 <한국방송>(KBS)이 침묵하고 있는 행태를 비판한 정연욱 한국방송 기자에 대해 ‘보복 인사’ 논란이 제기된 가운데, 한국방송 보도본부 간부들이 “한국방송을 팔아 이름값을 올렸으면 당당하게 뒷감당도 하는 게 당연한 자세”라는 입장을 내놨다. 사실상 ‘보복성 인사’라는 것을 시인한 셈이라 논란이 예상된다.
지난 19일 저녁 한국방송의 사내 게시판에는 ‘최근 현안에 대한 보도본부 국부장단의 입장’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정지환 보도국장을 비롯한 보도본부 간부 31명이 연명한 글로, 최근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과 김시곤 전 한국방송 보도국장 사이의 통화 녹취가 공개된 것, <기자협회보>에 자사의 보도 태도를 비판한 정연욱 기자가 제주방송총국으로 갑자기 발령난 것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정현-김시곤 녹취록’에 대해, 이들은 “본질은 한국방송 9시 뉴스가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언론사에는 각종 이해관계자로부터 전화가 오기 마련인데, 이 전 수석의 협조 요청에도 불구하고 해경 관련 뉴스가 그대로 방송됐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그 의견요청에 합리성이 있으면 반영을 하고, 비합리적이고 사리에 맞지 않으면 들어주지 않으면 되는 것”이라며, 이미 2년 전부터 제기되어 온 ‘보도 개입’이라는 안팎의 비판을 부정했다.
‘한국방송이 녹취록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유감스럽게도 이 사건은 한국방송이 관련 소송(김시곤 전 국장의 징계무효소송)의 당사자이기 때문에, 원고측이 녹취를 이용해 일방적인 주장을 펼치는데 대해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하기 어렵고, 뉴스를 제작 보도해 회사의 입장을 밝히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판단이었다”고 밝혔다. 또 “이후 발생 기사에 대해서는 객관적으로 뉴스 처리를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해달라”고 했다.
되레 이들은 “전국언론노조가 리포트 제작에 압력을 행사했다”며 청와대의 ‘보도 개입’과 방송사 내부의 공정보도 관련 행위를 비교하는 논리를 폈다. “지난해 11월 민주노총 산하 언론노조가 사회부장과 취재기자를 상대로 민주노총 시위 관련 리포트를 막기 위해 협박성 전화를 했”는데, 기자들이 그것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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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13일치 <기자협회보>에 실렸던 정연욱 기자의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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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협회보>에 자사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가 지난 15일 제주방송총국으로 발령난 정연욱 기자의 인사 조처에 대해서는 “외부 매체에 황당한 논리로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기고를 하고서 아무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 잘못”, “한국방송인으로서 한국방송을 팔아 이름값을 올렸으면 당당하게 뒷감당을 하는 게 당연한 자세” 등 사실상 ‘보복성 인사’를 시인하는 주장을 내놨다. 이번 인사 조처에 대해 한국방송 회사쪽은 지난 17일 “인사원칙에 따른 인사였음을 분명하게 밝힌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이들은 ‘진보좌파 매체’를 문제삼는 등 안팎의 비판에 대해 이념적 색칠을 덧씌우는 주장도 폈다. “노조나 협회, 게시판의 글들은 진보좌파 매체의 논조가 지선의 가이드라인인 것처럼 한국방송 뉴스를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진보좌파 매체들은 기다렸다는 듯 기수별 성명을 활용해 한국방송 뉴스를 마음껏 조롱하고 있다”, “특정 정당이 한국방송 인사와 관련해 논평까지 발표하는 등 정치권과 보조를 맞추는 조짐마저 나타나 더욱 우려스럽다” 등의 주장도 내놨다.
한편 전국언론노조 한국방송본부(새노조)는 고대영 사장이 사드 관련된 ‘뉴스해설’에 간여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관련 해설위원과 정연욱 기자 등에 대한 ‘보복성 인사’ 등을 비판하며 지난 18일부터 매일 사내에서 손팻말 시위를 벌이고 있다. 21일 점심에는 회사쪽 행태를 규탄하는 임시 조합원 총회를 열 예정이다. 22일 오후에는 한국방송 임시 이사회가 열릴 예정인데, 여기에서 최근 ‘사드 보도지침’ 논란이 안건으로 논의될 전망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한국방송 보도본부 간부 성명 전문
<최근 현안에 대한 보도본부 국부장단의 입장>
2016. 7. 18.
본질은 KBS뉴스는 영향 받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최근 기자협회의 기수별 성명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보도본부 국부장단은 그 동안 이 문제에 일일이 응답할 경우 불필요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회사의 이미지를 실추시킬 것을 우려해 대응을 자제해왔지만 최근 그 도가 지나치고 있어 입장을 밝히고자 합니다.
‘이정현 녹취록 논란’을 두고 말들이 많지만 그 본질은 KBS 9시 뉴스가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당시 이정현 홍보수석의 협조 요청에도 불구하고 해경 관련 뉴스는 9시 뉴스 큐시트에서 빠지지 않았고 그대로 방송됐습니다. 이것이 진실입니다. 뉴스라인 부분은 다른 차원의 얘기입니다. 기자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대로 뉴스라인은 당시 30분 뉴스로 1시간인 9시 뉴스와 다른 편집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문제가 있었다면 당시 보도국장이 답변을 해야 할 문제입니다.
언론사에는 각종 이해 관계자로부터 전화가 오기 마련입니다. 국장, 부장, 팀장, 심지어 담당 기자들에게까지 “기사를 빼달라”, “억울하다”, “이런 부분이 왜곡 전달됐다”하는 등등의 요청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모든 언론사가 공통적으로 겪는 현실입니다. 만약 그 의견요청에 합리성이 있으면 반영을 하고, 비합리적이고 사리에 맞지 않으면 들어주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KBS 뉴스는 이런 원칙을 지켜왔습니다. 이정현 전 수석 관련 경우도 그렇습니다. 그런 KBS 나름의 합리적 판단이 있었기에 오늘날 신뢰도 1위, 압도적 시청률 1위의 KBS 뉴스를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정현 전 수석의 전화 녹취 사건을 두고 청와대 보도 개입에 왜 KBS가 침묵하고 있느냐는 비판도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이 사건은 KBS가 관련 소송의 당사자(징계무효 소송 피고)라는 점입니다. 원고측이 녹취를 이용해 일방적인 주장을 펼치는데 대해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하기가 어렵고, 뉴스를 제작 보도해 회사의 입장을 밝히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판단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발생 기사에 대해서는 객관적으로 뉴스 처리를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점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민주노총의 리포트 제작 방해야 말로 개입이고 압력입니다.
청와대 홍보수석의 협조 전화 자체가 보도개입이라면 기수별 성명을 낸 기자들은 민주노총의 리포트 제작 방해 압력에 대해서는 왜 침묵했습니까? 지난해 11월 민주노총 시위 관련 리포트를 막기 위해 민주노총 산하 언론노조가 사회부장과 취재기자를 상대로 벌인 리포트 방해 전화는 통상적인 노조활동입니까? 직접 이해관계가 있는 민주노총 언론노조가 사회부 기자들에게 리포트를 하지 말라고 소리치며 협박성 전화를 한 것이야말로 압력, 개입이 아니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청와대 홍보수석의 전화 녹취와 마찬가지로 그 당시 언론노조 간부가 당시 사회부를 상대로 리포트를 하지 말라며 협박한 전화 녹취가 공개된다면 그 때도 똑같이 말들을 할 겁니까? 중요한 것은 KBS 내 최대 압력단체인 언론노조의 협박과 압력에도 불구하고 당시 사회부 기자들이 KBS 기자들의 자존심을 지키고 보도를 했다는 사실입니다.
짓밟힌 기자윤리, 취재윤리에 대해서는 왜 침묵합니까?
KBS 내에 진영논리가 판을 치면서 최근 우리 편이 하면 당연한 것이고 다른 사람들이 하면 나쁜 짓이고 악이라는 해괴한 현상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박주민 의원 보도 건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사회부 취재 기자의 고발 리포트에 대해 노조나 협회, 일부 편향적인 기자들이 일제히 나서 “리포트가 잘못됐다”, “취재원을 밝혀라” 하면서 뒷조사를 하고, 회사 영상시스템 맴을 이용해 취재원을 밝혀 외부에 제공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당사자인 의원실도 인정하는 사안에 대해, 설사 하자가 있다하더라도 노조나 협회는 우리 기자를 감싸고 보호해줘야 하는게 아닙니까? 그게 기자협회, 노조의 역할이 아닙니까? 왜 성명을 낸 기자들은 이런 기자윤리를 저버리는 문제에 대해 눈을 감고 있는지, 무엇이 두려워서 침묵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무엇이 부당인사입니까?
최근 있었던 인사에 대해 부당인사라며 취소해 달라는 성명까지 나왔습니다. 부당인사라구요? 무엇이 부당인사입니까? 외부 매체에 황당한 논리로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기고를 하고서 아무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까? 취업규칙 위반 이런 말들은 하지 않겠습니다. 언제부턴가 외부 매체에 KBS를 깍아내리는 기고를 하는 것이 일부 기자들 사이에서는 영웅적인 행태로 인식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KBS인으로서 KBS를 팔아 이름값을 올렸으면 당당하게 뒷감당도 하는게 당연한 자세가 아닙니까? 지역국에 발령나면 그 것이 부당인사입니까? 그렇다면 지역에 있는 기자들은 어떻게 됩니까? 이제라도 잘못된 관행은 바로잡혀야 합니다.
KBS 뉴스는 결코 정파성을 띠어서는 안 됩니다.
KBS는 KBS입니다. 정파성을 분명히 하는 일부 신문방송과는 다릅니다. 우리 뉴스는 균형감을 갖고 중립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도 노조나 협회, 게시판의 글들은 진보좌파 매체의 논조가 지선의 가이드라인인 것처럼 KBS뉴스를 몰아가고 있습니다. 이에 동조해 자신의 이름을 빌려주는 기자가 적지 않다는 사실도 어이가 없습니다.
KBS 기자 스스로가 우리 뉴스를 폄훼하는 것은 ‘자신이 마시는 우물에 침을 뱉고 돌을 던지는 행위’입니다. 진보좌파 매체들은 기다렸다는 듯, 기수별 성명을 활용해 KBS뉴스를 마음껏 조롱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특정 정당이 KBS 인사와 관련해 논평까지 발표하는 등 정치권과 보조를 맞추는 조짐마저 나타나 더욱 우려스럽습니다. KBS의 미래를 위해 냉철하게 사실관계를 이해하고 균형감 있게 현실을 봐야 합니다. 노조나 협회, 편향된 기자들의 압력과 공포에서 벗어나 KBS기자로서의 자존심을 지켜야 할 때입니다.
2016. 7. 18. KBS 보도본부 국·부장단 일동
정지환, 박승규, 이현주, 장한식, 이강덕, 박영환, 강석훈, 김병길, 이재호, 김주영, 한재호, 이흥철, 이승환, 최재현, 이웅수, 박상범, 정인석, 박장범, 연규선, 곽우신, 오헌주, 유석조, 김성진, 이규종, 박찬근, 석종철, 이정록, 이유진, 선재희, 박종복, 김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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