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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7.05 19:48 수정 : 2016.07.06 11:42

[한겨레21]청와대의 ‘세월호 보도’ 통제 드러났다
단원고 생존 학생이 친구들 영정 보며 울던 날…
이정현 전 홍보수석은 대통령 ‘심기 경호’에 올인

2014년 4월30일. 세월호에서 구조된 단원고 학생들이 영정 속 친구들을 처음 만난 날이다.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정부 합동분향소. 슬픔이 끔찍한 기억을 압도했다. 병원에서 갓 퇴원한 70명의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은 웃고 있는 158명의 친구들과 4명의 선생님 사진 앞에서 울었다.

“지금 해경을 밟으면 어떡하냐”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7개 언론단체가 6월30일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 참사 직후 청와대 홍보수석이던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이 김시곤 당시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보도에 개입하는 내용이 담긴 통화 녹취록(위쪽)을 공개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미디어오늘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이 청와대 홍보수석 시절 대통령의 ‘심기 경호’를 위해 김시곤 당시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한 것은 하필 그날이었다. 그날 박근혜 대통령은 KBS 뉴스를 봤다. 해경이 해군의 잠수 등 구조 작업을 ‘통제’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의원은 이날 밤 10시께 김 국장에게 “하필이면 또 세상에 (대통령이) KBS를 오늘 봤네”라며 기사 삭제나 수정을 요구했다. 그는 “요거 하나만 살려주시오”라며 “(밤 11시 ‘뉴스라인’에서는) 아주 아예 그냥 다른 걸(기사)로 대체를 좀 해주든지 아니면 한다면은 말만 바꾸면 되니까 한번만 더 녹음을 해주시오”라고 생떼를 부렸다. 기사를 통째로 빼거나 ‘통제’라는 말을 다른 단어로 바꿔달라는 취지다.

처음이 아니었다. 앞선 2014년 4월21일, 이 의원은 김 전 국장을 윽박질렀다. KBS가 해경이 적극적으로 탈출 안내방송을 하지 않았다고 보도하자 이 의원은 “방송이 지금 해경을 밟아놓으면 어떻게 하냐”며 “그렇게 과장해가지고 말이야 거기다 대고 그렇게 밟아놓고 말이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전 국장은 “무슨 과장을 했냐”고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대화 내용을 들어보면 이 의원은 세월호 참사의 모든 책임이 “배를 몇십 년 동안 몰았던 선장놈”에게만 있다고 생각하는 듯 보인다.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 등 언론단체들은 지난 6월30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 의원과 김 전 국장의 통화 내용을 공개했다. 앞서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이 의원과 길환영 전 KBS 사장을 방송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방송법 제4조(방송 편성의 자유와 독립)에는 “누구든지 방송 편성에 관하여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라고 규정돼 있다.

“길환영, 정부에 불리한 보도 축소 지시”

청와대의 세월호 보도 개입 의혹은 2014년 5월부터 불거졌다. 언론노조 KBS 본부는 같은 해 4월 성명을 내고 김 전 국장이 후배 기자들이 있는 자리에서 ‘세월호 사망자 수와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비교하는 발언’을 했다고 비판했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은 이 내용을 접하고 김 전 국장의 해임을 요구하며 KBS와 청와대 인근에서 밤샘 집회를 했다. 김 전 국장은 ‘세월호 사고로 안전 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고 교통사고 등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는 취지였다고 해명했지만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결국 김 전 국장은 2014년 5월9일 사퇴했다.

그리고 일주일쯤 지난 5월16일 서울 여의도동 KBS 신관에서 열린 KBS기자협회 총회에 참석해 “이 의원이 직접 전화해 해경을 비판하지 말라고 했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자신의 사퇴가 청와대 압력 때문이며 길환영 당시 KBS 사장이 정부 입장을 대변해 보도국의 독립성을 침해해왔다고 주장했다. 당시 김 전 국장의 주장을 뒷받침해줄 증거가 적나라한 대화 내용이 담긴 녹취파일로 2년 만에 등장한 것이다.

언론노조가 공개한 김 전 국장의 ‘비망록’을 보면 길 전 사장이 청와대 입장을 대변해 보도에 개입한 정황은 훨씬 더 광범위하게 드러난다. 이 비망록은 김 전 국장의 업무 일지다. 비망록에는 길 전 사장이 국가정보원 대선 여론 조작 사건과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성추문 사건 축소 보도 등을 지시했다고 적혀 있다.

2013년 8월20일 KBS는 ‘국정원 댓글 작업 11개 파트 더 있다’는 내용의 단독 기사를 준비했다. 김 전 국장은 ‘이날 길 전 사장이 이 기사를 빼라고 했지만 끝까지 버텨서 6번째 기사에서 14번째로 내려 겨우 방송할 수 있었다’는 내용을 비망록에 적었다. 2013년 5월10일에는 “사장은 대통령 방미 속보 2건을 첫 번째와 두 번째로 하고 윤창중 워싱턴 성추문 사건 3건을 세 번째~다섯 번째로 다루라고 지시했다”고 쓰여 있다. 애초 계획은 성추문 사건을 톱기사로 다루는 것이었다.

“‘대통령 연설 예정’을 첫 뉴스로 넣으라”

박 대통령 동정 보도를 비중 있게 다루라는 지시도 수시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취임도 하기 전인 2013년 1월11일 비망록에는 “사장이 ‘박 당선인, 글로벌 취업·창업 확대’를 첫 번째(뉴스)로 처리하라고 지시”했다고 나온다. 이 내용은 다른 지상파 방송인 MBC와 SBS에서 비중 있게 다루지 않은 기사다.

2013년 11월17일에는 “사장이 ‘내일 대통령 시정연설’이라는 예고 리포트 1건을 첫 번째로 방송하라고 지시”했다고 적혀 있다. 애초 여섯 번째 순서로 배치된 기사였다. 결국 이 기사는 KBS 9시 뉴스 두 번째 순서로 보도됐다. 내용도 제대로 나오지 않은 대통령 시정연설 예고 기사를 앞쪽에 배치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 밖에도 비망록에는 길 전 사장이 정부에 편향적인 보도 지시를 내린 사례가 숱하게 나온다. 김 전 국장의 기록이 모두 사실이라면 길 전 사장은 사실상 청와대 대변인 노릇을 한 셈이다. 이번에 공개된 녹취록에서 이 의원이 노골적으로 언론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난 만큼 길 전 사장의 보도 통제에도 청와대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다.

언론노조 기자회견으로 청와대의 KBS 보도 개입은 사실로 드러났다. 하지만 청와대의 언론 통제가 KBS에만 이뤄졌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더욱이 청와대가 김 전 국장만을 통해 KBS에 압력을 넣었다고 생각하기도 힘들다. 충분한 조사가 더 필요한 이유다. 특조위 조사3과는 세월호 보도에 정부 압력이 있었는지 확인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 녹취록이 공개된 6월30일 특조위에 파견된 공무원 29명 중 12명을 복귀시켰다. 특조위 ‘강제 종료’ 절차에 들어간 것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KBS  보도  관련  상황  일지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발생 2시간여 뒤인 오전 11시23분, KBS 뉴스특보를 통해 ‘경기 교육청 대책반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 자막과 함께 관련 소식 보도

-사고 첫날 저녁 뉴스 ‘투입된 경비함정만 81척, 헬기 15대가 동원됐고, 200명에 가까운 구조인력 등 육·해·공이 총동원돼 하늘과 바다에서 입체적 구조 작업을 벌였다’고 보도(실제 투입된 수중 수색 인원은 16명이었던 것으로 나중에 확인)

4월21일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김시곤 KBS 보도국장 1차 통화

-이정현, KBS <뉴스9> 해경 비판 보도(7건) 거세게 항의

-김시곤 발언 “선배, 우리가 뭐 일부러 해경을 두들겨 패려고 하는 겁니까?” “이 선배, 솔직히 우리만큼 많이 도와준 데가 어디 있습니까? 솔직히.”

4월22~29일

-KBS 청해진해운과 유병언, 구원파 보도 집중 시작. 일주일간 관련 보도 38건

-구원파와 특정 종교 문제로 상황 전환하려 한다며 KBS 내부에서 비판 제기

4월24일

-KBS <뉴스9> 수색 규모 과장 논란. 해경 발표 바탕으로 ‘수색 작업에 참여한 잠수부는 720여 명으로 늘었다’ 보도(같은 날 SBS는 ‘민관군 75명의 잠수요원들이 교대로 투입됐다’고 보도)

4월29일

-KBS, 대통령의 사과에 대한 유가족들의 거부 및 대통령 합동분향소 조문 연출 논란 보도 누락

4월30일

-‘사고 초기 해경, 언딘 때문에 군 투입 못했다’는 사실 국방부 자료로 알려진 뒤, KBS 해경-언딘 유착을 톱뉴스로 보도

-이정현-김시곤 2차 통화

-이정현, <뉴스9> 보았는데, 해경 관련 소식을 심야뉴스에서 불방할 것을 요구

-김시곤 발언 “국방부 놈들이 말이지 아니 그런 자료를 내냐고 도대체가. 한심해 죽겠어, 보면 진짜로.” “뉴스라인 쪽에 내가 한번 얘기를 해볼게요.”

5월4일

-김시곤, 4월말에 '세월호 사고 교통사고 사망자 수 비교'했다는 발언 내용 언론 보도

*KBS 자체 감사결과, 당시 '세월호 참사 희생자가 적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이 아니라고 결론

5월5일

-KBS 길환영 사장, 휴일임에도 보도국장, 편집주간, 취재주간 등을 보도본부장실에 불러, 해경 비판 보도 말라고 지시

5월8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 본부,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 세월호 보도에 관여한 모든 기자들이 참석하는 토론회 제안

-KBS 간부들, 경기도 안산분향소로 조문 분향 갔다가 항의하는 유가족들에 둘러싸임. 유가족들은 김시곤 보도국장 사과 및 파면 요구

-세월호 유가족, KBS 항의 방문 뒤 청와대 앞 노숙농성 돌입. 이정현 면담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한선교), 여당 단독으로 상임위 열어 KBS 수신료 인상안 긴급 상정

5월9일

-13시25분: 길환영, 김시곤에게 청와대의 지시라며 사표 요구

-14시: 김시곤, 사임 기자회견 열어 부당 보도 개입 폭로하고 길환영의 동반 사퇴 요구

-15시: 길환영, 청와대 앞 유가족들 찾아 김시곤 사표 수리 약속. 김시곤 사임

-20시: 김시곤, JTBC 뉴스와 인터뷰 통해 “길환영 청와대만 보고 가는 사람”이라고 비판

2015년  5월12일

-KBS 새 보도국장에 이정현의 고교 동기동창인 백운기 선임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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