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근
라이프에디터
흰소리를 하려는 게 아니다. 그들을 허투루 비난해서는 안 된다. 그건 그들의 현실과 멘탈리티를 잘 몰라서 하는 얘기다.
“격의 없는 통화”, “본연의 임무”.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이정현 의원,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의 성대를 울리고, 혀를 돌아, 입 밖으로 터져나온 이 말은 다 진실이다.
국민들은 많이 놀라셨을 수 있다. 하지만 10년 이상 겪어본 이정현 의원은 ‘격의 없는 통화’를 즐긴다. 본연의 임무에도 충실하다. 표현이 좀 거칠 뿐 성실성과 열정으로 꼼꼼히 챙긴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에 관한 문제엔 거의 목숨을 걸 정도로 헌신적이다. 그런 이정현 의원이 세월호 참사 당시인 2014년 청와대 홍보수석으로 김시곤 <한국방송>(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세월호 보도를 문제 삼고, “하필이면 (대통령이) 케이비에스를 오늘 봤네”라며 다른 기사로 대체하라 했을 때, 그건 그에겐 일상화된 격의 없는 통화였을 것이다. “언론과의 협조를 통해 그런 걸 함께 극복하는 게 홍보수석의 역할이라 생각했다”는 그의 해명은 진심이다.
이원종 비서실장은 일면식도 없다. 다만, 국회 운영위원회에 나온 그가 이정현 의원의 행동을 “통상적인 업무협조”로 규정하고 “청와대 홍보수석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기 위해 협조를 요청했던 것”이라 했을 때, ‘아~ 이 사람도, 진심을 말하고 있구나’라고 느꼈다. 현재 진행형인 청와대의 통상적 업무협조일 테니까.
우리네 일상에서 ‘격의 없는 통화’, ‘본연의 임무’는 중요하다. 무언가 막혔을 때 소주 한잔 마시며 격 없이 대화하고 풀어보려 안간힘을 쓴다. 전화로 읍소도 한다. 우리에게 본연의 임무는 대개 생계가 오롯이 걸린 ‘밥줄’이다.
이런 일상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는 세월호 참사 때 한명이라도 더 구하려고 무전 치고 소통하는 게 ‘해경의 격의 없는 통화’, 잘못된 대처를 꼬집고 비판하는 게 ‘언론 본연의 임무’라고 생각해왔다. 어린 학생들이 차디찬 바닷속에 수장된 것을 제 허물로 생각하고, 한 맺힌 유족의 슬픔에 공감하고 눈물을 닦아주는 ‘격의 없는 대화’에 나서고, ‘한 점 의혹이라도 남았다면 특조위를 주야장천 연장해서라도 풀어주라’고 지시하는 게 대통령 본연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우리 환상이다. 세금 내는 주권자로 “국민은 눈에 없고, 박근혜 대통령 심기 경호에만 몰입한 게 아니냐”고 참모들을 비판할 자격은 있다. 하지만 그런 힐난이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현실, 그들의 멘탈리티를 바꾸지는 못한다. 청와대 참모에게 본연의 임무는 박 대통령 심기 경호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대통령의 심리적 평안함은 ‘국가 중대사’다. 그 임무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돈독한 친분을 쌓아온 언론사 간부와 격의 없이 통화한다. “친해서 한 얘기”고 그게 “통상적 업무협조”다. 그들은 ‘확신범’이다.
대통령이 여론을 제대로 읽고 국민 정서에 공감하도록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다는 청와대 참모는 별로 본 적이 없지 않나. 대통령의 복지공약 변질을 비판한 장관, 헌법 정신을 강조한 여당 의원이 쫓겨나고 배제됐는데, 어떤 청와대 참모가 나서겠나.
“대통령께서는 제가 보기에는 주무시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100% 일하고 계신다.” “당시 (세월호 참사) 사고가 났을 때 가장 어깨가 무겁고 가슴이 아팠던 사람은 다름 아닌 대통령이다.” 집무실이 아닌 관저에서 세월호 보고를 받은 박 대통령의 행태를 지적한 의원 질의에 이렇게 발끈한 이원종 비서실장. 그는 ‘대통령을 위해 최적화된, 준비된 비서실장’이다. 대통령이 생각하는 ‘혼이 정상인 참모’일 게다. ‘대통령 주변의 확신범’을 너무 손가락질하지 말자. 정신건강에 해롭다.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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