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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7.01 21:33 수정 : 2016.07.04 11:16

김시곤 비망록으로 본 청와대 KBS 보도통제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으로 ‘KBS 세월호 관련 보도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이 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의원들의 질의를 들으며 생각에 잠겨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이른바 ‘이정현-김시곤 통화’ 녹취자료 공개로 <한국방송>(KBS)의 보도에 청와대가 개입해온 실태가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이에 따라 김시곤 전 한국방송 보도국장이 재직 중에 작성해둔 ‘국장업무 일일기록’, 이른바 ‘김시곤 비망록’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한겨레> 5월12일치 8면) 여기엔 2013년 1월11일부터 11월17일까지 <9시뉴스>의 ‘당초 편집안’이 길환영 전 사장 등의 지시로 어떻게 바뀌어 방송됐는지 날짜별로 정리돼 있다. 김 전 국장은 세월호 참사 뒤인 2014년 5월 보도국장 보직을 사퇴하며 길환영 당시 사장과 청와대의 보도 개입 실태를 폭로한 바 있는데, 비망록에 담긴 내용은 당시 그의 폭로 내용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비망록을 보면, 당시 한국방송 경영진이 청와대에 유리한 보도를 ‘살리고’ 불리한 보도를 ‘죽이기’ 위해 뉴스 편집에 어떻게 개입했는지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길 전 사장은 휴일에도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청와대 관련 뉴스를 앞에 배치하라” 등의 깨알 같은 지시를 내렸고, 이정현 당시 청와대 수석 역시 때때로 보도국장에게 직접 전화를 거는 방식으로 뉴스 편집에 간여했던 것으로 나온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이다. 사건이 알려졌던 2013년 5월10일, 한국방송은 애초 ‘윤창중 워싱턴 성추문 사건’ 관련 리포트 3건을 <뉴스9>의 1~3번째로, ‘대통령 방미 속보’ 관련 리포트 2건을 4~5번째로 편집했다. 그러나 비망록에서 김 전 국장은 “사장이 ‘대통령’ 리포트 2건을 1~2번째로, ‘윤창중’ 리포트 3건을 3~5번째로 다루라고 지시했다”고 했다. ‘윤창중 사건’보다 대통령의 방미 성과를 더 부각하라는 주문으로 읽힌다.

그날은 “곤란하다”며 당초 편집안대로 방송했으나, 그 뒤 사건의 파문이 이어지는 동안 사장은 “내일부터 ‘윤창중 사건 속보’를 1번째로 다루지 말라” 등의 지시를 계속 내렸고, 이정현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도 전화를 걸어 “‘대통령 방미 성과’를 잘 다뤄달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그 결과 5월14일에는 1~3번째로 편집되어 있던 ‘윤창중 사건 속보’가 2건으로 줄어 3~4번째로 방송됐고, 사장과 보도본부장이 주문한 ‘정부, 북한에 대화 제의’ 관련 리포트 2건이 1~2번째로 방송됐다.

2013년 7월17일에는 당초 편집안에는 없던 ‘국가기록원서 남북대화 정상대화록 못 찾아’ 리포트가 1번째로 방송됐다. 당시 정치권 일각에서 남북대화 정상대화록을 정쟁의 불씨로 삼았는데, 이를 부채질하는 내용을 담은 리포트가 “사장의 지시”로 “추가 제작”됐다는 것이 김 전 국장의 기록이다.

2013년 8월20일에는 애초 ‘국정원 댓글작업 11개 파트 더 있다’는 특종 리포트와 “여당에 유리한” ‘경찰 폐회로텔레비전 조작·왜곡 공방’ 리포트를 6~7번째로 편집해 “균형을 맞췄다”고 한다. 그러나 경찰 관련 리포트가 팩트와 달라 제작할 수 없게 되자 길 전 사장은 “둘 다 빼라”고 요구했고, “특종이라서 안 낼 경우 기자들을 통솔할 수 없다”고 버텨 14번째로 내려 “겨우 방송”했다.

2013년 10월27일에는 ‘청와대 안뜰서 아리랑 공연’이란 리포트를 맨 마지막 순서인 16번째로 편집해 방송했는데, 뉴스가 끝난 뒤 이정현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 전화를 걸어와 “맨 마지막에 편집한 것은 문제 있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김 전 국장은 “맨 뒤에 편집하는 것은 오히려 시청자 주목도가 높아서 홀대하는 게 아니다”라는 설명을 했다고 적었다.

비망록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은 “사장 지시”다. 비망록대로라면 길 전 사장은 없던 리포트를 만들어 넣고 있는 리포트를 빼는 등 한국방송 보도를 쥐락펴락한 셈인데, 이는 방송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위다. 그래야 했던 이유를 추측하긴 어렵지 않다. 현행 공영방송의 지배구조가 사실상 정부·여당의 일방적인 지배 아래 놓여 있기 때문이다. 김 전 국장은 비망록에 “길환영 사장의 보도 개입은 ‘뉴스 편집의 상식’을 벗어난 무리한 요구였을 뿐 아니라 방송법이 규정한 ‘공정성’을 심각하게 위반한 것이었다. 2013년 11월18일 이후 더이상 메모를 하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중단했다”고 적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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