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 “오보 대응을 위한 홍보수석의 당연한 임무”
야권 “국민은 2016년 유신시대 비서실장을 보며 충격” 비판
1일 국회는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한국방송>(KBS) 보도 외압 논란으로 하루 종일 뜨거운 공방이 벌어졌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었던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이 한국방송에 전화를 걸어 세월호 관련 기사를 수정하려고 한 것을 놓고 야당은 “제2의 보도지침”이라고 비판했다. 청와대는 “통상적인 업무”라고 방어막을 폈지만, 야권은 박근혜 대통령의 해명을 요구하고 나섰으며, 더불어민주당은 상임위원회 차원의 청문회 추진을 밝히는 등 맹공을 퍼부었다.
이날 여소야대 20대 국회에서 처음으로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에서는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 등 청와대 참모진이 출석한 가운데 설전이 펼쳐졌다. 이 비서실장은 처음엔 “비서실이 소통의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고 말했지만, 이후 송곳 질의가 계속되자 “확인되지 않았다”, “정확히는 모른다” 등으로 궁색한 답변만 되풀이했다. 이 비서실장은 “당시 청와대에 없었기 때문에 파악을 잘 못 했다”면서도 “잘못된 보도 내용을 바꾸는 것은 홍보수석뿐만 아니라 언론을 담당하는 공무원의 본연의 임무”라는 답변을 반복했다. 국민의당 장진영 대변인은 이런 답변에 대해 “국민은 2016년에 유신시대 비서실장을 보며 큰 충격을 받고 있다”고 논평했다.
특히 쟁점이 된 박근혜 대통령의 보도 수정 지시 여부에 대해 청와대는 “이정현 전 수석 개인의 판단”이라며 선을 그었다. 전날 공개된 김시곤 전 한국방송 보도국장과 이 전 수석 사이의 통화 녹취록(2014년 4월30일)에서 이 전 수석은 “하필이면 또 세상에 (대통령이) 케이비에스(저녁 9시 뉴스)를 오늘 봤네. 아이~ 한번만 도와주시오”라며 밤 11시 뉴스에선 비판적인 기사를 빼달라고 요구한다. 야당 의원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방송을 보고 이 전 수석에게 뉴스 수정·삭제 지시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오전에 이 전 수석과 통화를 해서 물어봤더니 자신의 독자적 판단으로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고 답변했다. 이 비서실장은 “(보도 내용 수정)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그렇게(대통령이 뉴스를 봤다고) 했을 수도 있겠다”고 답했다. 박 대통령의 개입 논란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지만, 청와대 핵심 참모가 대통령을 빙자해 방송사에 압력을 넣었다는 해명이 되는 셈이다.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그게 사실이면) 과잉충성이다. 대통령 심기 경호를 알아서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새누리당 의원들은 “만약 이름이 틀리게 나가면 오보니까 교체해 달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니냐”(이양수), “녹음을 조심하지 않아 생긴 문제”, “보도 통제가 아닌 보도 구걸”(이상 민경욱) 등 본질을 흐리는 질문과 발언을 이어갔다.
이 비서실장의 ‘충성 발언’들도 눈길을 끌었다. 그는 “(세월호) 사고가 났을 때 대한민국 국민 중에 가장 어깨가 무겁고 마음이 아팠던 사람이 누구겠느냐? 대통령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박 대통령이 “주무시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100% 일하고 계시다. 그분 마음속엔 대한민국 발전과 국민 외에는 없는 걸로 생각한다”고 했다.
하어영 김남일 기자 haha@hani.co.kr
보도지침
보도지침이란 군사정권 당시 정부가 신문·방송사에 뉴스 내용과 형식을 정권의 입맛에 맞추도록 구체적으로 지시하던 것을 말한다. 1986년 <한국일보> 김주언 기자가 1985년 10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문화공보부에서 시달된 584건의 보도지침 내용을 잡지 <말>에 폭로하면서 존재가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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