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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6.14 16:38 수정 : 2016.06.28 11:12

정치BAR_검·경 향한 불신이 선관위 권한 강화로

이인복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2014년 12월22일 오전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과천청사 4층 회의실에서 열린 전체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최근 국민의당 비례대표 의원인 박선숙·김수민 의원을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http://me2.do/xh7xs9p2) 국민의당 선거대책위 홍보위원장을 맡은 김 의원이 선거공보 제작 업체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했다는 게 선관위의 판단입니다. 선관위는 총선 때 당 사무총장을 맡으며 회계를 총괄했던 박선숙 의원도 사전 보고를 받고 이를 지시했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강제수사권도 없는 선관위가 어떻게 이런 판단을 내릴 수 있었을까요?


선관위, 수사기관보다 세다

선관위는 선거행정을 담당하는 행정기관입니다. 그러나 수사기관에 준하는 강력한 조사권을 가집니다. 공직선거법, 정치자금법 등에 나열된 선관위의 조사권은 다음과 같습니다.

장소출입권
선거범죄 혐의가 있다고 인정되거나 현행범 신고를 받은 경우 관계인에게 질문·조사하기 위해 그 장소에 출입할 수 있다.

질문·조사권
범죄혐의 사실을 발견하고 증거조사를 위해 관계인에게 질문하거나 추궁할 수 있다.

자료제출요구권
범죄혐의 입증에 필요한 자료를 소지한 자에게 자료제출을 명할 수 있다.

동행 또는 출석요구권
선거범죄와 관련해 관계자에게 질문·조사하기 위해 동행 또는 출석을 요구할 수 있다.

현장수거권
선거범죄 현장에서 선거범죄에 사용된 증거물품을 수집·보관할 수 있다.

현장조치권
선거의 자유와 공정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는 위법행위가 행해지거나 행해질 것이 명백할 경우 그 행위의 중단 또는 예방에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

통신관련 선거범죄 조사권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선거범죄혐의가 있을 경우 관할 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의 승인을 얻어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에게 이용자의 식별에 필요한 자료 등의 열람이나 제출을 요청할 수 있다.

금융거래자료 제출 요구권
정치자금범죄 조사를 위해 금융기관의 장에게 금융거래자료(계좌개설 내역·계좌이체 상대방의 인적사항 등)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

대부분 권한이 ‘~할 수 있다’로 돼 있습니다. 하지만 응하지 않으면 과태료 처분뿐 아니라 벌금이나 징역형 등 형벌이 부과되기도 합니다. 말만 ‘조사’지 사실상 강제력이 동반되는 ‘수사’인 셈입니다.

수사기관보다 권한이 세다고 볼 여지도 있습니다. 범죄 혐의가 있다고 생각될 경우 선관위든 수사기관이든 사람을 데려오고, 장소를 수색하고 물건을 압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사기관은 사전·사후에 관련 영장을 청구해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선관위에는 그런 제한이 없습니다. 계좌추적해 자금 흐름을 보려고 할 때도 선관위는 금융기관의 장에게 ‘요구’만 하면 됩니다. 영장이 필요한 수사기관보다 자유롭습니다.

선관위가 선거범죄 조사권을 갖게 된 건 1997년 10월입니다. 정치개혁이 시대 과제였고, 경찰·검찰에 대한 불신은 팽배했습니다.(지금도 다르진 않습니다만) ‘선거범죄를 엄단하기 위해 선관위를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에 누구도 토를 달기 어려웠습니다. 당시 선관위는 ‘직원들이 조사권이 없어서 불법 선거운동 현장을 적발하고도 증거확보에 애를 먹는다’며 강하게 조사권을 요구했습니다. 여·야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시민단체들은 조사권뿐 아니라 수사권까지 줘야한다는 입장이었죠.

'참정권'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 문화연대,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민은행 앞에서 선거법 UCC 지침을 폐기하고 선거법을 개정하라는 기자회견을 가지고 있다. 참석한 회원들이 선거관리위원회가 유권자의 정치참여를 검열한다는 의미의 행위극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법원의 수사조직, 선관위

선관위 조사권은 선거범죄에 한해선 수사기관보다 엄청나게 세다. 수사기관의 힘에, 법원의 권한까지 일부 더했다고 보면 된다. 행정기관 직원을 일부 범죄에 한해 특별사법경찰관으로 임명해 수사권을 주기도 한다. 선관위 직원도 사실상 그런 신분이다. 그러나 특사경으로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그렇게 할 경우 선관위가 검찰의 통제 아래 들어가기 때문이다.
현직 부장판사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관례상 위원 중 한명인 대법관이 맡습니다. 시·도선거관리위원장은 각 시를 관할하는 법원장이나 각 도를 관할하는 고등법원의 부장판사가, 시·군·구선거관리위원장은 관례적으로 지역법원 부장판사가 겸직합니다. 현직 대법관과 판사인 이들 위원장은 선관위의 조사활동을 꼼꼼히 챙긴다고 합니다. 선관위를 두고 ‘법원의 수사조직’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지방의 한 부장판사는 14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실제 중앙선관위가 검찰에 고발할 때 위원장인 대법관이 기록을 다 본다. 중앙선관위·지역선관위의 모든 외부 활동(조사·고발·재정신청)은 대법관·지방 부장판사의 판단을 거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국민의당 리베이트 의혹 사건’ 고발 주체는 중앙선관위입니다. 현직 대법관의 판단을 거쳐 고발이 이뤄졌다는 뜻이죠.

조사권을 가진 ‘법원의 수사조직’ 선관위는 2000년 2월 재정신청권까지 손에 넣습니다. 재정신청이란 검사가 고소 사건이나 고발 사건에 대해 불기소 결정을 내렸을 때 고등법원에 그 결정이 옳은지 따져달라고 물을 수 있는 제도입니다. 선관위가 ‘죄가 된다’고 판단해 검찰에 넘겼는데, 검찰이 ‘죄가 안된다’고 할 경우, 선관위가 검찰을 건너뛰고 곧장 법원의 판단을 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법원이 법원에게 판단을 구하는 셈이니 받아들여질 확률이 크겠죠? 검찰은 선관위 고발 사건을 처리할 때마다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습니다. 선관위 관계자는 “선관위 고발 사건 중 90%정도가 기소된다. 불기소된 10% 중 일부를 재정신청하는데 대개 30% 정도 받아들여진다”고 말했습니다. 전체 재정신청사건의 인용률이 1%에도 못미친다는 점을 감안하면 굉장히 높은 인용률입니다.

선관위가 재정신청권을 따낼 당시 중앙선관위원장은 훗날 참여정부에서 대법원장을 지내며 사법개혁을 주도한 이용훈 대법관이었습니다. ‘이용훈의 선관위민’는 2000년 5월 김영배(민주당), 이상현(자유민주연합) 의원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검찰이 불기소처분한 것에 맞서 헌정사상 처음으로 재정신청권을 행사했습니다. 검찰은 매우 감하게 반응했죠. 이후 선관위는 한손에는 조사권을, 다른 한손에는 재정신청권을 쥐고 선거관련 범죄에 대처하고 있습니다.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

◎ 참고자료: 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범죄 조사절차상에서 피조사자 및 사건관계인의 인권보장방안에 관한 연구-이충민 전북대학교 법무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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