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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6.21 17:15 수정 : 2016.06.22 10:49

서병수 부산시장이 21일 부산시청 12층 국제회의장에서 정부의 동남권(남부권) 신공항 용역 결과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영남권 신공항 백지화
신공항 백지화에 배신감 느끼는 대구·부산 ‘허탈’ ‘분노’
“MB정부 이어 박근혜 정부도…대선 표로 여당 심판할 것”

국토교통부가 영남권 신공항을 새로 짓지 않고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안을 발표하자 오랫 동안 신공항을 염원했던 부산시와 시민들은 허탈함과 함께 또다시 신공항이 무산됐다며 분노를 표출했다.

서병수 부산시장은 21일 국토교통부가 김해공항 확장안을 발표한 직후 부산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가 김해공항 확장 결정을 내린 것은 당장 눈앞에 닥친 지역 갈등을 이유로 우선 피하고 보자는 미봉책이다. 수도권의 편협한 논리에 의한 결정이다″고 성토했다.

그는 ¨김해공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된 용역에서 어떻게 또 다시 김해공항 확장 방안이 나올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다. 용역의 취지에 명백히 어긋난 이번 결정은 360만 부산시민을 무시한 처사”라고 덧붙였다. 그는 부산시 주도의 24시간 공항 건설을 추진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김해공항을 확장한다고 해도 소음 민원 때문에 24시간 운영은 여전히 불가능하고 안전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으므로 민자 유치 등의 방법으로 독자적인 신공항 건설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부산시는 곧 신공항 무산에 대한 독자적 대응방안과 정부 용역 결과 발표에 대한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용역 결과에 대해 공식적으로 불복하고 독자 용역 추진 등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서병수 부산시장이 21일 부산시청 12층 국제회의장에서 정부의 동남권(남부권) 신공항 용역 결과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일부에선 부산시가 정부를 대상으로 맞대응하기가 쉽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신공항을 부산시가 직접 추진하더라도 정부의 승인이 있어야 하는 데다 ‘친박’으로 불렸던 서 시장이 박근혜 정부에 정치적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가덕도에 신공항을 유치하려던 부산 시민단체들은 정치적 논리가 작용했다고 의심했다. 이번 용역은 2011년 이명박 정부 때 무산된 신공항을 부활시키기 위한 것인데 또다시 무산된 것은 새누리당이 내년 대통령선거를 의식해 새누리당의 텃밭인 영남권의 분열을 막으려 했다는 것이다.

박인호 가덕신공항추진 범시민운동본부 대표는 “정부가 신공항을 만들지 않겠다는 것은 부산과 대구 등의 지역 갈등을 임시로 봉합한 미봉책에 불과하다. 부산시와 긴밀히 협의해 향후 대응 방안을 마련해 행동하겠다"고 말했다.

부산 시민들의 반응은 다양했지만 또다시 신공항이 무산된 것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더 많았다. 남아무개(39·부산 남구 문현동)씨는 “이명박 정부도 2011년 영남권 신공항 건설을 백지화했는데 박근혜 정부가 또다시 무산시켰다. 국가 대계를 고려해 앞을 내다보지 않고 정치적 이해득실만 따져 이같은 결론을 낸 것이라는 의구심이 든다. 내년 대선에서 표로 정부 여당을 심판하겠다”고 말했다.

김아무개(64·부산 해운대구 반여동)씨는 “14년 전 김해 돗대산에서 중국민항기가 추락해 100여명이 숨졌다. 정부는 또다시 지역갈등을 이유로 안전하지 못한 김해공항 문제를 외면한 셈이다. 무능한 정부를 가만둬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아무개(42·부산 부산진구 전포동)씨는 “가덕도나 밀양이나 신공항이 들어선다면 해당 지역 주민들은 쫓겨나야 한다. 신공항이 건설된다고 시민들의 삶의 질이 나아진다고 볼 수 없다. 정부가 비겁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김해공항 확장이 신공항 건설보다 더 낫다고 본다”고 말했다.

신공항 후보지였던 부산 가덕도 대항마을 주민들은 김해공항 확장안을 반겼다. 주민 김아무개(68)씨는 “솔직히 말해 기분이 좋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에서 쫓겨나지 않고 계속 살 수 있게 됐다. 김해공항 확장안으로 다른 시민들도 손해날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주민 대부분이 같은 심정이다”고 말했다.

부산/김광수 김영동 기자 kskim@hani.co.kr


21일 오후 남부권신공항 범시도민추진위원회관계자들이 떠난 대구상공회의소에 신공항과 관련한 내용의 피켓이 쌓여 있다. 이날 신공항에 대한 사전타당성 연구용역을 벌여온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과 국토교통부는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방안이 최적의 대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2016.6.21 연합뉴스

신공항 밀양 올 줄 알았던 대구는 허탈감과 배신감

“영남권 신공항은 밀양으로 확정됐습니다.”

21일 오후 3시 대구시 동구 신천3동 대구상공회의소 10층 회의실. 국토교통부의 영남권 신공항 사전 타당성 검토 연구 용역 최종보고회를 앞두고 ‘예행연습’이 한창이었다. ‘남부권 신공항 범 시·도민 추진위원회’ 이수산 사무총장이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외치자 40여명의 사람들은 함성을 질렀다. ‘하늘길이 살길이다’라고 적힌 부채와 ‘신공항 건설로 대기업 유치’, ‘신공항이 대박’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흔들었다.

이들의 기대감이 허탈감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텔레비전 뉴스에는 ‘영남권 신공항 대신 김해공항 확장’이라는 큼지막한 자막이 흘러나왔다. 신공항 입지가 경남 밀양으로 결정될 줄로만 알았던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한동안 침묵만 감돌았다. “더이상 들을 필요 없습니다. (텔레비전) 꺼주세요.” 누군가가 이렇게 외쳤다.

흥분한 사람들은 “정부는 이 사기극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세종시 공약은 지키고 왜 신공항 공약은 안 지키는 겁니까”라고 외쳤다.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 져야 한다. 대구·경북이 핫바지냐”, “박근혜 대통령이 대구·경북을 버렸다. 이 정부는 더이상 믿을 수 없다”라는 비판도 쏟아졌다.

‘남부권 신공항 범 시·도민 추진위원회’ 강주열 위원장은 “참담한 심정이며 또다시 대국민 사기극에 마음이 아프다. 저희들은 오늘 이 결과를 절대 수용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수산 추진위 사무총장은 “오전까지만 해도 신공항이 밀양으로 온다고 잔뜩 기대하고 왔는데 이명박 정부 때와 같은 일이 되풀이됐다. ‘친박’ 서병수 부산시장의 보이지 않은 영향이라고 의심히지 않을 수 밖에 없다”라고 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박근혜 정부 신공항 대국민 사기극을 강력히 규탄한다”, “남부권 신공항을 재추진할 것을 결의한다”라는 구호를 함께 외치고 해산했다.

시민들 “박근혜 대통령이 대구·경북을 버렸다”
권영진 대구시장 “유감 넘어 분노 느낀다”

권영진 대구시장과 박일호 밀양시장은 이날 영남권 신공항이 무산된 것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이날 오후 4시 대구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역사의 수레바퀴를 10년전으로 돌려놓은 어처구니 없는 결정이라”라고 비판했다. 권 시장은 “이명박 정부에 이어 이 정부마저도 신공항 건설을 백지화시켜 유감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 용역과정을 철저히 검증하고 곧 부산 등 5개 시·도와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강구하겠다”라고 밝혔다.

박일호 밀양시장은 “영남권 신공항 후보지로 밀양시가 선정되지 않은 것에 대해 11만 시민과 함께 깊은 유감의 뜻을 표한다. 또 한번 밀양시민을 우롱한 결정에 밀양시민은 분노한다”며 허탈해 했다. 박 시장은 “김해공항을 확장하려 했다면 처음부터 그런 결정을 해야 했다. 한번도 아니고 또 한 번의 논의를 하면서 밀양시민을 절망의 수렁으로 몰아넣었다. 이제 누가 정부를 믿겠나? 정부의 신뢰가 무너졌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기현 울산시장과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유감이나 아쉬움만 나타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이날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았다.

김관용 경북지사는 “국가적으로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겠지만 매우 유감스럽다”라고 했다. 김기현 울산시장은 “아쉽지만 정부가 균형적인 시각에서의 결정이라 보고 존중하며 그간의 갈등을 치유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신공항 예정지로 거론됐던 밀양시 하남읍 백산리 송산마을의 김태석(55) 이장은 “내보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결정했을 것이니, 찬성·반대 의견 없이 그 결정에 따르겠다. 다만 그 결정이 정치적 판단이 아닌 우리나라 전체 발전을 위해 결정한 것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대구/김일우 최상원 구대선 신동명 기자 coo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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