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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6.20 21:26 수정 : 2016.06.22 10:54

‘영남권 신공항’ 후보마을 르포

영남권 신공항 입지 발표를 앞두고 후보지인 부산 가덕도와 경남 밀양 현지 주민들의 목소리를 지난 19일 들어봤다. 부산과 대구에서 ‘신공항이 와야 한다’는 주장을 앞장서 펴는 쪽은 정치인, 지역 기업인, 지역 언론 등이다. 신공항 유치를 놓고 부산과 대구·경북의 힘겨루기가 한창이지만, 가덕도와 밀양 주민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묻혀 있다. 이들 주민은 지역사회의 열기를 의식해 내놓고 다른 의견을 밝히길 꺼렸지만 “삶의 터전이 사라질지도 모르는데, 왜 우리들에게 한마디 설명도 없이 외부에서만 논의를 하고 있느냐”며 억울함과 답답함을 호소했다.

부산 가덕도 대항마을 “신공항은 이곳에선 금기어 쫓겨날 뿐이라는 걸 알아”

240가구 “대구잡아 자식키워”
항구엔 5~10t 작은 어선 줄지어
마을입구까진 ‘지지 현수막’
마을안엔 홍보문구조차 없어

“대대로 고기잡아 살아왔어
누가 생계 책임질 거야…
부산시장 설명회도 없었어”
2㎞ 윗마을은 찬성 분위기 대조

가덕신공항 후보지인 대항마을의 항구 전경. 부산/김영동 기자

지난 19일 오전 부산 강서구 송정동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 근처의 가덕대교에서 부산~거제 연결도로를 따라 차를 타고 10여분 동안 이동해 가덕도 천성나들목에 들어서니, 도로 가드레일 한쪽에 ‘삼면이 바다인데 산 깎고 논 메워 공항 만드나!’라는 내용의 펼침막이 보였다. 30여분 동안 차를 타고 부산 도심을 지나오면서 곳곳에 내걸려 있던 가덕신공항 유치 염원 내용이 담긴 펼침막이 마을 입구까지 이어져 있었다.

신공항 후보지인 대항마을은 240여가구가 사는 작은 어촌이다. 정작 대항마을은 조용했다. 마을 안에는 신공항과 관련된 펼침막이나 홍보 문구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가덕신공항은 반대야. 조상 대대로 고기를 잡아 살아왔어. 형제처럼 끈끈한 정이 남아 있는 우리 마을을 왜 찢으려고 해. 우리는 여기서 살다 죽을 거야. 좀 내버려둬.” 집 담벼락에 햇볕을 피해 앉아 있던 양아무개(84)씨는 역정을 냈다.

대항항에는 5~10t급의 작은 어선들이 줄지어 정박돼 있었다. 어민들은 배에 부표를 싣거나 그물을 손보고 있었다. 어민 김아무개(51)씨는 “대항마을 어민들은 12~2월 대구를 잡아 부모를 모시고 자식들을 키운다. 가덕신공항이 들어선다면 삶의 터전이 사라진다. 누가 주민들의 생계를 책임질 것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옆에 있던 한 어민은 “가덕신공항은 이곳에선 금기어에 가깝다”고 거들었다.

음식점 주인 김아무개(68)씨는 “주민 대부분이 가덕신공항 건설을 반대하지만, 부산시 등에 미운털이 박힐까봐 공개적으로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다. 결국 주민들은 쫓겨날 뿐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어 지켜볼 뿐”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상점 주인 서아무개(67)씨는 “서병수 부산시장한테 할 말이 많다. 애초 대항마을 밖 바다를 매립해 신공항을 짓겠다는 계획에서 대항마을을 수용하는 신공항 건설 계획으로 수정했을 때 설명회를 열어 주민들의 이해를 구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가덕도 마을마다 신공항에 대한 반응은 달랐다. 대항마을에서 서북쪽으로 직선거리 2㎞가량 떨어진 천성마을은 가덕도 신공항 유치를 찬성하는 분위기였다. 천성마을 주민 박아무개(63)씨는 “가덕도와 경남 밀양의 객관적인 조건을 따져도, 100년 앞을 내다봐도, 신공항은 가덕도에 들어서야 한다. 밀양에 신공항을 세운다는 것은 정치 논리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천성·성북마을 등 대항마을 위쪽에 있는 마을은 신공항 배후지역으로 투자가치가 있어 부동산 투자 문의가 많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가덕도 부동산 중개업계는 투자 문의가 거의 없다고 전했다. 천성마을 공인중개사 오아무개씨는 “이명박 정부가 2011년 동남권 신공항 입지선정 용역 결과를 백지화했을 때도 서울 등지에서 오는 가덕도 투자 문의 전화를 하루 2~3통씩 받았다. 하지만 올해 들어 투자 문의를 받은 적이 없다. 투자자들의 문의가 없다는 것은 이미 정부가 밀양으로 신공항을 선정한 것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라고 말했다.

이날 가덕도는 신공항 건설로 삶의 터전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우려와 개발에 대한 기대심리가 뒤섞여 어지러운 상태였다.

부산/김영동 기자 ydkim@hani.co.kr


밀양 하남읍 수산리 “보상 받아봐야 이 나이에 어디 가서 뭐 해 먹고살아”

딸기농사가 주업
밀양시청서 20㎞나 떨어져
대부분 나이 많은 주민들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감

“있는 부모도 내보내는 세상
어떤 자식이 와가 살라 카겠어
도시사람들은 신공항 바라지만
여기 주민들은 다 싫어해”

영남권 신공항 후보지 가운데 하나인 경남 밀양 하남읍. 밀양시 제공
“보상받아봐야 이 나이에 어디 가서 뭐 해 먹고살아. 있는 부모도 내보내는 세상에 요즘 어떤 자식이 집에 와가 살라고 카겠어. 그냥 딸기 농사지으면서 내 혼자 입에 풀칠하고 손주 용돈 주면서 사는 게 행복한 건데, 도대체 어딜 가라는 거여….”

영남권 신공항 입지 발표를 앞둔 주말인 지난 19일, 경남 밀양 하남읍 수산리에서 만난 주민 이아무개(68·여)씨는 이렇게 말했다. 동네는 겉보기에는 조용하고 평화로웠지만 나이가 많은 주민 사이에서는 신공항이 들어서면 다른 곳으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퍼져 있었다.

하남읍은 밀양의 남쪽 끝에 있는 지역이다. 넓은 평지를 산과 낙동강이 둘러싸고 있다. 하남읍의 북서쪽에는 대덕산(622m)과 종남산(662m), 팔봉산(390m)이 자리하고 있다. 북동쪽에는 비교적 낮은 앞산(200m)과 인산(213m)이 있다. 남쪽과 동쪽에는 바로 낙동강이 흘러 물을 대기가 좋다. 자연재해도 거의 없어 농사를 짓기 좋은 땅이다. 하남읍 한중간에는 백산(107m)이 서 있다. 하남읍에는 8000여명이 사는데 대부분 딸기 농사를 짓는다. 밀양시청(밀양 교동)과는 20㎞ 떨어져 있다.

하남읍 수산리 대평마을회관에서 만난 주민 박아무개(68·여)씨는 “공항을 지을 거면 조용히 있다가 딱 들어서야지, 온 동네 시끄럽게 매번 이게 뭐고”라면서 불만을 쏟아냈다. 그는 “보상받아봐야 자식들이 돈 좀 달라고 할 끼고, 몇 푼 안 되는 남은 돈으로 이 나이에 어디 가서 뭐 하고 살라는 건지…”라고 말했다.

대구시·울산시·경남도·경북도는 하남읍에 7.2㎢ 규모의 신공항 건설안을 세워두고 있다. 하남읍 전체 면적이 37.09㎢인 것을 고려하면, 약 20%에 이르는 면적이다. 하남읍은 논과 밭, 임야만 74%를 차지한다. 현재 밀양 하남읍의 땅값은 일반적으로 3.3㎡(1평)에 20만원 정도다. 몇 년 전에 견줘 4만~5만원 올랐다.

19일 경남 밀양 하남읍 도로를 따라 집과 딸기를 짓는 비닐하우스 등이 들어서 있다. 밀양/김일우 기자
슈퍼를 운영하는 대평마을 이장 김창복(63)씨는 “밀양 시내나 대구, 울산처럼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신공항이 여기 들어서기를 바라지만 여기 주민들은 다 싫어한다. 저번에 (신공항) 백지화된다고 했을 때 ‘이제 끝났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또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아무리 강 없는 데 다리 놔준다는 게 정치인이라고는 하지만 선거 때만 되면 왜 이라는지 모르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신공항 입지로 밀양을 가장 강하게 밀고 있는 대구에서 밀양 하남읍에 가려면 승용차로 한 시간가량 걸린다. 동대구나들목(대구 동구 율하동)에서 남밀양나들목(밀양 상남면 기산리)까지 59㎞, 남밀양나들목을 나와 25번 국도를 타고 수산교차로(밀양 하남읍 양동리)까지 남쪽으로 13㎞를 더 달려야 한다. 수산교차로에서 좌회전을 해서 명례로를 따라 들어가면 하남읍이 나온다.

이날 밀양에서 대구로 돌아오니 곳곳에는 이런 펼침막이 내걸려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님! 신공항 건설 공약 단디(제대로) 하이소!’

밀양/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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