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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6.27 16:25 수정 : 2016.06.28 10:13

르포 | 브렉시트 이후 런던 표정

집값 떨어진다? 아니다?” 깜깜
벌써 “감원” “물가고” 불안 확산
“돌아가라” 이주민 혐오 문구들도

주말 도심 겉으론 평온했지만
브렉시트 반대 집회 앞 ‘폭풍전야’

26일 영국 런던 의회광장에 조 콕스 의원을 추모하는 꽃다발이 놓여 있다. 브렉시트 결정 뒤 맞은 주말 런던에는 관광객들이 넘쳐나는 등 겉으로는 예전과 같은 평온한 모습이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태풍이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간 뒤 첫 주말인 26일(현지시각) 런던 거리는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했다. 트래펄가 광장과 국회 의사당이 있는 웨스트민스터에는 여행 성수기를 맞아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넘쳐났다. 찬성과 반대 진영이 표심을 잡기 위해 캠페인을 벌였던 런던 유스턴역도, 찬성과 반대 진영이 각각 ‘선상 시위’를 벌였던 템스강도 이제는 조용한 일상을 되찾았다. ‘보트 리메인 인’(vote remain in), ‘보트 리브’(vote leave)라고 쓰인 양쪽 스티커나 팻말도 주택과 상점에서 대부분 사라졌다. 브렉시트 반대 캠페인을 벌이다 총격을 받아 피살된 조 콕스 노동당 하원의원을 추모하는 꽃다발이 놓인 런던 의회광장에도 관광객들이 몰려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투표 결과가 콕스 의원의 바람과 정반대로 나타나 왠지 더 쓸쓸해 보였다.

평온한 런던의 풍경은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하다. 영국인들은 자신의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말을 걸어보면, 다들 브렉시트 이후 이제 자신들의 삶이 어떻게 바뀔지 불안해하고 있었다. 자신을 회사원이라고 소개한 존(31)은 “파운드 가치가 떨어지는 게 문제다”, “영국이 인종차별 국가라는 이미지가 씌워질까 걱정이다”, “유럽연합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 등등 정리되지 않은 말들을 이리저리 쏟아냈다.

파운드화의 급락은 수입 상품의 가격을 높여 물가를 올린다. 여기에 실업까지 더해지면 가계소득은 이중의 타격을 입고 경기침체가 장기화될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들은 브렉시트 직후 영국 경제의 올해와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영국 재계 지도자 단체인 경영인협회(IOD)가 국민투표 직후인 24~26일 1000명의 재계 인사들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25%가 고용을 동결하겠다고 답했고, 5%는 감원을 예정하고 있다고 답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27일 보도했다.

이와 함께 영국에서 일하던 유럽 출신 노동자들이 브렉시트 이후 대거 빠져나가면 불편을 겪거나 지금까지 누렸던 값싼 서비스 비용이 대폭 오르는 건 아닌가 하는 실제적인 걱정도 있었다. 중동 출신인 30대 여성 로션마마는 “앞으로 베이비시터를 하던 사람들이 많이 없어지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영국에서는 베이비시터를 비롯해 세차장, 배관공 같은 직종에 폴란드 등 저임금의 동유럽 출신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영국에 사는 교민들도 비슷한 걱정을 하고 있다. 한 교민은 “집을 팔아야 할지 고민”이라며 “(브렉시트 탓에) 집값이 떨어진다고 하고, 또 아니라고도 한다.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난감하다”고 말했다. 영국에 오래 살면서도 영주권만 지닌 채 시민권을 취득하지 않았던 또다른 교민은 브렉시트 결정 이후, 시민권을 취득하려 한다. 브렉시트 이후 비유럽 출신들을 쫓아내는 일이 현실화될 때, 그 대상에 영주권자를 포함시킬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영국 온 지 20년이 된 이 교민은 “영주권만 있어도 사는 데 문제가 없었는데, 시민권을 취득하려면 시험도 봐야 하고 복잡한 절차도 밟아야 하지만 준비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과정에서 드러난 갈등이 아직 아물지 않아 투표 이후 이주민을 겨냥한 인종차별적 혐오범죄도 잇따르고 있다. 26일 런던 서부 해머스미스에 있는 폴란드사회문화협회 건물 입구 외벽과 창문에 “집에 돌아가라”고 쓰인 낙서가 발견됐고, 케임브리지셔에서는 지난 24일 “폴란드 해충은 필요 없다”고 영어와 폴란드어로 적힌 카드가 대량으로 뿌려졌다. 영국에 있는 폴란드인은 약 85만명으로 영국의 외국인 인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또 26일 글로스터에 있는 한 대형 슈퍼마켓을 한 남성이 급습해 “여긴 영국이다. 외국인은 48시간 이내로 꺼져라. 여기서 누가 외국인이냐”고 소리치며 난동을 부린 일도 있었다.

28일 런던 시내 중심가인 트래펄가 광장에 브렉시트 반대(런던 스테이) 대규모 집회가 예정돼 있다. 브렉시트 반대표를 많이 던졌던 런던에서는 시민 17만여명이 수도 런던도 영국으로부터 독립해 유럽연합(EU)에 가입하자는 청원운동에 서명했다. 런던 경찰은 혹 브렉시트 찬반 투표자들이 충돌을 일으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그러나 집회 주최 쪽은 ‘브렉시트 반대’ 주장뿐 아니라, 투표 과정에서 일어났던 상처를 극복하고 앞으로의 대책을 함께 논의하는 출발점으로 삼자고 제안하고 있다.

런던에 드리운 짙은 ‘브렉시트’ 안개가 언제 걷힐지,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다.

런던/글·사진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디스팩트 시즌3#9_남들은 알려주지 않는 브렉시트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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