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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6.07 20:09 수정 : 2016.06.08 08:35

성수역 사고, 구의역 판박이
공기업 직원 꿈 은성PSD 심씨
안전문 수리 중 열차에 치여 참변
“안전조처없이 자의적으로 작업”
회사쪽 심씨한테 책임 떠넘겨
변사로 종결, 회사에 과태료만

서울 지하철 2호선 성수역에서 안전문을 수리하던 심전우씨가 사망한 것과 관련해 직후 서울메트로가 작성한 ‘사상사고 상황보고’(오른쪽) 문건에는 ‘10-3 센서가 작동이 안 된다고 인수인계하여 금일 PSD(은성피에스디)직원 심씨 등이 현장에 출동했다’는 내용이 ‘특이사항’으로 적혀 있다. 심씨가 이날 ‘육안 점검’만 한 게 아니라, 기존에 보고됐던 장애 사항도 처리했음을 짐작하게 하는 내용이다. 이날 오전 ‘월간·일상점검’에 나섰던 은성피에스디 강북지사 직원들이 “성수역 외선(지선 4번선 10-3) 구동부 커넥터 센서 분리” 등 문제점을 기술지사에 통보한 문건(왼쪽)이 이를 뒷받침한다. 서울메트로 등 자료 제공
심전우. 1976년 4월생, 남자. 결혼은 하지 않았다. 4형제 중 셋째인 심씨는 어머니를 모시고 막내와 셋이 살았다. 서울의 한 상고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해 전기기술자로 잔뼈가 굵은 그는 2011년 12월 서울메트로의 용역업체 은성피에스디(PSD) 기술지사에 들어갔다. ‘원년 멤버’였다. 기본급 90만원에 수당을 합쳐 다달이 241만6천원의 월급을 받았다. “은성이 서울메트로의 자회사가 되면 공기업의 정규직 직원이 될 수 있다.” 두살 터울인 동생이 전한 심씨의 꿈이다.

2013년 1월19일 토요일 오후 2시35분, 서울 지하철 2호선 성수역 10-3 승강장. 심씨의 37년 삶은 그곳에서 갑작스레 마침표를 찍었다. 군자차량기지에서 출발해 성수역으로 들어오던 10량짜리 2064호 회송 열차가 그를 치고 지나갔다. 사고 당시 그는 선로 안쪽에서 안전문을 수리하던 중이었다. 선로 밖에서 안전문을 붙들고 있던 동료가 손쓸 틈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심씨가 육안으로 하는 일일점검 도중에 안전조처도 없이 자의적으로 선로 쪽에서 안전문을 점검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심씨 가족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판결문에 드러난 서울메트로와 은성피에스디 쪽 주장은 이렇게 요약된다. 심씨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다가 실수로 사고를 당했다는 것이다. 사건을 수사한 서울 성동경찰서와 서울동부지방검찰청은 두 회사에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묻지 않았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 동부지청이 은성피에스디에 대해 과태료 30만원을 물린 게 업체에 물은 사고 책임의 전부였다. 법원의 손해배상 소송도 심씨의 ‘개인 과실’에 무게가 실렸다. 3년 전 행정·사법기관들은 왜 전기기술자 심씨가 위험을 무릅쓰고 시키지도 않은 일을 했는지, 정말 자의로 한 일인지 묻지 않았다. 심씨의 죽음은 ‘변사’로 종결됐다.

사고가 나던 날, 심씨는 주간 근무조(오전 9시~오후 6시)였다. 동료 직원 ㄱ씨와 함께 안전문에 이상이 없는지 눈으로 점검하고, 처리가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면 기술지사에 통보하는 게 그의 임무였다. 그는 그날 지하철 2호선 을지로4가역과 뚝섬역 등을 거쳐 사고가 일어난 성수역에 도착했다. 오후 1시40분, 성수역 역무원에게 “안전문 점검을 나왔다”고 알렸다. 성수역 10-3 승강장의 안전문을 따고 들어가 고장 수리 작업을 한다는 사실까지 알리진 않았다.

“심 팀장은 강북지사에서 몇 안 되는 귀한 기술자였어요.” 최근 <한겨레>가 만난 은성피에스디 직원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얘기했다. 기술지사로 입사한 심씨는 이듬해 강북지사 기술팀장으로 발령이 났다. 초창기 은성피에스디 전체 직원(125명) 중 김씨 같은 ‘기술자’는 35명밖에 되지 않았다. 나머지는 서울메트로 출신으로 채워졌다. 일일·야간·월간 점검에서 발견된 문제점들을 기술지사 쪽에 문서로 통보했지만,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탓에 처리가 지연되기 일쑤였다. 자연스레 기술자인 심씨가 장애 처리까지 담당하는 일이 많았다는 게 동료들의 얘기다.

실제로 사고 당일 심씨가 거쳐 온 역들은 이미 기술지사 쪽에 문제점이 통보된 곳들이었다. 을지로4가역의 경우, 사고 나흘 전인 16일에 ‘장애물센서 불량’ 사실이 통보됐고, 뚝섬역의 경우 14일 점검에서 ‘종합제어반 장애등 현시’ 문제가 보고됐다. 성수역은 같은 달 10일과 19일 두 차례 10-4와 10-3 안전문 문제가 발견됐다. 심씨의 동료 ㄴ씨는 “(회사 주장처럼) 심씨가 간단한 육안 점검만을 하기 위해 이미 문제가 보고된 역에 갔을 리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 쪽 지시에 따라 ‘고장 처리’를 하다가 심씨가 변을 당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사고 직후 서울메트로 관계자가 작성한 ‘사상사고 상황보고’ 문건은 이런 정황을 뒷받침한다. 문건은 “10-3 PSD(안전문) 센서가 작동이 안 된다고 인수인계하여 현장에 출동하여 사고가 났다”란 내용이 특이사항으로 적혀 있다. 심씨가 단순 일일점검이 아니라, 다른 직원에게 인수인계받은 장애(고장) 처리를 하러 성수역에 왔다는 증거라는 게 동료들의 얘기다. 또 다른 심씨의 동료 ㄷ씨는 “고작 육안 점검을 하는데 두 사람이 나갔다고요? (주말이라 인력이 부족한) 사고 당일 심씨가 이례적으로 2인1조로 현장에 출동한 건 애초 수리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씨와 함께 현장에 출동했던 동료는 지금도 은성피에스디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는 사고 이후 경찰 조사를 받았지만, ‘그날’ 상황을 묻는 <한겨레> 기자들의 전화와 문자에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심씨의 동생(38)은 “구의역 사고를 보면 회사 쪽이 책임을 피하는 상황이 형 사고 때와 어쩌면 이렇게 비슷할까 싶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형의 죽음은 지금까지 형의 책임으로 남았다는 것이겠죠”라고 말했다.

방준호 이재욱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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