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한국사회]
며칠 전 전국의 조선소를 돌아보면서 경남 거제의 삼성중공업에서 하청으로 일하는 배관사를 만났다. 지난 5월 함께 일하는 한 청년이 철판을 갈던 그라인더(갈개)를 빼내다 자신의 허벅지를 갈아 동맥이 끊어졌단다. 피를 쏟아내는 사람을 하청업체 차량으로 호송했고, 이틀 뒤 숨졌다고 했다. 삼성중공업 구급차(3119)를 불렀다면 응급처치를 받아 살릴 수 있지 않았겠냐고, 사고를 감추려다 목숨을 잃었다고 동료들은 안타까워했단다. 이 공장에서 목숨을 잃은 노동자가 올해에만 다섯명, 모두 하청직원이었다. 5월28일 구의역 9-4번 승강장에서 고장난 안전문을 수리하던 열아홉 청년도, 2013년 1월 성수역, 2015년 8월 강남역에서 목숨을 잃은 청년들도 하청이었다. 6월1일 남양주 지하철 공사현장이 폭발 붕괴해 포스코건설 하청노동자 4명이 숨졌다. 25년 전 민주노조의 함성이 울려퍼질 때 부르던 노동가요 한 대목, “옥포의 조선소에서 서울 철로 위로” 2016년 하청의 비명이 메아리치고 있다. 서울메트로에 고용형태별 인력현황 자료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올해 4월말 기준으로 하청노동자는 4253명. 안전문 수리만이 아니었다. 전동차를 정비하고 구내운전을 하는 업무도 하청업체에 떠맡기고 있었다. 대전과 광주는 지하철 역무원까지 하청화했다. 코레일은 철로를 유지·보수하는 업무를 코레일테크라는 자회사에 팔아넘겼다. 지난해 8월 기준 코레일테크 정규직은 44명, 하청은 911명으로 비정규직 비율이 95%를 넘었다. 최근 5년간 정규직이 된 하청직원은 한 명도 없었다. 2011년 12월 인천공항철도 계양역에서 철로를 수리하다 열차에 치여 숨진 5명도 모두 코레일테크의 하청노동자였다. 1997년 외환위기를 전후해 조선소에서 시작된 ‘일터의 하청화’라는 역병이 전국에서 창궐했다. 생명과 노동이라는 자리를 효율과 비용절감이 차지했다. 역병은 공공의 영역마저 집어삼켰고 꽃다운 청춘들이 사라져갔다. 경찰이 “구의역 사고의 1차 책임이 승강장을 비추던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지켜보지 않은 역무원에게 있다고 보고 업무상 과실치사죄 적용 여부를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50개가 넘는 폐회로 중 하나를 살펴보지 못한 역무원이 참사의 범인이란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 업무를 하청업체로 팔아넘긴 서울시, 공기업 정원을 한명도 늘릴 수 없다며 직영 전환을 가로막은 정부의 죄는 묻지 않는다. 일터의 하청화는 열아홉 청년뿐만 아니라 사고 열차 승무원과 사고역 역무원까지 비극으로 몰아넣는다. 어쩌면 우리도 구의역 참사의 공범은 아닐까? 성수역과 강남역 사고를 외면하지 않았다면,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가 일하다 바다에 빠져 죽고 삼성전자 하청업체 파견노동자가 메탄올에 눈이 멀었을 때 침묵하지 않았다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지난 5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16년 더 나은 삶의 질 지수’에서 한국은 조사대상 38개국 중 28위였다. 주 50시간 이상 일한 노동자 비율, 일과 삶의 균형, 전반적인 건강 상태, 공동체에 대한 결속력은 모두 꼴찌였다. 침묵이 가져온 한국 사회의 오늘이다.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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