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수리 작업 중 사고로 숨진 김아무개군의 친구 박영민(가운데)군이 31일 오후 사고 현장인 구의역 9-4 승강장 앞에서 시민단체 회원들과 함께 김군을 추모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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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서울메트로 ‘외주화의 비극’
효율화 명목 안전업무까지 외주
최저가 낙찰 업체는 인력 쥐어짜기
안전보다 비용절감이 최우선
메트로 출신 하청업체 ‘낙하산’도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안전문(스크린도어)을 나홀로 수리하다 사망한 은성피에스디(PSD) 노동자 김아무개(19)군 사건은 ‘효율화’ ‘비용절감’ 등을 내세워 정비·안전점검 같은 핵심 업무까지 외주화해온 우리 사회 ‘묻지마 외주화’ 광풍의 모순을 응축해서 보여주고 있다. 최저가 계약 강요하기, 인건비 절감 위해 인력 쥐어짜기, 헐값에 청년인력 부리기, 원청의 퇴직자 내려꽂기 등 서울메트로와 김군이 소속된 용역업체 사이에서 나타난 구조적 원인을 짚어봤다.
① 묻지마 외주화
서울메트로는 2008년 흑자경영을 실현하겠다며 ‘창의혁신추진본부’를 발족해 설비 유지·보수 외주화와 최저가 낙찰제를 도입했다. 전동차 경정비는 프로종합관리에, 스크린도어 유지보수는 은성피에스디와 유진메트로컴에 맡겼다. 유실물센터, 차량기지 구내운전 업무, 청소·방역 업무 등도 외주화한 상태다.
당시 외주화는 서울메트로의 정규직을 감축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이 과정에서 서울메트로 조기 퇴직자가 대거 은성피에스디, 프로종합관리 등으로 넘어갔다. 유진메트로컴은 애초 광고회사였다. 서울메트로에서 스크린도어 광고권을 주면서 유지보수 업무까지 맡겼다. 유진메트로컴은 사업권을 따낸 뒤 자신들이 전문성이 없는 유지보수 업무는 재용역을 줬다. 허술한 외주화 과정의 단면을 보여준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하철 비정규지부는 이번 사고 뒤 성명서에서 “서울메트로는 비용절감을 이유로 안전을 담보하는 지하철 핵심 업무를 외주화했고, 외주화 9년 동안 지하철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② 인력 쥐어짜기
스크린도어 고장사고는 빈번하지만 보수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서울메트로(1~4호선) 스크린도어 고장은 2015년 1만2134건 발생했다. 이 작업의 80%를 맡고 있는 은성피에스디의 경우 직원은 143명으로 돼 있지만 실질 가동 인력은 훨씬 적다. 사고 당시 구의역을 포함해 강북 49개 역을 관리한 주간 근무조는 6명에 불과했다. 황준식 은성피에스디 노조위원장은 “인원이 부족하다 보니 선로 안쪽에서 해야 하는 대부분의 작업을 혼자서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러한 ‘인력난’이 ‘2인1조’ 수칙을 사문화시키고 위험천만한 ‘1인’ 작업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서울메트로는 이번 사고 뒤 ‘은성피에스디의 자회사 전환’을 대안으로 내세웠지만, 서울도시철도(지하철 5~8호선)의 자회사 형태로 전동차 정비 업무를 맡고 있는 서울도시철도엔지니어링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노총 서울지하철 비정규지부 한태희 본부장(도시철도엔지니어링)은 “운영 비용은 많이 드는데 (원청에서) 돈은 올려주지 않으니 인력이 180명 필요한데도 170명만 고용하고 나머지 10명치 임금은 회사 경비로 쓴다”고 말했다. 서울도시철도엔지니어링 노조가 밝힌 2015년 전동차 정비 업무 위탁비용 자료를 보면, 원청이 설계한 노동자 1인당 단가는 3186만원이지만 실제 자회사가 노동자들에게 지급한 금액은 2612만원이었다. 원청이 준 운영비가 부족해서 자회사가 고용인원과 인건비를 깎아서 재원을 마련한 것이다. 게다가 용역비용은 갈수록 줄었다. 2014년 76억원에서 2015년 73억원으로 깎였고, 그 결과 노동자에게 지급한 평균 연봉도 2957만원에서 2612만원으로 감소했다.
③ ‘헐값’에 청년 부리기
이런 인건비 쥐어짜기 탓에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저임금이라도 감수해야 하는 청년인력들이 수혈되고 있다. 고등학교 재학 중인 학생을 ‘현장실습생’ 명분으로 헐값에 채용하기도 한다. 은성피에스디 전체 직원 143명 가운데 10대가 22명(15%), 20대가 17명(12%)였다. 사고 당사자인 김군도 고교 재학 때 현장실습생으로 일하고 정식 입사한 지 7개월 만에 사고를 당했다. 김군의 월급은 144만원이었다. 월급이 적지만 험한 일은 청년들의 몫이었다. 원청(서울메트로)에서 퇴직하고 건너온 이른바 ‘전적자’들은 나이가 많아 현장에 나가지 않고 주로 사무실에서 일한다는 게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5월 현재 은성피에스디에서 일하는 전적자는 36명이며, 60대가 26명, 50대가 10명이다. 은성피에스디 전 직원은 “서울메트로에서 건너온 직원들은 대부분 고령에다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아 현장에 잘 나가지 않았다. 젊은 직원들이나 기술을 가지고 있는 직원들이 주로 안전문 고장 처리를 도맡았다”고 말했다.
④ 원청의 ‘갑질’…낙하산·임금차별
원청 출신 퇴직자가 대거 이동한 용역·하청업체에서 일하는 젊은 노동자들은 이런 과중한 업무 외에 임금차별의 고통도 겪는다. 서울메트로는 2008년 외주화를 할 때, 입찰 조건 중 하나로 전체 고용 인력 중 30%가량을 전적자로 채용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또 전적자 임금은 서울메트로 퇴직 때의 60~80%를 보장한다는 합의서를 용역업체와 체결했다. 반면 용역업체가 자체 채용한 인력은 중소기업 평균 노임단가를 적용한다. 용역업체의 경영진 역시 원청 출신인 경우가 많다. 은성피에스디 대표 역시 서울메트로 출신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유성권 서울지하철 비정규지부장은 “자체 채용한 인력의 월급은 140만원 안팎밖에 안 되는데 전적 인력은 그보다 2~3배를 받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영수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위원은 “자체 채용 인력에게 돌아가야 할 인건비가 전적 인력의 추가 임금 보장으로 사용되면서 일반 직원들의 임금은 더 줄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은주 박태우 이재욱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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