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상임위원회 차원의 청문회를 활성화하는 내용이 담긴 국회법 개정안이 지난 1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정부·여당이 ‘대통령 거부권’까지 언급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365일 상시 청문회가 열려 행정부가 마비될 것’이라는 게 주요 논리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과장에 가깝다.
■ 행정부를 마비시키는 법이다?
청문회 활성화법(개정 국회법)65조1항 내용
현행 국회법은 청문회를 △중요 안건 심사를 위한 일반 청문회 △입법 청문회 △국정조사 청문회로 구분하고 있다.
문제는 일반 청문회의 요건인 ‘중요 안건 심사를 위한’이라는 문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다. 이제까지 국회는 이 문구를 폭넓게 해석해 다양한 현안 관련 청문회를 열어왔다. 18대 국회에서 열린 일반 청문회는 △상지대 등 분쟁사학 청문회(교육과학기술위) △저축은행 부실 관련 청문회(정무위) △한진중공업 청문회 2건(환경노동위) △유사휘발유 불법 유통 근절 청문회(지식경제위) △3대(카드, 백화점 판매, 은행) 수수료 인하에 관한 청문회(지식경제위) 등이었다. 여야가 합의하기만 하면 어떤 현안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청문회를 열었다는 뜻이다.
이번 개정안은 일반 청문회 목적에 ‘현안 조사’를 추가함으로써 기존의 문구 해석을 명문화한 것이다. 일반 청문회를 좀더 활성화해보자는 취지다. 2014년 11월 국회개혁자문위원회의 제안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구기성 국회 운영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국정조사 요구가 많은데 특정 상임위 소관의 일이라면 일반 청문회를 실시하고 활성화하자는 취지다. 미국식 히어링(청문회) 제도가 일어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에선 상임위가 본격적인 입법 활동에 앞서 정보를 모으고 실태를 분석하기 위해 다양한 관계자들을 증인으로 불러 청문회를 실시하는데, 미 의회 누리집의 일정표를 보면 날마다 많게는 10여 차례의 청문회가 열린다.
이를 두고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현안 조사’를 명분으로 야당이 사사건건 청문회를 열자면서 국정을 방해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정의화 국회의장은 20일 기자들과 만나 “장차관이 청문회에 나올 필요 없다. 국장이 실무 책임자로 나와 내밀한 보고를 하고, (위원들은 정부 쪽에) 국민의 뜻을 잘 전달해서 시행되도록 하(는 자리가 되)면 된다. 아주 간편하게 하는 청문회”라고 반박했다.
이번에 통과된 국회법에 따라 일반 청문회가 확장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청문회 개최 여부를 결정짓는 결정적 요인은 여야간 합의다. 기존 국회법으로도 가능했던 일반 청문회가 활성화되지 못했던 진짜 이유는 과반 의석을 가진 여당의 소극적 태도 때문이었다. 일반 청문회 요건에 ‘현안 조사’가 없어서가 아니다. 이춘석 의원(더불어민주당)은 “국회법 개정으로 청문회 대상이 명시적으로 확대된 것도 있지만, 더 중요한 요소는 여소야대”라며 “그 점 때문에 청와대에서 기싸움을 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 새누리당도 찬성했었다
이번 국회법 개정안의 시작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5월 19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에 선출된 정의화 의장은 7월 국회개혁자문위원회를 의장 직속으로 꾸렸다. 이 위원회는 국회운영 개선 방안을 연구해 정 의장에게 보고했고 정 의장은 이를 토대로 그해 11월20일 국회법 개정 의견을 국회 운영위원회에 제시했다. 운영위는 ‘국회 운영제도개선 소위원회’를 꾸려 정 의장 의견을 토대로 국회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이 개정안이 이번에 통과된 안이다. ‘상임위원회 청문회 제도 활성화’, ‘8월 임시회 명문화’, ‘폐회 중인 3월·5월 셋째 주 상임위원회 개최’ 등 5개 내용이 핵심이다.
이 개정안은 지난해 7월 국회 운영위와 법제사법위를 차례로 통과했다. 당시 여야 어느 쪽의 반대도 없었다. 지난해 7월9일 운영위 회의록을 보면 위원장 직무대리였던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이 “국회법 개정안은 국회 운영제도개선 소위에서 제안한 대로 하려고 합니다. 이의가 없으십니까?”라고 묻자 누군가 “없습니다”라고 답했고, 그대로 통과됐다. 같은 달 15일 열린 법사위 전체회의에서도 “중요한 건이나 소관 현안 조사를 위해 청문회를 개최하는 것은 전향적으로 잘했다고 본다”는 이상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지지발언만 있었다. 회의에 참가한 새누리당 의원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국회법 파동’으로 청와대와 갈등을 빚던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7월8일 사퇴하고 14일 원유철 원내대표가 새로 들어서면서 서서히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당시 새정치연합 원내수석부대표였던 이춘석 의원은 20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유 원내대표가 사퇴한 직후 조해진 원내수석부대표와 ‘우리가 한 것이니 이건 마무리 짓자’고 해서 법사위 통과까지 시켜놨다. 그런데 원내지도부가 원유철·조원진으로 바뀌면서 개정안에 반대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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