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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5.24 14:39 수정 : 2016.05.25 10:49

[더(The) 친절한 기자들]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시작된 살인피해 여성 추모 물결과 더불어 ‘여성혐오’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습니다. 김치녀 등 ‘여혐’ 꼬리표에 넌덜머리가 난 여성들은 포스트잇을 붙이고 자신의 공포담을 털어놓으며 여성이라서 겪는 편견과 폭력에 맞서 일어서고 있습니다. 반면 ‘여혐’의 진원지로 일컬어지는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는 “남자라서 죽은 천안함 용사들을 잊지 말자” “남혐 반대” 등의 대응 논리를 내놨습니다.

지켜보는 이들 중에는 혼란스럽다는 반응이 적지 않습니다. 수많은 여성들이 모르는 남성에 의해 살해됐습니다. 성차별 문제도 한국사회의 오랜 화두입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강남역 살인사건이 폭발력을 지닌 이유가 대체 뭐냐고 묻습니다. <한겨레>는 언니들의 분노의 발화점을 살펴보기 위해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이 처한 상황과 지위를 통계로 짚어봤습니다. 자료는 2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2015 한국의 성인지 통계’를 비롯해 유엔과 세계경제포럼이 낸 통계를 인용했습니다.

1. 흉악 강력범죄 피해자 중 84% 이상은 여성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강력범죄(흉악) 피해자 현황’

대검찰청이 해마다 내는 <범죄분석>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2013년 범죄 피해자 항목을 보면, 살인, 강도, 강간, 방화, 폭력 등 강력범죄 가운데 폭력을 뺀 흉악한 강력범죄 피해자 3만4126명 가운데 2만8920명(84.7%)이 여성이었습니다. 남성 피해자는 전체의 3552명(10.4%)으로 나타났습니다. 나머지 피해자 4.9%의 성별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반면 강력범죄 가운데 흉악범죄로 분류되지 않은 폭력사건의 경우엔 남성 피해자가 많았습니다. 전체 피해자 23만3655명 중 여성이 29%(6만7935명), 남성은 57%(13만3222명)를 기록했습니다. 일부에서는 강력범죄에 노출되는 여성의 비율이 전체의 80% 이상이라는 통계에서 여성가족부 등이 여성의 피해를 과장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경찰청에서 발표한 경찰범죄통계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옵니다. 살인, 강도, 강간, 방화를 포함한 2013년 강력범죄 피해자 2만6962명 가운데 남성은 13.2%(3568명), 여성은 85.8%(2만3150명)로 집계됐습니다. 별도의 폭력범죄 항목에서는 피해자 29만4188명 중 남성 피해자가 60%(17만 8669명), 여성이 28.9%(8만 5205명)입니다. 일반적인 폭력사건의 경우 술자리나 거리에서 남성끼리 드잡이를 하다 벌어진 단순 사건이 많은 것으로 보입니다.

2. 강력범죄를 흉악범죄와 폭력범죄로 나눈 게 문제인가?

위 통계에 대한 의심의 저변에는 강력범죄를 흉악범죄와 폭력범죄로 나눠 여성의 피해치를 부풀렸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자료를 펴낸 주재선 성별영향평가 통계센터장에게 물어봤습니다.

한겨레: 강력범죄를 흉악범죄와 폭력범죄로 나눈 이유는 무엇입니까? 특별히 의도한 바가 있는 게 아닙니까?

주재선 센터장: 일반적으로 강력범죄를 분석할 때는 흉악범죄와 폭력을 나눠서 봅니다. 살인, 강도, 강간, 방화가 포함된 흉악범죄는 일반 폭행사건에 비해 체감되는 두려움과 사회적 파급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여성가족부가 매해 산출하는 국가상품성지수도 강력범죄 가운데 흉악범죄만 떼어서 봅니다.

물론 통상적인 폭행은 여성보다 남성이 많이 노출된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흉악범죄를 떼어서 분석하는 것은 폭력범죄는 남성에 의한 남성의 피해가 큰 반면, 흉악범죄는 남성에 의한 여성의 피해가 크기 때문입니다. 둘은 전혀 성격이 다릅니다. 이 통계가 여성 피해 비율을 현실보다 높게 보이게 한다는 지적을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특정한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위와 같은 분류를 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국가승인통계인 ‘국민생활안전실태조사’를 기반으로 작성한 범죄피해 통계시스템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운영하는 범죄통계포털 ‘범죄와 형사사법 통계정보’(CCJS)의 범죄피해 통계시스템은 범죄를 흉악범죄와 일반적인 폭력범죄로 분류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범죄와 폭행에 대한 2013년 범죄유형별 두려움을 살펴봤습니다. “누군가 나를 성추행하거나 성폭행할까봐 두렵다”는 제시문에 전체 답변자 1만3317명 중 남성의 47%(3004명)는 ‘전혀 두렵지 않다’, 38%(2411명)는 ‘두렵지 않은 편’이라고 답했습니다. ‘두려운 편’(205명)이라거나 ‘매우 두렵다’(42명)고 대답한 남성은 4%에 불과했습니다.

반면 여성은 19%(1326명)만 ‘전혀 두렵지 않다’, 35%(2408명)는 ‘두렵지 않은 편’이라고 했습니다. ‘매우 두렵다’고 답한 여성은 4%(277명), ‘두려운 편’이라고 답한 여성은 18%(1257명)로 나타났습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여성가족부뿐 아니라 경찰청과 검찰청도 통계를 낼 때 폭력과 살인, 강도, 강간(성폭력), 방화를 구분해 집계하고 있습니다.

3. 흉악 강력범죄, 여성의 성폭력 피해가 전부라고?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2014년 흉악 강력범죄 피해자 3만4126명 가운데 성폭력 범죄 피해자가 87.5%(2만9863명)를 차지합니다. 이 가운데 여성이 2만7129명(90%), 남성 피해자가 1375명(4.6%)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부에서 흉악 강력범죄로 분류된 통계는 사실상 성폭력 피해에 국한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 통계의 이면에는 또다른 위험도 포착됩니다. 대검찰청의 2015 범죄분석의 ‘피해결과’를 보면 흉악 강력범죄로 인해 목숨을 잃은 피해자 중 여성의 비율이 높다는 점입니다. 2014년 살인사건으로 분류돼 숨진 357명 가운데 여성(187명) 사망자가 남성(170명)보다 많았습니다. 강도사건으로 분류돼 희생된 여성은 12명, 남성은 8명이며 방화사건으로 숨진 여성은 8명, 남성은 6명이었습니다. 성폭력사건으로 2014년 숨진 여성은 6명이고 남성 사망자는 없었습니다. 성폭력범죄뿐 아니라 다른 흉악 강력범죄의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여성이었습니다.

흉악 강력범죄에 노출되는 남성 피해자는 줄어드는 반면 여성은 되레 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1995년 살인, 강도, 강간, 방화 등 흉악 강력범죄에 노출된 여성 피해자는 전체 7947명 중 29.9%인 2377명이었으나 남성은 5570명에 달했습니다. 5년 뒤인 2000년엔 전체 피해자가 8765명으로 늘지만 남성 피해자는 2520명으로 뚝 떨어지고 여성 피해자는 6245명으로 뜁니다. 이후 여성 피해자는 꾸준히 늘어 2014년 3만4126명을 기록했습니다. 남성 피해자는 2009년 5649명까지 증가했다가 이후 꾸준히 줄어 2014년엔 3552명이었습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이러한 강력범죄의 성별 피해자 현황은 강력범죄가 여성을 대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라고 규정합니다.

4. 폭행을 포함하면 여성의 강력범죄 피해는 뚝 떨어지나?

대검찰청 2015 범죄분석 중 2014년 ‘폭행·상해범죄 피해자의 성별 연령 분포’

1번에서 인용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2013년 통계 속 흉악 강력범죄와 폭력 강력범죄를 기계적으로 더해보겠습니다. 전체 강력범죄 피해자는 26만7781명으로 여성이 9만6855명(36.1%), 남성이 13만6774명(51%)로 나타납니다. 확실히 흉악범죄만 나온 통계보다 남성의 비율이 높아졌습니다.

대검찰청 2015 범죄분석 중 2014년 ‘폭행·상해범죄 피해자의 성별 연령 분포’

5. 한국의 성폭력 발생률은 높은가

한국 성범죄 통계

유엔 회원국들의 국가승인통계를 바탕으로 각국의 범죄를 국제적 통계로 제공하는 유엔 마약범죄퇴치국(UNDOC)이 최근 발표한 123개국의 2014년 성범죄 통계를 보겠습니다. 한국의 인구 10만명당 성범죄 피해자는 42명으로, 같은 해 수치가 확인된 77개 회원국 가운데 25위를 기록했습니다. 조금 더 많은 회원국의 인구 10만명당 성범죄 발생 자료가 확인된 2010년에는 100개국 가운데 32위(10만명당 37명)로 나타났습니다. 대검찰청의 <범죄분석>을 보면 유엔 통계와 조금 차이가 납니다. 2014년 인구 10만명당 성폭력범죄는 58.2건으로 나옵니다. 또 2005년 1만1551건이던 강간·강제추행 등 성폭력범죄 발생 건수가 2010년에는 2만584건, 2014년에는 2만9863건으로 크게 뛰었습니다. 여기에는 강제추행과 카메라 촬영 등 범죄가 3배 이상씩 늘어난 탓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암수범죄’(실제로는 발생했으나 신고되지 않아 공식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 범죄)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피해 신고율이 낮기 때문입니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3년 성폭력 실태조사를 보면 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조사대상자 중 1.1%가 경찰에 직접 신고하였고, 강제추행의 경우는 5.3%, 강간·강간미수는 6.6%만 신고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국내 성폭력범죄 신고율이 10% 안팎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성폭력범죄 신고율은 40~50%대로 알려져 있습니다.

6. 한국의 젠더갭은 크다

세계경제포럼이 매해 발표하는 ‘글로벌 젠더갭 리포트’ 2015년 자료를 보면 한국의 젠더갭(성평등)은 145개국 가운데 115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양성평등 수준이 굉장히 낮습니다. 분야별로는 경제활동 참여와 기회 순위가 125위로 가장 낮게 나왔습니다. 교육 102위, 정치 참여 및 권한에서도 101위로 하위권을 기록했습니다. 이 자료가 발표됐을 당시 세계경제포럼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한국 순위가 지나치게 낮다는 지적도 일부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4년 통계를 보면 한국은 15년째 남녀임금 격차가 가장 큰 나라로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오이시디 회원국 평균의 2배가 넘는 수치입니다. 각국의 의회 내 여성 의원의 비율을 비교해도 한국은 16.3%로 45개국 가운데 38위로 하위권에 속합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올 3월 발표한 유리천장 지수(Glass-ceiling index)를 봐도 한국은 29개국 가운데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국제적 기준에서 한국사회의 양성평등 수준은 각 분야에서 굉장히 낮게 평가되는 게 현실입니다.

<한겨레>가 통계로 살펴본 한국 사회 여성이 겪고 있는 현실은 여기까지입니다. 강남역 살인사건의 규정이 어떻게 되든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이 차별과 폭력에 노출돼 왔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현실을 조금이라도 바꿔낼 수 있을까요?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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