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유레카] 포스트잇 전쟁 / 김종구 |
요즘 뉴욕의 맨해튼에서는 ‘포스트잇 전쟁’(Post-it War)이 한창이라고 한다. 건물의 사무실 창문에 포스트잇 메모지를 사용해 각종 볼거리를 만들어내는 경쟁이다. 작품 내용을 보면 ‘안녕’ ‘결혼해 줄래요’ 등 단순한 메시지나 인사말도 있지만 스파이더맨, 앵그리버드, 심슨 등 화려한 작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포스트잇 전쟁의 원조는 프랑스 파리다. 2011년 5월 게임 개발업체인 유비소프트의 한 직원이 무료함을 달래려 창문에 포스트잇을 사용해 게임캐릭터 팩맨을 만들어 붙였다. 그러자 길 맞은편에 있는 비엔피(BNP)파리바 은행의 직원도 창문에 포스트잇 작품을 만들어 붙이면서 전쟁이 시작됐다. 여기에 소시에테제네랄, 프랑스24, 다논 등 다른 쟁쟁한 회사들이 가세하면서 포스트잇 전쟁은 파리 전역으로 확산됐다. 전쟁이 한창일 때는 매일 점심시간마다 거리가 한산할 정도였다고 한다.
포스트잇이 예술의 도구로 쓰인 지는 오래됐다. 2012년에는 아르단 외즈메노을루라는 터키 출신의 작가가 포스트잇 작품으로 뉴욕에서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었다. 2000년 12월 포스트잇 탄생 20주년을 기념해 열린 작품 경매전에서는 포스트잇에 그린 스케치 작품이 640파운드에 팔려 이 부문 신기록으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지금 한국에서도 포스트잇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뉴욕·파리와는 성격이 다른 전쟁이다. 뉴욕과 파리의 포스트잇 전쟁이 유머와 낭만이 넘치는 은유적 의미의 전쟁이라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포스트잇 전쟁은 말 그대로 전쟁이다. ‘강남역 살인사건’ 피해자를 추모하고 여성혐오 범죄를 규탄하는 포스트잇 물결이 이어지자 일베 회원 등이 입에 담지 못할 수치스러운 표현으로 맞불을 놓는가 하면 지하철 벽면에 붙은 포스트잇 메모지들을 몰래 떼어버리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등 주요 사건 때마다 나타나는 일베의 분탕질이 참으로 역겹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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