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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5.22 19:35 수정 : 2016.05.22 19:35



올해 초 이사를 했다. 광역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다 보니 전에 없던 일을 종종 겪는다. 작은 용기가 필요한 순간 머뭇거리는 나의 찌질함을 발견한 것도 그중 하나다.

장거리 출근길 승객들은 대부분 버스에 오르자마자 이어폰을 꽂고 부족한 잠을 청한다. 운 좋은 날엔 자리에 앉아 토막잠을 잘 수 있다. ‘좌석들’은 ‘입석들’의 고단함을 알기에 그들이 자신의 등받이에 몸을 기대어 생기는 소소한 불편은 감수한다. 하지만 자리를 양보하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운이 나빴던 날, 옆에 나란히 선 젊은 여성이 임신부임을 뒤늦게 알게 됐다. 이미 곤한 잠에 빠진 ‘좌석들’의 양보를 요구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렇더라도 약간의 용기와 재치만 있었다면 기분 나쁘지 않게 자리를 내줄 이를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난 못난 놈이라고 자책하며 눈을 감고 말았다.

최근의 퇴근길 비겁함은 더했다. 이날 주인공은 취객이었다. 몇몇은 통화를 하고 있었고,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까르륵대기도 했다. 술을 꽤 마신 듯한 중년 남성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공공장소에서 왜 떠들고 지랄이야. 여기가 니들 집이야? 씨×. 공중도덕도 안 배웠어?”로 시작해 일장연설을 하며 씩씩거렸다. 경부고속도로에 들어선 버스의 실내는 일순간 고요해졌다. 취객은 혼자서 흥분을 더해가고 있는 터라 잘못 건드렸다가는 더 큰 분란이 일 것 같았다. 문자로 112에 신고할까 하다가 이런 정도의 폭력에 경찰이 나설지 믿음이 가질 않았다. 이번에도 불쾌한 고성을 덮어버릴 정도로 볼륨을 높이고 눈을 감고 말았다.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30분 이상 불안과 공포에 떨었을지도 모를 아이들과 아이 엄마를 생각하면 뭔가를 했어야 했다. 무엇 때문인지는 알 길 없으나 엉뚱한 곳에서 분노를 터뜨린 그 취객을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런 폭력에 서로 길들여지면 안 되니까.

지난 주말, 살인사건 현장 근처인 서울 강남역에서 침묵시위가 열렸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 대한 폭력, 그 극단적 형태의 살인은 과거에도 있었는데 이번엔 왜 사람들의 반응이 다를까. 경찰은 증오범죄가 아니라 정신질환 범죄라고 결론 내렸지만 본질은 다른 데에 있다. 많은 여성들이,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으레 겪는 일인 양, 또 조용히 눈 감고 귀 닫고 넘어가면, 나도 언젠가 같은 일을 당할 수 있다는 공포 때문이 아닐까. 스스로 원해서 이 나라 이 땅에 성별을 골라 태어난 것도 아닌데 운이 나쁘면 죽을 수도 있다니, 지금 당장 무엇인가 말하고 행동해야겠다는 이들이 강남역으로 모인 것이다. 그래서 그 열기는 추모를 넘어 삶에 대한 절규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렇게 아팠다고, 배려까지는 바라지 않을 테니 같이 좀 살자고 절규하는 이들 앞에서 “왜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드느냐”는 찌질한 놈들은 뭔가. 현장의 메모글을 몰래 없애고는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한 것처럼 자신들의 사이트에 자랑질하는 못난 놈들은 또 뭔가. 공감이 되지 않거든 그냥 들어주거나 가만히 있으면 될 일이지 분탕질을 치나. 남자 이전에 사람이 되라고, 뭔가 중요하다 싶은 일을 하고 싶거든 꼭 엄마한테 먼저 물어보라고 충고하고 싶다.

김보협 디지털 에디터
남성을 적대시 말라는 엉뚱한 소리가 나오지 않게 하려면 그 절규의 현장에 더 많은 남자들이 가면 된다. 추모 침묵시위는 이번 주말에도 이어진다. 이번 시위에 참여한 여성들 중엔 신상이 알려져 피해를 입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그들 곁에서 같이 걷고 싶다.

김보협 디지털 에디터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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