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5.22 19:30
수정 : 2016.05.24 14:17
일베 등 성대결 부채질 속 자성론
“모든 남성은 지금 일에 책임 있어”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어야”
“(남성인) 저는 술에 취해 집에 갈 때도 누가 몰래 날 만지지 않을까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여성들은 맨정신에 택시 타는 것도 두려워하는데 말이죠.”
지난 20일 서울 신촌에서 진행된 ‘여성 폭력 중단을 위한 필리버스터’ 현장에서 단상에 오른 신필규(27)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남자들의 집단에서 여성혐오가 만연한 순간에도 배제가 두려워 침묵했다. 모든 남성은 지금의 일에 책임이 있다”는 신씨의 발언이 끝나자 현장에 있던 여성들이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강남역 여성살인사건’에 대한 추모가 이어지면서 ‘여성혐오를 혐오한다’며 지지의 목소리를 내는 남성이 늘고 있다. 일간베스트(일베) 등 극우 성향 누리집 등을 기반으로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지 말라”는 주장이 제기되는 등 성대결적 양상이 펼쳐지는 데 대해 “내가 잠재적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깨닫고 문제 해결에 동참하자”는 자성론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대학생 진아무개(26)씨는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말다툼을 하던 중 여자친구의 입을 틀어막고 팔을 때렸던 경험을 털어놓으며 “나는 데이트폭력 가해자였다”고 자신의 잘못을 고백했다. 진씨는 22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바깥으로 비치는 나는 여성의 인권에 대해, 소수자의 감수성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는 ‘개념 있는 남성’이었다”며 “실제로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나는 앞으로도 잠재적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나 자신을 스스로 경계하고 다그치고 싶어 망설임 끝에 이런 글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21일 대학생 장길완(22)씨도 “나는 잠재적 가해자”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장씨는 “여성들은 밤늦게 돌아다닐 때 일상적으로 공포를 느끼고 돌봄·가사노동에서 자유롭지 않다”며 “이를 외면하고 방치한다면 남성 누구나 성불평등을 조장하는 잠재적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글 쓴 이유를 밝혔다. 취업준비생 장정호(25)씨는 “남성들은 스스로를 변호하기를 멈추고 도대체 왜 수천명의 여성들이 강남역 10번 출구에 포스트잇을 붙이는지 궁금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무심코 이뤄져왔던 남성들의 ‘일상 속 여성혐오’ 언행을 되돌아보자는 의견도 나왔다. 필리버스터 단상에 올랐던 대학원생 남성 ㄱ씨는 “대학원 개강 모임 때 걸그룹 노래를 틀어놓고는 함께 입학한 여성 동기에게 섹시댄스를 추게 했다”며 “(이는)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폭력”이라고 지적했다. 이 현장에 있던 직장인 김지명(32)씨는 “나조차도 깜짝 놀랄 만큼 일상에서 무심코 성적 폭력을 저지르게 되는 것 같다”며 “일상에서 여성에 대해 크고 작은 폭력이 당연하게 이뤄지지는 않는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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