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5.22 19:29
수정 : 2016.05.24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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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인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시민들이 모여 ‘강남역 여성살인사건’으로 희생된 피해 여성을 추모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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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여성살인’ 수사 발표 파장
경찰이 ‘묻지마 범죄’ 결론 내자
“여혐 아니란다, 강남역 꽃치워라”
또 다른 혐오 현상 잇따라
김씨 수차례 여성 적대감 드러냈지만
경찰 “구체적 진술없다” 신빙성 부인
전문가 “수준 낮은 논쟁 멈추고
불평등 느낀 여성 목소리 들여다봐야”
‘정신분열 범죄로 결론났다. 강남역 꽃 치워라. 여혐이라고 난리부르스더니 아니란다.’ ‘강남역 10번 출구에 있는 ××들은 뉴스 안 보고 사나봐.’
22일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피의자 김아무개(34)씨에 대한 경찰의 심리분석 결과 발표를 전한 네이버 등 각종 포털사이트 기사에는 이런 댓글들이 달렸다. 경찰이 이번 사건을 ‘정신질환에 의한 묻지마 범죄’로 규정한 것을 계기로 ‘강남역 10번 출구’를 중심으로 번지고 있는 추모 움직임의 ‘사회적 맥락’을 외면한 채 일부 여성들의 과잉 행동으로 몰아가는 또다른 ‘혐오’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정신질환에 의한 묻지마 범죄로 유형화하면서 “피의자 김씨와 피해자 사이에 관계가 없는데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동기가 없다는 점, 그리고 김씨가 조현병을 앓고 있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나를 향해 담배꽁초를 던졌다”, “지각하도록 길을 막았다”, “직업적으로 피해를 준다”며 김씨가 면담에서 ‘여성’에 대한 적대감을 지속적으로 드러냈지만, 경찰은 “막연한 느낌과 생각일 뿐 구체적 진술이 없다”며 이를 여성혐오 범죄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범행 동기와 관련한 김씨 진술을 모두 ‘정신질환에 따른 피해망상’으로 규정하고 신빙성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와는 별개로 “경찰이 분류한 사건의 유형이 아닌, 범죄 속에 포함된 요소들과 그 속에서 여성혐오와 불평등을 느낀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피해가 일어난 것은 사실이고, 그 대상이 여성이었고 진술 과정에서 여성들에게 무시당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이야기가 나왔다는 부분은 여성들에게 살면서 느껴온 불안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며 “단순히 직접적인 원인이 정신질환이냐 아니냐를 떠나 ‘대상이 된 집단’으로서 여성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는 의미와 맥락을 살펴봐야 한다”고 짚었다.
프로파일러인 배상훈 서울디지털대학교 경찰학과장은 “피의자의 주된 범죄심리를 분류한 결과가 정신질환에 의한 것이라는 내용을 부정할 수는 없다”면서도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이후 나타난 추모 움직임은 범죄 프로파일링 용어 속의 ‘혐오범죄’를 넘어, 사회적인 용어로서의 ‘여성혐오’를 이야기하는 것이므로 따로 떼어 의미를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사건의 요소들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양성불평등이라는 구조적 모순을 지적하는 움직임은 경찰의 유형 분류와는 전혀 다른 차원”이라고 강조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로 받아들이고 반발하는 여론과 관련해 부담을 느낀 듯 브리핑 도중 기자들의 질문에 채 답을 마치지도 않은 채 10여분 만에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가 기자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전화 질의를 추가로 받기도 했다.
서천석 마음연구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신병의 증상은 사회적 맥락 속에 있다. (만약 그에게 정신병적인 망상이 있었다고 한다면) 최근 들어 뚜렷하게 늘어난 여성 혐오 현상이 그의 망상 속에 자리를 잡은 것”이라며 “정신병을 가진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면 그 행위가 모두 정신병 때문인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범죄의 이유로 ‘여자들의 무시’ 등을 운운하는 상황이 여성혐오 이슈를 우리가 중요한 문제로 생각해야 하는 이유”라며 “사회 전반에 이런 의식이 자리잡지 못하도록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정신병이 범죄의 원인이냐, 아니면 여혐이 원인이냐’ 이런 수준 낮은 논쟁은 이젠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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