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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5.19 19:11 수정 : 2016.05.24 14:29

‘강남 살인사건’ 피해자 추모 포스트잇. 사진 김봉규 선임기자

‘강남 살인사건’ 추모열기 왜?

여성혐오 피해에 슬픈 공감 확산
“공용공간 절대 안 가고 싶어”
‘나의 일 될지 모른다’ 애도행렬

“평소 여자들한테 무시를 당해 범행했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처음 보는 20대 여성을 살해한 김아무개(34)씨의 이 한마디 진술이 불러온 파장은 컸다. 19일 오후 지하철 강남역 10번 출구 앞, 전날부터 이어진 ‘강남 살인사건’ 피해자에 대한 추모 행렬과 쪽지 메모는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었다. 국화꽃과 근조 화환으로 출입구 주변은 좀처럼 발 디딜 틈을 찾기 어려웠다. 이날 저녁 7시부턴 200여명의 시민이 모인 가운데 여성들이 자신의 ‘여성 혐오’ 경험담을 증언하는 ‘발언 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지켜보는 이들은 추모의 의미로 촛불을 들었다. 김씨는 이날 살인 혐의로 구속됐다.

이번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 서초경찰서 쪽은 “프로파일러 1차 심리 면담 결과, 여성으로부터 피해를 당한 구체적인 사례 없이 김씨가 피해망상으로 인해 평소 피해를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선을 그었지만, 여론은 이번 사건을 사회적 맥락 속에서 ‘여성 혐오 범죄’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강남 살인사건’ 피해자 추모 포스트잇. 사진 김봉규 선임기자
‘강남 살인사건’ 피해자 추모 포스트잇
‘강남 살인사건’ 피해자 추모 포스트잇

“오직 운이 좋았던 덕분에 살아남았다.”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붙은 이 추모 메시지의 내용처럼 여성들 사이에서 ‘내가 희생자가 될 수도 있었다’는 심리적 공황이 추모 열기로 번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디어 활동가 장수정(35)씨는 “남성과 같이 있으면 아무런 일이 없다가도, 밤늦게 혼자 다니다가 공연히 남자들로부터 욕을 먹거나, 술주정하는 사람들과 맞닥뜨린 경험이 많다”며 “그런 기억이 쌓이니 늘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남’이라는 번화가의 공용화장실에서 불특정 여성을 표적으로 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이번 사건이 여성들이 평소 느끼던 일상에서의 위협을 환기시켰다는 지적이다. 라디오 작가 김소정(34)씨는 “특히 공용 공간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다. 화장실, 엘리베이터, 골목길 등에 절대 가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신경아 한림대 교수(사회학)는 “이런 사건의 2차적 부작용은 여성들의 ‘심리적 위축’이나 ‘자기검열’ 등으로 이어지며 여성을 더욱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강남 살인사건’ 피해자 추모 포스트잇
“모든 남성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 하는 것 아니냐” “남녀 대결로 몰고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추모의 열기 뒤에는 우리 사회의 여성 및 약자에 대한 혐오가 일정 수위를 넘었다는 인식과 그 혐오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실질적 폭력으로 이어지는 데 대한 공포감이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2012년 귀가하던 여성을 납치해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오원춘 사건’이나, 2014년 울산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여성을 술에 취한 20대 남성이 칼로 수차례 찔러 살해한 사건 등 약자인 여성을 노린 강력범죄는 끊이지 않고 있다. 법무연수원의 <범죄백서(2015)>에서 ‘강력범죄 피해자’ 가운데 여성 비율은 2010년 82.9%에서 2014년 88.7%로 증가했다. 통계청 사회조사에서 범죄 위험에 대해 ‘불안하다’고 답한 여성은 2010년 67.9%였지만 2014년엔 그 비율이 79.6%로 올라갔다.

강력범죄 피해자 여성 현황
여성 표적 범죄를 단순히 ‘묻지마 살인’으로 보고 가해자의 시선을 유지해온 언론에 대한 반감과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등이 ‘김치녀’, ‘된장녀’ 같은 여성 비하로 양산한 ‘여혐’ 현상도 추모 열기에 불을 댕겼다. 이날 강남역에 추모하러 온 대학생 안아무개(25)씨는 “묻지마 살인이라거나 ‘피의자의 꿈이 짓밟혔다’는 등 언론이 가해자의 시점에서 보도하는 걸 보고 화가 났다”고 말했다. 대학원생 이진선(33)씨는 “현재 인터넷에서 나타나는 남성들의 혐오를 보면 여성을 ‘2등 시민’으로 취급하고, 사회의 불안감과 소외감을 약자인 여성에게 덮어씌우는 현상이 보인다”고 말했다. 이나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이 사건은 정신질환자가 특정한 여성한테 저지른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여성 혐오 사회에서 벌어진 상징적인 사례로 여겨지며 이처럼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도화선이 됐다”고 짚었다.

박수지 박수진 이재욱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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